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 1 (18:20~19:50)
■ 방송일 : 2019년 7월 2일 (화요일)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 정관용> 지난 2009년부터 무려 10년 동안 이어진 쌍용차 투쟁. 바로 어제 7월 1일자로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자들 가운데 복직을 희망하는 분들 전원 복직이 됐네요. 지난해 9월 노사가 이 해고자 복직에 잠정 합의하면서 올해 1월 1일 일부가 먼저 복직했고 남은 노동자들이 바로 어제 복직을 한 건데요. 하지만 복직한 노동자들이 다시 또 거리에 나서고 있습니다. 바로 경찰의 손배가압류 이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해요.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김득중 지부장 오늘 스튜디오에 직접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김득중> 안녕하세요, 김득중입니다.
◇ 정관용> 어제부로 복직하셨죠?
◆ 김득중>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마지막, 같이? 지난 1월 1일자로 77명? 어제는 몇 명?
◆ 김득중> 그리고 남은 40%, 48명이 어제 복직을 했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정리해고 되신 분들 가운데 투쟁하시다가 떨어져나가신 분들, 희망퇴직으로 전환하신 분들 빼고 끝까지 투쟁하신 분들은 이제 전원 복직이 된 거죠?
◆ 김득중>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러면 오늘 회사 출근하셨어요?
◆ 김득중> 사실은 작업복 입고 공장 안 동료들 축하받으면서 출근할 걸 기대했는데요. 사실은 안타깝게도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 정관용> 왜요?
◆ 김득중> 저희가 어제부로 무급휴직으로 잠시 대기가 나와서 대기하고, 연말까지.
◇ 정관용> 복직은 복직인데 무급휴직?
◆ 김득중> 그렇습니다.
◇ 정관용> 어제는 출근하셨어요, 그러면?
◆ 김득중> 저희들 남아 있는 분들이 생계 때문에 전국으로 흩어져 있어요. 그래서 주말에 함께 모여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어제는 월요일이다 보니까 본인들의 기존 업무 때문에 모이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어제는 이래저래 축하 전화만 좀 받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 정관용> 무급휴직은 그러면 1월 1일자로 복직한 분들도 무급휴직이에요?
◆ 김득중> 아닙니다.
◇ 정관용> 그분들은 일하고 있어요?
◆ 김득중> 네. 사실 말씀을 좀 드리면 작년에 교섭 과정에서 난항이 있었어요. 저는, 지부는 2018년 말까지 전원 복직을 얘기했고 사측은 2019년 말 이렇게 서로 주장이 팽팽하게 좀 있다가요. 서로 노사 간 합의 본 것은 그러면 만 10년이 되는 2019년 상반기까지 전원 복직을 하고 그리고 여건에, 여력에 따라서 부서 배치를 받지 못하면 연말까지 무급휴직으로 전환한다고 하는 논의가 있었어요. 그래서 최근에 이 문제를 가지고 좀 많은 방안을 모색했는데 아쉽게도 여건상 연말까지 무급휴직으로 잠시 더 시간을 대기해야 될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게 무급휴직 대상자는 어제 복직한 48명 딱 그 부분.
◆ 김득중>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48명이 그리 많지도 않은데 그렇죠?
◆ 김득중> 많이 아쉬움이 남고 그렇습니다.
◇ 정관용> 지금 나름 생계 때문에 전국 각지에 다른 일들을 하고 계신 분들인데 무급휴직이 끝나고 현장 배치가 되면 전원 정말 복직해서 다시 일을 하실 분들인 거죠?
◆ 김득중> 그렇죠. 합의 내용은 내년 1월 1일이면 모두 부서 배치를 받는 것으로 되어 있고요.
◇ 정관용> 김득중 지부장은 원래 어느 부서에서 일하셨어요?
◆ 김득중> 저는 마지막은 노동조합이었고요. 그전에 품질관리 쪽에 있었습니다.
◇ 정관용> 그러면 다시 그쪽으로 가시는 겁니까? 어떻게 되는 겁니까?
◆ 김득중> 그건 알 수가 없죠. 마음 같아서는 기존의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는데요. 그것이 제 뜻대로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 정관용> 지난 1월 1일자로 복직한 71명은 원래 일하시던 쪽으로 갔습니까, 어떻게 됐습니까?
◆ 김득중> 원직 복직은 힘들었고 모두 평택공장의 생산라인에 현재 근무 중이에요.
