하지만 인사청문회를 비롯해 국회에서 하는 거짓말은 법적으로 제한된다. '국회증언감정법' 14조는 "법에 따라 선서한 증인 또는 감정인이 허위의 진술(서면답변을 포함한다)이나 감정을 하였을 때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글의 목적은 위증 논란에 휩싸였음에도, 선서를 하지 않았기에 위증죄 성립이 안 되는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와 같은 사례를 막기 위해 법을 개정하자는 취지가 아니다. 국회의원들도 공공연히 거짓말을 하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오히려 당장은 법망을 피해갔을지라도 결국 파국을 피하지 못한 한 거짓말쟁이의 나쁜 선례에 관한 것이다.
#. 2013년 어느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명했던 A 전 장관은 임명 전 청문회에서 '법인카드 사적사용' 의혹에 직면했다. 후보자가 공공기관에 재직 중에 수백 차례에 걸쳐 몇 천 만원씩 사용된 금액 중에 공휴일에 쓴 것들이 의심을 샀다. 공휴일 중엔 어린이날도 있었다. 어린 아들을 동반한 가족 회식을 법인카드로 결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 소속 청문위원들은 법인카드 사용 내역 전체의 자료 제출을 요구해 받아냈다. 민주당 관계자로부터 "수상한 곳에서 사용한 것 같다"는 제보를 받은 게 그 즈음이었다. 법인카드 전표 수백 장을 일일이 분석했던 이 관계자는 현재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 중이다.
수상한 곳으로 지목된 장소에 직접 가봤다. 카드 명세서에 식당으로 명시됐던 그곳은 실제로는 강남의 한 유흥업소였다. 이 업소가 식당이 아닌 유흥업소임은 미성년자 접대부를 고용해 구청에 적발됐던 단속 기록이 증명하고 있었다.
A 전 장관의 증언은 집요하게 바뀌었다. 청문회 당일엔 "사적으로 사용한 것이 없다"며 "만약 있다면 사퇴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유흥업소에서 사용했던 전표가 드러나자, "접대부가 없었다. 여성 연구원도 동행했다"며 말을 바꿨다.
#.A 전 장관의 증언이 거짓말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2년 뒤였다. 우연히 A 전 장관의 전직 기관에 근무 중인 한 사람을 소개받았는데, "A 전 장관과 술자리에 함께 있었다"고 증언했던 여성 연구원의 지인이었다.
그 지인으로부터 청문회를 전후한 사건의 전말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 청문회 통과를 위해 여성 연구원에게 위증을 사주했고, 그 연구원은 6개월간의 휴직과 미국 연수의 기회를 잡는 특혜를 누렸다고 했다. 제보자의 신원이 노출될 우려가 컸기 때문에 기사화할 수는 없었다.
A 전 장관은 2년 가까이 임기를 채웠다. 장관 퇴임 이후에도 회전문 인사를 통해 기관장에 다시 기용되며 승승장구했다. 박근혜 정부 정책을 충실히 대변했던 것으로 유명했던 그 장관은 정권 교체 뒤 적폐로 몰렸고, 직권남용 혐의로 법정 구속됐다.
정직함 대신 출세를 추구했던 한 인간의 쓸쓸한 말로. 진실의 힘과 거짓의 위험성을 새삼 느꼈다.
하지만 밤늦은 시각 "내가 소개했다"는 윤 후보자의 통화 녹취가 청문회 장에서 공개되자, 말 바꾸기가 이어졌다. "선임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개하지 않았다고 했다"는 것이 최초 해명이었다. 그러나 청문회 다음날 해당 변호사가 윤모 전 세무서장의 변호인으로 국세청에 선임계를 냈던 대목이 등장하는 법원 판결문을 들이밀자 이번엔 "형사 재판을 맡진 않았다"는 말이 나왔다.
현재 "검찰 단계에서 변론을 했다"는 증언까지 나온 상황이다. 변호사를 소개했느냐, 하지 않았느냐, 형사 소송을 담당했느냐, 행정 소송만 맡았느냐, 이 같은 생소한 논쟁들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변호사법 위반 논란 때문이다.
#. 윤 후보자의 육성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혼란해졌던 청문회장에서 민주당 김종민 의원과 후보자가 나눈 짤막한 대화 내용이 진실에 가까울지 모른다.
[▲김종민(민주당 의원) : 고생 많으셨습니다.
▲윤석열(검찰총장 후보자) : 제가 윤○○(세무서장), 대진이(법무부 검찰국장)를 좀 보호하려고 저렇게 말했을 수도 있는데 사실은 이○○(변호사)이가 대진이 얘기를 듣고 했다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대진이가 했다는 건데 제가 기자한테는 그렇게 했을 수 있고….]
종합하면 "세무서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하지 않았다"는 국회 증언이 참인 반면, 통화내용은 거짓이라고 스스로 고백한 셈이다. 불변하는 것은 청문회에서든 기자와의 통화에서든, 최소 한 차례 이상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다.
A 전 장관의 비극이 단지 거짓말을 스스럼없이 했던 성격에서 비롯된다고 단정 짓는 것은 비약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공직 후보자와 현직 공직자 중 거짓말쟁이는 원천 배제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도 성립되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이미 거짓말을 했던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잘못을 반복할 확률이 높은 것은 상식이다. 위증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이상 눈감아주기 어려운 이유다.
윤 후보자가 위증의 배경으로 밝힌 "후배를 아끼는 차원"이라는 해명도 미담사례가 되기보단 공직 기피사유로 보인다. 평소 사사로운 인연에 따라 말을 바꿀 수 있다면, 검찰총장 직무에서 친분 혹은 자신을 추천한 정권의 입맛 등 사사로운 인연에 좌우되지 않을 것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나.
청와대의 임명 강행 방침에 대해 '적임자'라며 뒷받침하고 있는 여당의 입장 역시 실망스럽다. 한 민주당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윤 후보자의 거짓말에 대해 "법률적으로 위법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검찰 선배 입장에서 그럴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청문회의 위증이 은폐하고 있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수백 장의 자료를 전수 조사했던 민주당의 집요함은 대체 어디 갔는지 묻고 싶다. 더구나 자신들이 적폐 중의 적폐로 꼽았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꾸라지(법률 미꾸라지)'라고 비난했던 민주당 아닌가.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