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수출규제와 中 한한령, 같은 보복 다른 反감

[노컷 딥이슈] 일본 수출규제, 중국 '한한령'과 유사…국민 '반감'은 다른꼴
보복성 경제 조치는 같지만 역사문제 얽힌 이유 '납득 불가능'
"일관된 사과 없는 일본에 원래부터 분노 커…이 정도면 냉정한 수준"
"기습적 규제 발표에 '반일' 감정 깊어져…참의원 선거 따라 운명 갈릴 것"

9일 오후 서울 은평구 푸르네마트에 일본제품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일본 정부의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로 우리나라에서 일본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반일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경제 보복까지 이어지는 동북아 정세 변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지난 2016년 한류 산업 전반에 치명타를 입힌 중국 '한한령'과는 사뭇 다른 결과다.

2016년 7월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확정되자 중국은 자국 내 한국 콘텐츠와 한국 연예인에 대한 비공식적 규제에 나섰다.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로 국가적 차원에서 '한류'라는 문화 산업을 '금지'한 것이다.

중국 자본에 의존도가 높았던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큰 타격을 입었고,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중국 내 한류는 이전과 같은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사드 부지를 제공하기로 했던 국내 대기업 롯데는 지금까지 제재를 당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2016년부터 3년 간 국내에서 중국 콘텐츠, 중국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등 격렬한 '반중' 감정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중국 현지 음식 등이 최근 유행을 일으키며 요식업계에서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비공식적 규제로 접근했던 중국과 달리 일본은 1일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소재 수출규제를 공식화했다.

자유무역주의가 원칙인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이라는 국내외 지적에 일본 정부는 한국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라는 국제적 약속을 했음에도 이를 지키지 않아 양국 간의 신뢰 관계가 현저히 손상됐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을 겨냥한 것이다. 한국 정부의 조치가 없다면 차후 일본은 이 같은 규제 품목을 더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간접적인 인정으로 결국 역사 문제가 수출 규제로까지 이어진 보복성 조치라는 의혹을 지우기는 어렵게 됐다. 여러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일본의 '초강수'가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 신조 총리의 지지층 결집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공식화 여부에는 차이가 있지만 한국 특정 산업에 '보복성' 경제 조치를 가했다는 점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유독 일본 브랜드 전반에 대한 대규모 불매운동, 일본산 승용차 테러 등 '반일' 감정이 불길처럼 타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족문제연구소 이준식 연구위원은 "국익이나 안보 차원의 납득 가능한 이유로 수용이 되지 않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일본 최고재판부 판결에도 있듯이 한일협정은 국가 간 청구권이 사라진 것이지 개인은 아니다. 강제징용 판결 자체도 근로자가 일한 기업에서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개인 권리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애초에 3권 분립이 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부가 사법부 판결에 개입할 수 없다. 그런데 이걸 한국 정부에 책임지라고 하는 건 일방적인 정치공세밖에 되지 않는다. 더욱이 중국 정부처럼 비공식적인 제재가 아니라 공식적으로 진행하니 반감이 심해질 수밖에 없지 않나"라고 부연했다.

집권 정당이 바뀔 때마다 역사 문제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가 변하는 지점도 지적했다. 국가 차원에서 '제대로 된 공식 사과'를 받지 못했다는 인식에 이 같은 상황이 더해져 '반일' 감정을 격화시켰다는 분석이다.

이 연구원은 "'반일' 정서에 깔려 있는 건 해방 후 한 번도 일본으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했다는 전국민적 인식이다. 제대로 사과한 적도 없는데 극우 성향 정치인들이 식민지배 역사를 부정하고 미화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크다. 사실 그렇게 70여 년 간 쌓여 온 분노에 비하면 지금 한국 국민들의 대응은 냉정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해묵은 역사문제와는 별개로 1965년 이후 오랜 시간 국제사회에서 우방관계를 유지해왔기에 일본의 기습적인 수출규제는 대다수 국민에게 반감을 더할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국제정치학회 김용찬 회장은 "한한령 이전에 중국은 사드 배치에 대한 경고를 했었다. (이런 수출규제 상황을) 일본 정부는 몇년 전부터 준비를 해왔다고는 하지만 우리 국민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면서 "역사와 얽힌 국민감정은 물론이고, 남북미 정상회담, G20 등이 끝나고 나서 바로 뒤통수를 치는 듯한 행태, 국제사회에서 비슷하게 경제 역할을 해온 한일 간 무역구조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섞여 한한령 당시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반일' 감정이 깊어진 듯하다"라고 전했다.

곧 열릴 일본 참의원 선거는 외교 분쟁을 넘어 국민 간 갈등으로까지 비화된 문제 해결의 단서로 꼽힌다. 참의원 선거 결과에 따라 수출규제부터 크게는 평화헌법 개정까지 한일 관계의 향방이 결정될 전망이다.

김 회장은 "일단 지금 한국 정부가 어떤 조치를 하더라도 일본은 계속 대화 단절과 극우적인 방향으로 맞서고 있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가지고 준비를 하되, 완결된 해결책을 내놓기는 어렵다"며 "다만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이 승리해 전쟁이 가능하도록 평화헌법을 건들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중국은 우리와 완전히 같은 입장이 될 것이고, 북한과의 관계를 풀어내려는 미국에게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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