◇ 정관용> 하기는 원래 일하시던 쪽에는 이미 다른 분들로 충원돼 있고 이럴 수도 있으니까.
◆ 김득중> 아마도 라인의 변화나 설비 변화들이 좀 많이 있더라고요.
◇ 정관용> 그렇죠. 그래도 어쨌든 평택 생산라인에서 일하고 계신 1월 1일자로 복직한 분들 그동안 쭉 만나셨을 거 아니에요. 뭐라고들 하시던가요?
◆ 김득중> 처음에는 많이 힘들어하십니다.
◇ 정관용> 10년 동안 손을 놨는데 어렵겠죠, 일이.
◆ 김득중> 그래도 마음이나 생각은 다 가지고 있어서 저는 이제 쉽게 적응할 거라고 보여지는데 몸이 워낙 많이, 10년을 쉬다 보니까 육체적으로 더 힘들어하시는 분이 계시는데요. 한 6개월 현재 지나고 있으니까 많은 분들이 적응하고 있고 저희 사무실이 평택공장 정문 앞에 있어요. 그곳을 카페 분위기로 바꿔놔서 복직한 분들, 기존의 동료분들이 출퇴근 시간에 잠시 들러서 차 한잔 마시고 얘기 좀 하다 이렇게 들어가고 합니다.
◇ 정관용> 참 힘들었죠, 지난 10년?
◆ 김득중> 그럼요.
◇ 정관용> 제일 힘드셨던 게 뭡니까?
◆ 김득중> 아무래도 저는 오래 간부(로) 10년 동안 역할을 해 왔는데요. 2009년도 파업에 참여했던 분들이 대다수 불법 세력으로 내몰렸잖아요. 사회적 낙인으로 찍히다 보니까 평택지역이나 취업이 안 됐어요, 재취업이. 그러다 보니까 전국으로 흩어졌고. 그런데 무엇보다 경제적 문제도 있고 정신적 문제도 있는데 가장 힘들어했던 것이 우리 사회의 따가운 시선이었어요. 그래서 이것을 견디다 못해 자결한 동료들, 가족들이.
◇ 정관용> 너무 많죠.
◆ 김득중> 해고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저나 많은 분들이 정말 고통과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왔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 정관용> 김득중 지부장, 결혼하셨죠?
◆ 김득중>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자녀들이.
◆ 김득중> 아들만 둘이고요. 지금 대학 2학년 그리고 중학교 1학년 이렇습니다.
◇ 정관용> 중학교 1학년. 그럼 10년 전에 몇 살이었던 거예요?
◆ 김득중> 작은 녀석은 3살 그리고 큰 녀석은 초등학교 4학년 이랬습니다.
◇ 정관용> 그러면 아이들도 지난 10년을 다 옆에서 봤잖아요.
◆ 김득중> 그렇죠. 그런데 이제 제가 돌아보니까 거의 집에 들어간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아빠로서 이런 역할이 빵점입니다.
◇ 정관용> 그러면서도 또 뉴스를 통해서 뭘 통해서 다 지켜보고 있었을 거 아닙니까?
◆ 김득중> 아마도 그랬겠죠.
◇ 정관용> 뭐라고들 합니까, 요즘?
◆ 김득중> 아이들이요?
◇ 정관용> 네.
◆ 김득중> 말을 많이 아낍니다. 아마 시간이 좀 지나고 차분하게 얘기할 수 있는 시간들을 가져야 될 것 같아요.
◇ 정관용> 부인께서 참 고생 많이 하셨네요.
◆ 김득중> 아무래도 지난 제 빈 공간을 10년 동안 아이들과 여러 가지 경제적 문제를 책임지고 있어서 좀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 정관용>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가 뭡니까?
◆ 김득중> 미안해서요, 사실은. 미안해서 그렇습니다.
◇ 정관용> 오늘 자리를 마련해 드릴 테니까 부인께 한마디 해 보세요.
