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문제를 둘러싸고 양국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이 그간 외교적 논의를 요구해 왔다는 점에서, 한일정상회담을 거부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도 나온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 25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사카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한일 정상회담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항상 준비가 돼 있지만, 일본은 준비가 안 돼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사실상 한일정상회담이 무산된 것이다.
우리 정부가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해 양국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은 사실상 일본 측의 입장을 고려한 중재안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총리실 산하 TF를 구성해 해당 사안을 검토해 왔다.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기본 입장 아래 피해자들의 고통과 상처에 실질적 치유, 그리고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 필요성 등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사안을 다루어 왔고, 앞으로도 이를 바탕으로 동 사안을 다루어 나갈 예정이란 것이 그간 일관되게 내비쳐 온 우리 정부의 입장이었다.
이에 반해 일본 측은 외교적 논의와 중재위 개최까지 언급하며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악화되는 한일관계를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다는 우리 정부의 결단이 입장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우리 정부의 안을 거절했다. 기본적으로 일본 측은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이 한일 청구권 협정을 어긴 것으로 국제법 상 맞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국가 간 국가'의 문제로 한국을 압박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개인 보상'의 사례를 만드는 것보다 낫다는 실리적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일본 내부 정치적인 요소도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당장 7월 중순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집권 자민당과 아베 총리 입장에서는 강제징용 판결, 위안부 재단 해산, 초계기 갈등 등으로 악화된 반한(反韓) 분위기 속에 한일 정상회담을 무리해서 성사시키면 지지층의 역풍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에게 안전한 상황이 아니라서, 국내 여론의 눈을 잡기 위한 방편으로 '한국 두드리기'를 선택한 것 같다. 일본 측에서 아직은 한국에 대해 강하게 나가도 될 타이밍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 하다"고 설명했다.
정부 역시 참의원 선거 이후에나 일정을 제대로 조율할 수 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선거라는 변수를 앞두고 단시간에 해결되기 힘든 한일 과거사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정치적으로 안전한 선택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일본이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하더라도 북한 문제 등이 긴밀하게 논의될 것으로 보이는 이번 G20 회의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한일 정상도 약식 형태의 만남을 가질 가능성은 남아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또다른 외교소식통은 "미국 측도 한일관계 복원을 언급하며 중재, 개입하기 시작한만큼 오히려 무리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한미 간 논의를 연결고리로 일본과도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 좋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