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비스트',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노컷 리뷰] 사건을 좇는 두 형사의 경쟁과 대립에 초점 맞춰
이성민-유재명의 에너지와 관록 느껴지는 연기 눈길
외양도 내면도 특이한 춘배 역 전혜진도 놓치지 말아야
직접 보여주진 않지만 소름 돋는 범죄 묘사, 호불호 갈릴 수도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비스트'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 이 기사에는 영화 '비스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정호 감독의 신작 '비스트'에서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누구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주인공은 두 형사다. 희대의 살인마를 잡을 결정적 단서를 얻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은폐한 형사 한수(이성민 분). 이를 눈치챈 라이벌 형사 민태(유재명 분). 둘의 대립과 갈등이 영화의 중심에 있다.

한수와 민태는 한때 '동료'라고 불렀던 사이지만, 현재는 강력 1팀-2팀의 팀장으로서 각기 다른 스타일로 팀을 이끈다.

한수는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는 범죄자들을 끝내 소탕하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의 부적절함을 기꺼이 용인하는 형사다. 서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주변 동료들 평가도 좋다.

말과 행동에서 뜨거운 불같은 사람이라는 걸 바로 짐작할 수 있는 한수와 달리, 민태는 원칙주의자다. 한수에게 "잡고 싶은 놈"이 아니라 "범인을 잡으라"는 민태의 말엔 뼈가 있다. 차가운 얼음 같아 보이지만,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뭐라도 할 준비가 돼 있다. 다만 주변에 사람이 따르지 않는다.

영화는 형사 둘이 나오는 스릴러가 대개 그렇듯, 잔혹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실종 17일째인 여고생은 끔찍한 형상으로 나타난다. 한수는 오랜 경험과 '촉'으로, 아직 신학 공부 중인 부제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자백을 받아낸다. 그러나 피를 무서워해 토막 살인은 엄두도 못 낸다는 사실을 민태가 알아내며 사건은 다시 미궁 속으로 빠진다.

한수의 정보원을 자처하며 오랜 시간을 쌓아온 마약 브로커 춘배(전혜진 분)는 자신을 감옥에 넣은 자를 한수의 총으로 죽인다. 본인의 알리바이를 만들어주면 한수가 좇는 사건의 범인을 알려주겠다면서.

'비스트'는 예상 밖의 전개를 거듭하는 영화다. 용의자는 자꾸만 달라진다. 부제에서, 거구의 사내에서, 그의 아버지로. 협력하거나 대립하는 관계도 바뀐다. 영화 초반 기세 차이가 분명히 드러났던 한수와 민태 관계도 뒤집힌다. 한수는 감추고 속여야 할 것이 생겼고, 민태는 이를 눈치채며 우위를 점하기 때문이다.


'비스트'는 대립하는 두 형사 한수(이성민 분)와 민태(유재명 분)의 이야기를 다뤘다.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하지만 한수와 민태의 반목을 포함해 영화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하기엔, 설명이 부족하고 불친절한 편이다. 감정과 상황이 극한으로 치달아, 관객 역시 극중 인물의 고통을 느껴볼 수 있다. 문제는 그 분노의 영문을 잘 모르겠다는 데에서 온다. 이 '손에 잡히지 않는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한 데는 배우들의 공이 컸다.

절대 드러나선 안 될 자신의 치부가 들킬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한수. 그 극도의 불안을 이성민은 혀를 내두를 만한 연기로 표현했다. 매우 동요했으면서 애써 태연한 척하려는 태도도, 혼란스러운 마음도, 그간 싫어하고 잡으려고 했던 '괴물'에 가까워지는 자신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도, 이성민이라는 배우가 아니었으면 관객들을 설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대편에 있는 민태도 마찬가지다. 자신만의 원칙을 갖고 나아가려 해도 턱턱 막히는 조급함, 열등감과 질투심, 분노 등 한수를 향한 다양한 결의 감정, 조직을 불신하고 원망하는 것까지… 자칫하면 안개처럼 가늠되지 않을 수 있는 캐릭터를 구체화한 것은 오롯이 유재명의 몫이다.

예고편과 스틸에서도 강렬한 모습으로 시선을 잡아끈 전혜진은, 이전 작품에서 볼 수 없던 '제멋대로의', '이상한' 에너지를 마음껏 내뿜는다. 가장 분명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 춘배 캐릭터는 분량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관객들 머리에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정호 감독은 "폭력 수위가 굉장히 많이 작아져서 저희끼리는 뽀로로 버전이 됐다고 얘기한다. 어떤 부분이 센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했지만, 스크린에 펼쳐지는 고통의 수위가 센지 약한지는 의견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맞는 사람의 얼굴에 수건을 덮어 일그러진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살인 과정을 클로즈업해 전시하기보다는 이미 해를 입은 이들의 모습이 짧게 스쳐 지나가는 등 '직접 묘사'는 피해갔다.

하지만 토막 살인을 할 때 고기 해체 기구가 쓰였다는 것, 피해자가 지르는 비명을 녹음해두고 그것을 들었다는 것 등 소름 끼치는 설정이 나온다. 꼭 '눈으로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공포도 있다. 또한 범죄자들의 소굴로 그려지는 장소에 조선족(태국인도 있다)을 등장시킨 건 국내 범죄물의 클리셰로 느껴졌다.

쫓고 쫓기는 두 형사의 '긴장감 넘치는 대립'을 보여주기엔, 너무 많은 사람과 사건이 등장해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덜어내기'의 미덕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26일 개봉, 상영시간 130분 47초, 15세 이상 관람가, 범죄/스릴러.

한수의 오랜 정보원이자 희대의 살인마에 관한 단서를 알고 있는 춘배 역은 배우 전혜진이 연기했다.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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