◆ 김득중> 부족한 남편 믿고 끝까지 믿어준 거 고맙고 또 제 빈 자리, 아빠의 빈 자리, 남편의 빈 자리를 묵묵하게 지난 10년을 지켜줘서 정말 고맙다는 얘기와 사랑한다는 얘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 정관용> 김득중 지부장 저랑도 여러 차례 인터뷰하고 직접 초대해 스튜디오에 나오시기도 하고 전화 인터뷰도 하고 여러 차례 했습니다. 100% 만족할 수는 없겠습니다마는 그래도 어제부로 어찌 보면 어떤 한 획을 완전히 그은 거기 때문에 오늘 저랑 이렇게 좀 훈훈한 인터뷰로 마무리 짓는 것이 옳은데, 그런데 이미 복직되신 분들 또 지금 무급휴직의 상태에 있는 분들이 또 거리에 나서고 계시다는 소식 듣고 있거든요. 그게 경찰이 쌍용차 노조와 조합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그리고 가압류해 놓은 게 있지 않습니까?
◆ 김득중>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게 지금 고등법원까지 나왔나요?
◆ 김득중> 지금 대법 올라가 있어요.
◇ 정관용> 고등법원에서 확정된 게 얼마예요?
◆ 김득중> 당시에 헬기 3대, 기중기 3대 수리비로 11억 그리고 치료비까지 포함해서 11억 8000만 원이고요. 그게 이제 지연이자가 되게 무섭더라고요. 포함해서 현재 21억 정도 금액이 저희한테 청구되어 있고 지금 대법원에 계류 중에 있죠.
◇ 정관용> 청구되어 있고 계류되어 있고 확정은 안 됐습니다마는 가압류는 어디에 들어간 겁니까, 그러면?
◆ 김득중> 당시에 2009년도 파업에 참여했던 67명의 우리 조합원들에게 1000만 원씩 퇴직금을 가압류했어요. 그래서 2심에서는 40명을 제외하고는 해지를 했죠. 그리고 이제 40명 가압류를 가지고 있다가 올 초에 1월 달에 참 웃지 못 할 일이 있었어요. 40명 중에 71명 복직한 인원 중에 가압류 대상자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중에 1000만 원 퇴직금이 안 됐던 분이 계셨던 거예요, 세 분이. 그런데 복직해서 첫 1월 임금에 대해서 부족한 금액에 대한 50%를 임금 압류를 들어왔어요.
◇ 정관용> 10년 만에 복직했는데 첫 달 월급의 절반을 뗐다? 그 이유는 퇴직금이 1000만 원이 안 되기 때문에?
◆ 김득중> 그렇죠. 아마 중간 정산을 해서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들 정말 기가 막혀서 경찰청 앞에 기자회견하고 그게 문제화되니까 당시 복직한 분들 40명 중에 스물여섯 분만 가압류를 해제하고 나머지 열네 분이 지금 현재 가압류가 해제가 안 돼 있어요.
◇ 정관용> 왜 또 누구는 하고 누구는 안 합니까?
◆ 김득중> 일단 스물여섯 분은 복직을 했기 때문에 수입이 정확하게 확인이 된다. 남아 있는 분들 해고자들은 아직 복직이 안 됐기 때문에 수입을 확인할 수 없다 이런 입장인 거예요. 그래서 이게 또 이제 선별적으로, 같은 사건인데 선별적으로 해제되다 보니까 일선에서는 법원에서는 최근에 등기가 날아왔어요, 저를 포함해서.
◇ 정관용> 뭐라고요?
◆ 김득중> 가압류를 찾아가라고. 그래서 이게 같이 다 풀렸나 보다, 저희가 남은 해고자들이 법원에 갔죠. 등기를 들고. 그런데 이게 일선에서 실무자의 실수로 확인이 됐어요.
◇ 정관용> 어떤 실무자요? 법원 실무자요?
◆ 김득중> 법원에서요. 그래서 법원에서는 같은 사건이니까 40명이 전체 해제가 됐을 거라고 판단했던 건데 내용으로 보면 40명 중에 스물여섯 분만 해제되고 나머지 열네 분은 안 됐던 거죠.
◇ 정관용> 26명은 해제하고 14명은 안 하는 것을 그 조치를 취하는 주체는 어디예요?
◆ 김득중> 의견서를 내는 것은 경찰청이고요. 판결은, 판단은 법원에서 하죠, 법무부에서.
◇ 정관용> 그러니까 경찰이 그런 의견서를 냈고 26명은 해제하고 14명은 놔두세요. 법원은 그걸 받아들인 건데 법원 직원은 그걸 받아들인 건지 모르고. 별일이 다 있었군요.
◆ 김득중>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 해고자들이 되게 어렵잖아요, 경제적으로 10년 동안. 그래서 퇴직금이 해소가 되면 그동안 밀린 부채나 좀 이렇게 갚을 생각으로다가 정말 기분 좋게 법원으로 달려갔던.
