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던 문 대통령이 맞대응 가능성을 거론하며 정면돌파하겠다는 뜻을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 文 "日, 정치적 목적…조치 철회하고 협의 나서야"
문 대통령은 8일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며 "일본 측의 조치 철회와 양국 간의 성의 있는 협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공식 입장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첫 입장을 낸 것에 대해 "관심이 워낙 높은 사안이기에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고, 국민들에게 정부의 노력을 설명하고자 하는 측면과 함께 일본을 향한 당부와 양국의 우호관계 훼손을 막기 위해 협의를 촉구하는 말씀을 하신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 7일 수출 규제의 이유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약속도 지키지 않는데 무역 관리도 지키지 않을 것"이라며 대북제재 위반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또 일본이 추가적 수출 규제 조치를 검토하고 있어 문 대통령은 더 이상 침묵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날 문 대통령의 일본을 향한 메시지 수위는 비교적 높았다. 문 대통령은 "상호호혜적인 민간기업 간 거래를 정치적 목적으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의 조치에 자유무역 질서를 해치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다고 진단한 것이다.
또 문 대통령은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은 양국 모두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그러나 한국 기업들에게 피해가 실제적으로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맞대응 가능성을 시사했다.
문 대통령은 "저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현실화 가능성을 언급하며 사실상 일본 정부를 향해 경고장을 보낸 것이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전례 없는 비상상황"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사안을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음을 국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무역은 공동번영의 도구여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믿음과 일본이 늘 주창해온 자유무역의 원칙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란다"고 일본을 압박했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의 발언은 양국간의 우호관계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강력한 촉구의 의미"라며 "일본과의 맞대응으로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위한 촉구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확전을 막기 위한 상황 관리 차원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 '전례 없는 비상한 상황' 규정…文 정부 총력대응
현 사태를 '비상한 상황'으로 규정한 문 대통령은 내각에 총력대응을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전례 없는 비상한 상황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경제계가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상황의 진전에 따라서는 민관이 함께하는 비상대응체제 구축도 검토해야 한다"며 "청와대와 관련부처 모두가 나서 상황변화에 따른 해당 기업들의 애로를 직접 듣고, 해결방안을 함께 논의하며,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청와대 김상조 정책실장 등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재계 주요 인사들을 만나며 현장 상황을 청취하고 있다. 또 문 대통령은 오는 10일을 전후해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과의 간담회를 추진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기업과 함께 피해를 최소화하는 단기적 대응과 처방을 빈틈없이 마련할 것"이라며 "한일 양국간 무역관계도 더욱 호혜적이고 균형있게 발전시켜 심각한 무역수지 적자를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외교적 해결을 위해서도 차분하게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본과의 소통 노력에 더불어 국제사회에 대한 홍보 노력도 병행해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다만,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 조치의 고삐를 늦출 기미가 없고, 이미 양국의 신뢰관계가 크게 훼손된 상황이라 사태는 더욱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성공회대 일본학과 양기호 교수는 "한일 양국간 상호 불신의 골이 너무 깊어서 해법을 도출하기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며 "일본이 추가 조치를 내놓는 등 한동안 강대강으로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