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원에 달하는 고용보험기금을 운용하게 된 한국투자증권을 둘러싸고 자격 논란이 불거졌다.
불법 대출 혐의로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주간운용사 후보에서 배제되지 않은데다 최종 평가에서도 제재 사항이 반영되지 않는 등 선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 한투,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 조치안 통보 받은 상태서 주간 운용사 선정
27일 고용노동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노동부는 지난 3월 28일 고용보험기금 위탁사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투자증권(한투)을 선정했다. 한투는 2015년 4월 고용보험기금 전담운용사로 선정된 이후 두 번째로 기금을 운용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고용보험기금은 노동자와 사업자가 절반씩 부담하는 돈으로, 한 해 10조원이 넘는 규모다. 실업급여와 고용안정, 직업 개발 등에 사용된다. 운용 업무는 다음 달 1일부터 재개된다.
문제는 한투가 발행어음 자금을 최태원 SK 회장에게 부당 대출을 한 혐의로 금융감독원의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인데도 고용보험기금 주간운용사 후보에서 배제되지 않은데다, 종합평가 결과 3점 차이로 1등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노동부는 올해 1월 1차 심사를 통해 한국투자증권, KB증권, NH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를 후보로 선정했다. 이어 3월 기술평가(90점)와 가격평가(10점) 등 정성평가로 이뤄진 2차 평가를 통해 한투를 우선협상자로 낙점했다.
금감원은 제재 조치를 확정짓기 위해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에서도 두 차례나 한투 제재에 대한 논의를 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고, 2월에 열린 제재심에는 안건이 상정조차되지 않았다.
결국 두 번째 심의 석달 만인 4월 3일에야 제재심이 열려 기관 경고, 금융위에 과징금 및 과태료 부과 건의, 임직원 주의 및 감봉을 결정했다. 금융위원회는 26일 정례회의에서 발행어음 불법 대출 등에 대한 과태료 부과 등 한투의 4가지 위법 행위에 대한 결론을 최종 확정했다.
노동부는 올해 1월 증권사들이 제안서를 제출해 1차로 후보자들을 선정할 때 금감원 제재 조치 등에 대한 사항을 반영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제재가 확정되지 않아 1차 후보자 선정 시 점수에 반영되지 않았고, 2차 정성평가에서는 제재 조치 등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1차 후보자를 선정할 당시 한투가 발행어음과 관련해 제재를 받을 만한 상황이 있다고 들었다"면서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제재를 할 건지는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투의 점수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차 평가는 수치로 확인되지 않는 정성평가만 한다. 기금마다 다르겠지만 우리의 경우 다수의 업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데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라면서 "2차에서는 위원들이 PT를 보고 능력을 평가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고용보험기금 주간운용사 우선협상자로 선정(3월 28일)된 지 약 일주일 만에 차일피일 미루던 금감원 제재심(4월 3일)이 확정됐다.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의 제재가 미뤄진 것이 이같은 우선협상자 선정 등 인허가 관련 사항과 관계가 있지 않겠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일부 영업정지, 대표이사 해임 권고 등으로 금감원 제재심에 부의돼 있다는 것 자체로 평판은 물론 향후 안정적인 기금 운용이 의문스러울 만한 상황"이라면서 "2차에서 정성평가가 진행 중일 때라도 제재 조치 등을 반영하거나 이후 증선위, 금융위 정례회의 등에서 제재가 확정됐을 때를 논의했어야 하는 게 정상"이라고 꼬집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동부가 '고용산재기금 차기 주간운용사 선정기준'에 투명성 지표 측정을 신설하고도 불법 대출 등 관련법 위반으로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증권사의 입찰 참가에 감점 조치 등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한 의원은 "금융위에서 제재 사항이 최종 확인되었음에도 차기 주간운용사로 계약을 체결하는데 별도의 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면서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기금 운용을 관리해야 할 기금 관리 주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으로, 시정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