◇ 정관용> 가서 1000만 원 받아오려고.
◆ 김득중> 그럼요. 그런데 정말 더 상실감.
◇ 정관용> 실수였습니다라고 그래요?
◆ 김득중> 나중에 법원에서 보니까 확인이 안 된 거죠. 그래서 저희가 경찰청에 다시 문의해 보니까 그렇게 정리가 됐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지난해에 경찰청의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활동을 해서 결론으로 그 당시 공권력 진압이 국가폭력이었다. 그러니 손해배상소송 취하하고 사과하라. 또 명예 회복, 치유 방안까지 마련하라고 경찰청에 권고하지 않았습니까?
◆ 김득중> 그렇습니다. 작년 8월 28일로 기억되는데요. 저나 동료들 그 얘기 듣고 정말 큰 기쁨과 힘이 됐었어요. 그런데 지금 10개월이 지났는데 경찰청에서는 아무런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습니다.
◇ 정관용> 지금까지 경찰, 검찰 뭐 이런 국가기관들의 과거사 진상조사위원회 등등이 문재인 정부 들어서 활동을 하고 권고를 여러 가지를 했어요. 대체로 그 권고가 다 받아들여진 걸로 제가 알고 있거든요. 얼마 전에는 거의 마지막입니다마는 검찰총장이 공개사과까지 또 하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 쌍용차 건에 대해서는 경찰청장 사과도 아직 없었어요?
◆ 김득중> 지금 저희가 우선 조사위에 8대 사건이 있었거든요. 강정, 밀양, 청도, 용산 등등 있었는데요. 최근에 기자회견을 같이 했어요, 공동 기자회견을. 거기에서 확인된 것은 경찰청 인권침해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권고 내용은 있었지만 경찰청의 공식 사과가 없다는 것.
◇ 정관용> 모든 건에 대해서?
◆ 김득중> 네. 그리고 이행이 되고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한 상당히 불만, 분노를 표출하면서 저희가 경찰청장 면담을 요청을 해 놓은 상태입니다.
◇ 정관용> 요청했고 아직 답은 없고?
◆ 김득중> 네.
◇ 정관용> 대법원까지 가 있지만 고등법원까지 국가가 이긴 거잖아요, 어쨌든.
◆ 김득중> 그렇죠.
◇ 정관용> 그렇지만 경찰이 손배소송 취하하면 없어지는 거죠?
◆ 김득중> 그렇죠. 그러면 정말 간단한 문제입니다.
◇ 정관용> 그런데 안 하고 있는 거죠?
◆ 김득중> 네.
◇ 정관용> 진상조사위원회가 권고했는데도 안 받아들이고 있는 거죠?
◆ 김득중> 그렇습니다.
◇ 정관용> 왜 그런답니까? 물어봤어요, 경찰청 쪽에?
◆ 김득중> 사실 경찰 관계자는 그런 얘기를 해요. 사실 진조위의 보고내용은 사회통념상 용인되지만 본인들은 법이 우선이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 정관용> 사회통념상 용인되지만 본인들은 법이 우선이다.
◆ 김득중> 정말 웃기는 얘기지 않습니까? 적폐를 얘기하고 개혁을 얘기하면서 경찰청 내부에 인권침해사건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거기에서 발표된 보고서에 대한 권고 내용을 사실은 이행을 하지 않는 그리고 법이 우선이라고 하는 얘기가 지금 현재 경찰청의 입장이거든요.
◇ 정관용> 경찰청의 인권침해사건진상조사위원회는 법을 모른답니까? 그분들도 법 다 알고 고등법원까지 가서 국가가 이겼다는 거 알고도 이거 국가폭력이었다. 원인이 국가로부터 시작된 것이니 손배소 취하하라고 한 거잖아요.
◆ 김득중> 그럼요. 거기에 조사위의 대부분의 위원들이 변호사분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그분들이 법을 모르겠습니까?
◇ 정관용> 그렇죠. 그런데 경찰은 원인이 국가폭력이었다, 그 당시의 진압이.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건가요?
◆ 김득중>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 정관용> 그래서 그분들은 대법원 판결까지 보겠다는 거예요?
