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혐오' 발언 키우는 '제노포비아'

[노컷 딥이슈] 임금 차등적용부터 '잡종 강세'까지
외국인 혐오 퍼진 사회…정치권 부추기는 발언 난무
"사회 문제와 갈등 심하다는 반증…소수자에 책임 돌려선 안돼"
"'말실수'라고 해명하지만 신념일 가능성 높아 위험한 문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차별에 시달리는 외국인들에 대한 정치권의 혐오 발언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소수자를 겨냥해 혐오를 부추기는 이들 행태가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는 상황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대표는 지난 19일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을 차등적용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당시 황 대표는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부산 지역 중소·중견기업 대표들과의 조찬간담회에 참석해 "외국인은 우리나라에 그동안 기여해온 바가 없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똑같이 임금수준을 유지해줘야 한다는 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문화 관련 시민단체들의 반발은 거셌다. 제1야당인 한국당 대표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차별 현실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한국다문화센터는 성명서를 내고 황 대표의 발언에 대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부의 불평·불만을 약자인 외국인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후안무치한 언행"이라며 "공당인 제1야당의 대표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발언인지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황 대표의 반노동, 반인권 시각을 드러내주는 것으로 생각되기에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지탄했다.

정헌율 전북 익산시장의 발언은 또 한 번 다문화 가족들의 공분을 일으켰다.

정 시장은 지난달 11일 원광대학교에서 열린 '다문화 가족을 위한 행복 나눔 운동회'에서 축사를 맡고 "생물학적, 과학적으로 얘기한다면 잡종 강세라는 말도 있지 않나. 똑똑하고 예쁜 애들을 사회에서 잘못 지도하면 파리 폭동처럼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후에 이 발언이 문제가 되자 정 시장은 "튀기들이 얼굴도 예쁘고 똑똑하지만 튀기라는 말을 쓸수 없어 한 말이다. '당신들은 잡종이다'고 말한 게 아니라 행사에 참석한 다문화 가족들을 띄워주기 위해 한 말"이라고 해명해 불 붙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정 시장의 사과에도 사태는 좀처럼 진화되지 않고 있다.


전국이주여성쉼터협의회·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등 6개 단체 회원 100여명(경찰 추산)은 익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 시장은 다문화 가족의 자녀를 잠재적 위험 요소로 보고 관리 대상으로 표현했다. 문제는 이런 발언이 인종주의적 편견에 입각한 심각한 차별과 혐오 발언이라는 것을 인식 못 한다는 점"이라며 정 시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지난 25일 전북 익산시청에서 열린 정헌율 익산시장 규탄 기자회견. (사진=김민성 기자)
두 정치인의 혐오 발언에는 분명한 배경이 있다. 최근 외국인 근로자, 다문화 가정 등 사회 소수자인 이들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점점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들을 인종차별적 시각에서 바라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자국인 근로자들의 노동 기회를 박탈하는 존재로 여긴다.

'외국인·재외국민 건강보험 당연 가입제도' 논쟁은 외국인과 내국인들 사이 벌어진 갈등의 골을 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다.

정부가 7월 16일부터 '외국인·재외국민 건강보험 당연 가입제도'를 시행한다고 발표하자 외국인 유학생들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국내에서 소득이 없는데도 한 달에 기존보다 6~7배 가량 높아진 56,530원 가량의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결국 정부는 최종적으로 외국인 유학생의 건강보험 의무가입을 2021년 2월까지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이번에는 소식을 접한 내국인들이 건강보험 재정이 적자인데 왜 내국인 세금으로 외국인 유학생들 건강까지 책임져야 되느냐는 불만을 쏟아냈다.

오세제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취업 문제에 시달리는 청년 세대에서 특히 이런 논쟁이 발생하고 있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보니 자신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여기는 요소들에 관용적이지 못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 문제와 그에 따른 갈등이 심각하다는 반증이라고 본다. 그러나 원인은 구조에 있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건 현명하지 못하다. 어떤 사회나 가장 약한 사람들이 위기에 공격받는다. 근본적 구조 개선과 함께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정치권 인사들이 이런 사회적 흐름에 합세해 오히려 혐오를 조장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책임있는 '공인'이라면 그에 맞는 인권 감수성이 존재해야 하지만 '인종차별'이 하나의 신념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서복경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은 "보통 이런 발언을 '말실수'라고 해명하는데 사실상 신념에 가깝다고 본다. 상당히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그렇기에 합목적인 계산보다는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위험한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오 선임연구원은 "전세계 이민자 문제에 극우적인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시민들 일부를 자극해서 인종차별적 흐름으로 갈등을 유발해 정국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본다"며 "인권적 견지에서 봐도 적절하지 않고, 정치적 목적을 앞세워 이런 혐오와 배척을 부추기는 것은 정말 정치인들이 반성해야 할 일"이라고 일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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