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PK가 재점화한 신공항…총선 앞두고 전방위 정쟁 우려

부울경 지자체장-국토부장관, 김해신공항 판단 총리실에 맡기자 논란 재점화
지난 정부서 지은 매듭, '적정성' 이유삼아 일방 파기
여야 TK 정치권 "매번 재검증 할거냐…약속 지켜야 한다"
PK 정치권은 "대구공항 해결됐잖나…훈수질 하지말라"며 상호비난
총선 9개월 앞두고 불거진 논란에 "국민만 피로해져" 지적도

김해공항(사진=연합뉴스)

국토교통부와 부산·울산·경남의 시도지사가 김해공항의 관문 공항 적합성 판단을 국무총리실로 넘기면서 정치권이 해묵은 동남권 신공항 정쟁에 다시 휩싸였다.

영남의 5개 광역지자체장이 과거 합의한 내용을 번복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대구·경북(TK)에서는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들마저 같은 여당 소속의 부산·경남(PK) 지자체장들을 비난하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등 벌써부터 총선만 생각하는 치열한 생존경쟁이 펼쳐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 TK 의원들로 구성된 대구·경북발전협의회 소속 의원 10여명은 21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개 광역단체장과 합의로 이뤄진 국가적 결정을 여당 소속 3개 단체장과 국토부 장관이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다"며 "앞으로 재검증을 요구하면 그때마다 총리실이 재검증에 나설 것이냐"고 이번 결정을 강하게 비난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대구광역시당도 이날 오후 성명서를 통해 "이번 검증 합의로 인해 지역갈등은 재점화됐고 대구·경북민은 또 다시 깊은 상처를 받았다"며 "총리실의 김해신공항 재검증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TK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총리실과 국토부, 부울경 광역단체장들의 결정을 비난하고 나선 것은 전날 김현미 국토부장관과 오거돈 부산시장, 송철호 울산시장, 김경수 경남지사가 김해공항 확장이 동남권 신공항으로 적합한지 여부를 총리실에 묻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동남권 신공항은 최초로 필요성이 제기된 2003년 이래로 대선과 총선 때마다 단골로 공약에 등장한 뜨거운 감자다.

신공항 부지로 TK는 밀양을, PK는 가덕도를 요구하면서 10여 년 동안 경남북 간 지역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밀양은 영남 전 지역에서 1시간 이내에 접근이 가능하고, 내륙지역에 위치한 만큼 유사시 섬에 위치한 인천공항을 대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산을 깎아내야 하고, 부산과 직결된 도로·철도가 없으며, 인근에 대도시가 없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가덕도는 인천공항과 같이 바다에 인접해 있어 장애물이 없고, 소음 문제로부터 자유로우며, 부산 신항과의 연계가 용이한 점이 장점이다. 다만 지나치게 남쪽에 위치해 경북지역에서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이명박정부 때는 당초 2009년에 발표할 예정이던 용역조사 결과 공기를 3차례나 미루더니 2011년 3월 밀양과 가덕도 모두 적합하지 않다며 백지화를 발표해 거센 논란에 휩쓸리기도 했다.

결국 박근혜정부는 2013년 동남권 신공한 건설을 공식화하고 조사에 다시 착수했는데 객관성 확보를 위해 국내가 아닌 프랑스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에 연구 용역을 의뢰하기도 했다.

용역 결과 김해 공항 확장이 1위, 밀양 공향이 2위, 가덕도 공항이 3위로 나타났고, 영남 5개 광역시도가 정부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합의를 하면서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가덕도 신공항을 공약한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또 다른 국면을 맞게 됐다.

이후 지난해 지방선거를 통해 선출된 민주당 소속 부울경 3개 지역 광역지자체장은 급기야 지난해 11월 자체 '부산·울산·경남 동남권 관문공항 검증단'을 꾸려 김해 신공항 적합성 조사에 나섰다.

검증단은 지난달 항공안전, 소음, 활주로의 처리용량, 진입표면 장애물, 평강천 등 환경 훼손 등의 이유로 인해 2조원이 추가로 투입될 수 있는 김해 신공항이 관문공항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냈고 이를 국토부에 들고 갔다.

국토부는 기존 용역보고서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계속 고수해왔기 때문에 검증단과의 갈등이 예상됐지만 뜻밖으로 김 장관이 이 문제를 총리실이 해결하도록 하자는 부울경 지자체당들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결국 총리실이 최종 판단을 맡게 된 셈이다.

지역별 입장과 정부의 입장이 다르다보니 첨예한 대립이 이어졌고, 사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어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총리실이 총대를 메게 된 셈이다.

만일 총리실이 김해 신공항이 관문 공항으로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면 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고, 부울경이 원하고 있는 가덕도가 신공항 부지로 힘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연합뉴스)

이러다보니 그동안 동남권 신공항 문제를 함께 논의해왔던 TK 지자체장과 TK지역 의원들로서는 정부가 덥석 PK 지자체장들만의 요구를 수용한 일에 대해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최근까지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냈던 대구 수성구갑의 민주당 김부겸 의원마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같은 여당 소속 지자체장들의 움직이라 조금은 점잖게 얘기를 해야겠지만 앞서 영남지역 5개 지자체장들이 한 약속과 절차적 정당성은 충분히 지켜져야 하지 않겠느냐"며 "김해신공항에 대한 국토부의 입장이 존중돼야 한다"고 지적에 나섰다.

하지만 PK지역 의원들은 이같은 TK의 주장이 과도한 간섭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PK 역내에 지어지는 공항인 만큼 철저한 검증이 필요해 검증을 해보니 각종 단점을 비롯해 추가비용까지 우려되는 상황이고, TK는 가장 큰 지역 현안이던 대구공항 이전 문제를 매듭지은 만큼 경남권에서 일어나는 논의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부울경 동남권 관문공항 검증단장을 맡은 민주당 김정호 의원은 "이미 대구공항 이전이 정해져서 TK가 이 문제에 관여할 명분이 없는데, 자기들 실속은 이미 다 차려놓고 왜 남의 밥상에 배 놔라 감 놔라 훈수 질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대구공항 이전 과정에서 미군 전략자산 시설을 옮기는 비용이 예상보다 크게 발생하니 이를 정부더러 책임지라고 하기 위한 협상력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한국당의 PK 의원들도 노골적인 비난은 삼갔지만 같은 당 내 TK 의원들의 움직임에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일"이라며 못마땅한 속내를 감추지는 않는 모습이다.

주무부처 장관과 여당 출신 지자체장들이 기존의 합의를 파기하고 총리실에 공을 떠넘긴 탓에 여야가 지역으로 나뉘어 피아 구분없이 비난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특히 내년도 총선을 불과 9개월여 앞둔 시기에 논란이 재점화 된 탓에 TK의 여야와 PK의 여야는 다른 진영이 선거 승리에 눈이 멀어 불필요한 정쟁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들도 나오고 있다.

한국당 조경태 의원은 "대통령이 공약을 하셨으면 공약을 지키면 되고, 그렇지 못할 사정이 생겼으면 사과를 해서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면 될 텐데 선거가 내년에 있다보니 의도적으로 차일피일 미룬 것"이라며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니 지역 간 갈등만 유발되고 결국 선거 때가 다가오면서 지역민들의 피로감만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도 "과거에도 신공항 공약이 없지 않았고, PK 민심을 공략하러 가는데 신공항을 안 하겠다고 할 순 없으니 이와 관련한 정치권의 발언을 막을 수야 있겠느냐"면서도 "이미 충분한 갈등이 유발됐고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조사와 합의까지 마무리됐는데 이 문제를 다시 꺼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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