◆ 김득중> 지금 현재 비공식적으로, 저희한테는 아니고요. 많은 언론들이 경찰 관계자에 문의가 좀 있었나 봐요. 그런데 언론을 통해서 저희한테 전달된 것은 경찰청 입장은 법원의 판결을 지켜보겠다 뭐 이런 정도로 저희가 확인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그래서 법원의 판결을 지켜봐서 대법원에서는 법리상 별 문제없으면 고등법원 판결을 그냥 그대로 보통 확정하잖아요. 만약 확정되면 그럼 지금 40명 중에 이십 몇 명 가압류 해제한 거 다시 또 한다는 겁니까, 어떻게 한다는 겁니까?
◆ 김득중> 지금 논리로 보면 사실은 그런 논리예요. 경찰청 입장이. 물론 이제 가압류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사실 21억이라고 하는 천문학적 손배 금액은, 사실 상상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지 않습니까.
◇ 정관용> 참 납득이 잘 안 되네요. 21억을 받아내기 위해서 복직을 시켜준 건가요?
◆ 김득중> 모르겠습니다. 되게 당황스러운데요. 지금으로서는 납득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가 해고 10년의 수갑은 풀렸는데 국가폭력, 국가 손배의 수갑은 아직 여전히 남아 있어서 복직한 노동자들이 경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쨌든 국가폭력에 대한 공식 사과 요청하고 그리고 작년 발표됐던 10개월이 지난 지금 현재 인권침해조사위원회 권고를 이행하라고 하는 입장에서 지금 복직한 동료들이 이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데요. 오전에 1인 시위하고 오후에는 출근하고 이렇게 해서 오늘 7일차 2주차를 지금 진행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경찰청의 인권침해사건진상조사위원회는 치유방안을 마련하라고까지 권고하지 않았습니까? 잠깐 우리 아까 언급했습니다마는 지난 10년 사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고노동자 가족 얼마나 상처가 많아요. 치유에 대한 얘기는 경찰 쪽에서 하나도 안 나오죠, 아직?
◆ 김득중> 그렇죠. 다행히 저희는 지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심리치유를 담당했던 와락이라고 하는 센터가 있어서 적은 분들이 그래도 가서 상담도 받고 해 왔는데.
◇ 정관용> 그거 다 자원봉사해 주시는 분들이 도와주는 거 아닙니까?
◆ 김득중> 후원에 의해서 그 정도 치유는 저희가 하고 있는데 거기조차도 사실은 와서 얘기하는 게 되게 힘들어요. 그래서 저는 국가 차원에서 해고노동자들의 치유 프로그램 중에 가장 큰 것은, 저는 지금이라도 당시 2009년도의 파업 관련해서 국가가 진정성 있는 사과가 필요하다. 지금 9년 동안 말 못하고 가슴 속에 남아 있는 노동자들의 얘기를 지금 끄집어내야 되는 거 아니냐 지금 그렇게 봅니다.
◇ 정관용> 국가트라우마센터 이런 것들도 만들어지고 있거든요. 그런데 전혀 쌍용차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
◆ 김득중> 저희한테 연락이 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 정관용> 권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 김득중> 네.
◇ 정관용> 사측과 협상해서 결국 복직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마는 문재인 대통령이 왜 인도 방문했을 때 마힌드라 본사 회장한테 얘기도 하고 그런 일들이 있었잖아요.
◆ 김득중> 그렇죠. 작년에 7월 달로 기억되는데요.
◇ 정관용> 그렇죠. 나름 그것도 영향이 있었을 거 아니겠습니까?
◆ 김득중> 아무래도요. 컸습니다, 저희 면에서.
◇ 정관용> 그러면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상황 다 모르고 있을까요? 경찰에서 손배도 아직 취하 안 했고 1000만 원 가압류된 거 해제됐으니 받으러 오세요 등기 보냈는데 가보니 실수였어요 이런 거 모르고 있을까요.
◆ 김득중> 아마 이제 청와대에서는 알고 있을 거예요. 알고 있지만 이 문제 해결로 접근하기까지는 저희들이 모르는 이유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 정관용> 청와대 의지가 없는 겁니까? 청와대 의지 있는데 경찰청이 말을 안 듣는 겁니까?
◆ 김득중> 저는 좀 후자로 보고 있는데요. 하여튼 뭐 이 문제 또한 해결돼야 된다고 보고 꼭 해결될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그것까지 다 해결되시면 다시 또 한 번 나오셔서 그때는 정말 흐뭇한 인터뷰로 끝내봅시다, 한번.
◆ 김득중>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 정관용>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득중 지부장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득중>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