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한승헌 (변호사)
◆ 한승헌> 안녕하세요.
◇ 김현정> 건강하십니까?
◆ 한승헌> 건강도 환자도 아니고 중간쯤. 그저 나이만큼 건강합니다.
◇ 김현정> 나이만큼 건강. (웃음) 그러시면 됐죠.
◆ 한승헌> 네.
◇ 김현정> 책을 내셨습니다. <그분을 생각한다>. 제가 그 내신 책의 서문을 보니까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해서 헌신한 인물. 어려운 삶 속에서 바른 길을 지켜온 인물들을 알리고 싶다.' 이렇게 쓰셨어요.
◆ 한승헌> 네.
◇ 김현정> 그런데 그런 인물이 바로 한 변호사님 자신 아니세요?
◆ 한승헌>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말씀이고요. 나 자신은 그저 과거에서 배우는 또는 경험을 통해서 깨닫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면서 살았을 뿐이죠.
◇ 김현정> 이렇게 겸손하세요. '나는 지금도 배우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한 변호사님. 일단 그러면 한승헌 변호사가 우리 현대사에서 뽑은 스물일곱 분은 어떤 분일까 하면서 제가 궁금해서 쭉 보니까 녹두장군 전봉준 장군부터, 이어령 교수님 이름도 보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이응노 화백도 보이고요. 광주의 어머니 조아라 선생님 성함도 보이고, 어떻게 추리셨어요? 어떻게 뽑으셨어요, 선생님?
◆ 한승헌> 저는 이분들이 훌륭한 것, 플러스 나름대로 제 개인이 그 분과 함께한 체험이라든가 이런 것을 정리해 본 겁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 막연한 존경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 겪어본 분들이신거네요. 다.
◆ 한승헌> 제가 그분들하고 어떤 공동의 목표. 당시 우리나라의 어떤 반민주적인 정권에 대한 저항. 올바른 민주 국가를 구현해보겠다는 공통의 염원. 이런 것이 이제 깔려 있죠. 그리고 그분들 한 분, 한 분은 지식을 통해서 또 자기 희생을 통해서 정말 나라를 위한 애국의 본을 보이신 그런 분들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흉내라도 내고 싶었고... 이렇게 된 거죠.
◇ 김현정> 지금 흉내라도 내고 싶었다. 이렇게 겸손하게 말씀하셨습니다마는 사실 우리 한승헌 변호사는 변호한 시국 사건이 100건이 넘습니다. 어느 하나 가벼운 사건이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어떤 사건이 제일 잊지 못할 사건으로 꼽으세요?
◆ 한승헌> 그게 이제 굳이 하나만 사건을 추려서 말씀을 드린다면 글쎄요. 1974년 봄 박정희 유신 정권에 대항한 우리나라의 청년 학생들이 엄청난 저항, 민청학련 사건이라고 있었어요. 특히 민청학련의 배후로 조작된 인민 혁명당 사건. 소위 인혁당 사건의 여러 분들. 대법원 판결 불과 몇 시간 뒤에 바로 처형이 되는데 그런 처형된 피고 중에 한 젊은이는 제가 담당했던 그런 분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잊을 수가 없죠. 특히 제가 담당했던 그 젊은이가 서울구치소에 1975년 4월 9일 새벽에 형 집행당해서 끌려갈 때 사실은 저 자신도 반공법으로 구속돼서 서울구치소에서 그런지도 모르고 잠만 자고 있었죠. 그러니까 기가 막힌 얘기입니다.
◇ 김현정> 아... 변호사도 구속 상태. 의뢰인도 구속 상태. 그날 그러니까 변호를 맡았던 그 학생이 그렇게 사형당했다는 얘기를 어떻게 전해들으셨어요?
◆ 한승헌> 새벽에 형 집행을 했는데 11시 가까이 됐을 때 서울구치소 밖에서 막 함성 소리가 들리고 많은 사람들이 외치고 하면서 그런 음성을 들었어요.
◇ 김현정> 그게 누구였습니까?
