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지 감수성이 필수인 고위공직자들이 성평등 강의를 방해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던 만큼 별다른 징계 없이 '주의'에 그친 것에 솜방망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28일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실에 따르면 경찰청은 지난달 성평등 교육을 방해한 총경 승진자 17명에 대해 지난 17일 '경찰청장 주의' 조치했다.
지난 5월29일 '치안정책과정'의 일부인 성평등 교육에서 강의를 방해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를 보여 물의를 일으켰다는 경찰의 공식 조사 결과가 나와서다. 경찰 관계자는 "해당 총경들에 대해 경찰청장 주의 조치를 내렸으며, 성평등 강의를 지난 26일 추가로 편성해 재교육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주의'는 별다른 인사 기록으로 남지 않는 가벼운 조처로 징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경찰이 '제 식구 감싸기'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총경 승진자 17명은 28일부로 치안정책과정을 수료하고 다음달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경찰청의 이번 '주의' 조치에 대해 성인지 감수성을 갖춰야할 수사기관의 고위공직자라는 점과, 이달 19일부터 성인지 교육 대상이 전체 공무원으로 확대된 점 등을 고려할 때 징계 수위가 낮다는 비판도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김영순 공동대표는 "경찰이 처벌할 의지가 없었던 것 같다"며 "여론이 뜨거우니 면피용으로 주의를 내린 것이다. 성평등 강화를 위한 앞으로의 계획 등이 전혀 없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문제가 된 성평등 교육은 지난 5월29일 경찰서장급인 총경 승진예정자 51명과 일반 부처·공공기관 임원 승진 대상자 14명 등 총 71여명이 참석했다. 경찰청이 지난해 연구용역을 통해 개발한 '경찰 관리자 성평등 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다. 총경 승진 예정자는 7시간의 성평등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
당시 교육을 맡은 여성학자 권수현 박사는 이달 초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교육생들의 태도를 공식적으로 지적했다.
권 박사는 강의 중 조별 토론을 시작하자 일부 수강자가 "피곤한데 토론 말고 강의하고 일찍 끝내라"라고 소리쳤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토론이 시작되자 "커피나 마시러 가자"며 십수명이 자리를 뜨기도 했다.
이번에 주의 조치를 받은 경찰 승진자들은 이때 교육 공간을 나갔던 사람들이다. 한 교육생은 "일 잘하면 남녀를 따지지 않는다"는 조롱도 했다고 권 박사는 증언했다.
한편, 건강보험공단은 성평등 교육 시간에 물의를 일으킨 공단 직원에 대해 아직 조치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의 진상조사 결과 건보공단 직원 정모씨는 조별 토론 중에 "그냥 앞에서 강의하고 끝내면 안 되느냐"고 수업을 방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경찰의 진상조사 결과를 최근 넘겨받았다"며 "감사실에서 징계 수위를 논의 중이다"고 밝혔다.
수업을 진행했던 권 박사도 대상자들의 조치 수위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권 박사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아직도 당시 상황이 생생하다. 건강보험공단 교육생이 한마디를 하면 여러명이 동시에 웃는 게 반복됐고 모욕적이었다"면서 "'주의'를 받고 끝낸 것은 아쉽지만 경찰 조직 특성상 어느정도 예상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찰은 여성과 외국인, 소수자를 직접 범죄 피해자로 대면하는 사람들이다. 성인지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자성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