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국 18개 은행은 지난해 10월 우리은행을 시작으로 주52시간제를 순차 시행해왔다. 조기 시행은 지난해 9월 전국금융노조와 사용자단체 간 산별교섭에 따른 합의사항이었다.
이 결과 업무용PC 사용시간을 제한하는 PC오프제, 주말근무시 평일에 쉬는 대체휴일제, 출퇴근 시간을 조절하는 유연근무제 등이 지난해부터 확산됐다. 최근 들어서는 회의시간 제한용 알람시계 사용(신한은행), PPT 보고서 금지(국민은행) 등 업체별 회의·보고 간소화도 자리잡아가고 있다.
은행권은 근무시간 단축에 따른 노동인력 부족을 인력 재배치와 로봇 도입으로 만회하고 있기도 하다. 신한·하나은행은 본점 인원 40~50여명을 업무량이 많은 일선 영업점에 파견했다. 신한·농협은행은 전자문서 관리 등 단순 반복업무에 대해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 시스템을 도입했다.
카드·보험·증권업계에서도 지난해부터 PC오프제와 유연근로제 등이 실시되고 있다. 특히 KB국민카드, 신한생명, HN투자증권 등 '은행계 금융지주' 산하 업체들은 '맏형'인 은행 수준의 주52시간 체제를 따라가고 있다.
비은행 계열도 다를 것은 없다. BC카드는 PC오프제를 이미 2009년 금융권 최초로 시행했고, 2016년 유연근무제를 시행 중인 롯데카드는 RPA시스템으로 주말당직 인력까지 줄였다.
삼성생명·현대해상 등 보험업체에도 유연근무제나 RPA 도입이 이뤄졌다. 올 2월 PC오프제·유연근무제를 도입한 한국투자증권 등 증권업계 전반에서도 의무시행일 이전 주52시간제가 도입된 상태다.
"금융권에서는 주52시간제 의무시행에 특별히 혼란이 없다"(은행권 인사)는 상황이다. 다만 업종에 따라, 또 동일 업계라도 직종에 따라 근무시간 편차가 있을 수 있다. 금융 근로자 일부가 근로시간 단축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300인 이상 사업장'이 아니면 주52시간제 시행 시점이 뒤로 밀리거나, 시행 불능이 될 수 있다. 금융감독원 통계상 지난해말 현재 총임직원수 300명 미달인 업체는 생보사 15개 중 4개, 증권사 45개 중 23개, 저축은행 79개 중 71개나 된다.
같은 직장일지라도 소관 업무에 따라 근무여건이 상이한 사례 역시 많다. 금융망을 유지관리해야 하는 전산부서, 국내외 시차를 극복해야 하는 외환·투자부서, 밤낮없이 고객이 들르는 공항 영업점 등의 경우 '24시간 가동'이 필수다.
이같은 직역에 있는 근무자는 52시간 근무가 불가능하거나, 52시간 이상 일하면서도 52시간만큼의 급여만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외환딜러나 증권사 애널리스트·펀드매니저 등에 대해서는 '재량근로제'를 도입해 52시간이 넘더라도 노사가 합의한 시간만큼의 근무인정·급여지급을 허용하는 방식의 특례안이 정부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는 특례 발생시 제도만 있고 내용과 의미가 퇴색될 것이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채용을 늘려 노동업무를 분산시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사무금융노조의 김호열 증권업종본부장은 "특례를 무분별하게 인정하면,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 확대라는 주52시간제 취지가 다 퇴색한다"며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질 게 뻔하고, 회사는 채용에 나설 유인을 상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 산하 전국금융산업노조도 "노동시간 상한이 정해진 이상 그만큼 일할 사람이 늘어나야 된다"(이지섭 교육문화홍보본부 실장) 입장이다. 노동조건감찰단을 가동 중인 금융노조는 업체별로 노동조건 위반이 적발되는 즉시 사측에 시정요구 등 대응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