◆ 한승헌> 이게 뭐냐 하고 그 안에서 알아봤더니 대법원 판결에서 사형 판결이 확정되고 그리고 열 몇 시간 만에 바로 새벽에 형 집행을 한 것이다. 무슨 재심 기회도 주지 않고 가족과 접견할 기회도 주지 않고. 그러니까 당시에 박정희 정권은 정말 천인공노할 야만적인... 학생이 희생이 된 거죠. 시체도 내놓으라고 울부짖고 했는데 세상에 시신조차도 가족에게 넘겨주지 않은 그런 악독한 정권이 바로 박정희 정권이죠.
◇ 김현정> 참 야만적인, 야만적인 일들이 벌어졌던 시절이에요.
◆ 한승헌> 그래서 우리나라가 사법 살인 국가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을 받았죠.
◇ 김현정>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그 의뢰인 청년의 이름을 혹시 기억하십니까?
◆ 한승헌> 그럼요. 여정남 군이라고.
◇ 김현정> 여정남 군.
◆ 한승헌> 여정남. 이번 책에도 나와 있습니다마는 경북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 젊은이입니다. 그런데 이제 국가를 전복하려 했다. 조작된 사건으로 희생이 된 거죠.
◆ 한승헌> 참 우연과 우연이 부딪친 건데요. 내가 1975년 봄에 당국이 저를 반공법으로 잡아넣었는데 그때 서울구치소에 있을 때 많은 시위 학생들이 잡혀오고 했죠. 그런데 그 제가 같은 층에 옆방에 어떤 학생이 또 잡혀왔다고 해서 한여름이고 해서 얼마나 땀 흘리고 힘들겠어요. 그래서 제 메리야스, 내의를 교도관 통해서 옆방에 보내줬죠. 그게 누구인지 이름이나 그런 건 알 바가 아니었고 다만 경희대 학생인지 데모를 하다 잡혀왔다 하는 정도만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나중에 그 후에 석방이 돼서 또 부산 가서 노무현 변호사 만나는 자리에서 문재인 변호사 만났는데요. 자기가 바로 그 메리야스 내의를 받은 문재인이라고 인사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얼마나 참 반갑고 감격스럽고 그런 사이였어요.
◇ 김현정> 메리야스 나눠주던 사이시네요. 나눠입던 사이.
◆ 한승헌> 운명이라는 문재인 변호사 책을 읽은 어느 분이 저한테 전화를 했어요. '아이고, 그렇게 좋은 일을 하셨냐'라고 이제 덕담 차원에서 나한테 칭찬을 할 줄 알았더니 또 하는 소리가 '그때 그 메리야스가 사이즈가 맞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더라고요.
◇ 김현정> 맞았답니까, 정말?
◆ 한승헌> 그러니까 제가 이제 메리야스니까 늘어나서 맞지 안 맞겠냐고 했죠.
◇ 김현정> (웃음) 여러분, 지금 느끼시겠지만 한승헌 변호사께서는 유머 감각이 있으세요.
◇ 김현정> 그러니까 옛날에는 비판을 하더라도 좀 이렇게 은유적으로 둘러서 말하는 이런 여유가 있었는데. 풍자의 미덕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냥 직설적으로 막말을 꽂아버리는 거친 언사들이 오고갑니다. 이거 참...
◆ 한승헌> 글쎄, 그건 참... 그 사람들의 어떤 지능 내지 교양의 한계같아요. 나는 하나의 수준, 수준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국민들은 그걸 그 사람의 어떤 식견의 척도로 알고 비판을 해야죠. 선거 때 분명하게 일침을 놓고 선택을 하면 좀 정신을 차릴지 모르죠.
◇ 김현정> 좋은 말씀입니다. 선생님, 건강하시고요.
◆ 한승헌> 네.
◇ 김현정> 앞으로도 오래오래 사시면서 세상에 일침, 여유, 유머 많이많이 좀 나눠주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 한승헌> 고맙습니다.
◇ 김현정> 고맙습니다. <그분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내셨어요. 우리 시대의 원로 한승헌 변호사였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