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객을 상대하다가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사망에 이르게 된 경찰관을 법원이 국가유공자로 인정할지 주목된다. 경찰 직무수행의 위험성과 스트레스성 상황을 얼마나 폭넓게 받아들일 지가 쟁점이다.
지난 19일 서울고법 행정6부(박형남 부장판사)는 고(故) 차정후 경사의 아내 권모씨가 경기남부보훈지청장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 비해당결정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의 변론기일을 열었다.
이날 재판에 나온 유가족 측 손익천 변호사와 보훈지청 측은 차 경사의 사망과 현장 업무의 위험성이 직결되는 지 여부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의정부경찰서 소속이던 차 경사는 2015년 4월 5일 밤 9시 40분쯤 취객 난동 신고를 접수하고 현장에 출동했다. 만취 상태이던 신고인은 욕설과 함께 소리를 지르며 차 경사의 얼굴에 머리를 들이 밀었고, 이를 제지하던 차 경사는 10여분 후 갑작스러운 두통을 호소하다가 쓰러졌다.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뇌출혈로 이틀 만에 사망했다.
부검 결과 차 경사의 구체적 사망 원인은 뇌동맥류 파열로 인한 지주막하 출혈로 나타났다. 유가족은 차 경사를 국가유공자로 등록해달라고 신청했지만 국가보훈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가유공자로 인정되려면 위험직무수행이 질병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돼야 하는데 고인에게는 이미 뇌동맥류가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사망의 원인이 직무 수행의 스트레스 때문인지 평소 신체 상태의 영향인지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유가족은 수원지법에 국가보훈처의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 재판부 역시 지난해 12월 국가보훈처와 같은 판단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망인은 주로 큰 소리의 욕설을 들었을 뿐이고 객관적으로 보아 망인의 생명에 직접적인 위해를 줄 정도의 과격한 폭력상황에 노출된 것은 아니라고 보인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기존의 질병이 직무수행으로 일부 악화된 것에 불과한 경우 등에는 직무수행이 사망이나 상이의 주된 원인이 됐다고 볼 수 없어 국가유공자 요건 인정 범위에 해당하기 어렵다"고 판시한 바 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경찰관 현장 업무의 위험상황에 대해 더욱 심도 있게 들여다볼 것으로 보인다. 이날 재판에서 박 부장판사는 "(사망) 원인은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고 경찰관이 신고를 받고 나가서 쓰러져 죽었지 않냐"며 "테러라든지 데모 등 위법·폭행 현장에 나갔다가 사망한 경우는 국가유공자로 인정될 수 있냐"고 피고(보훈지청) 측에 물었다.
피고 측이 "현장에서 상대방이 휘두른 흉기에 맞아 숨지게 되면 직접 원인이 된다"고 하자 박 부장판사는 "그것이 이 사건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차 경사의 지병 유무를 묻는 논쟁을 넘어, 폭력적인 취객을 상대하는 경찰관 업무가 다른 위험 현장업무와 비교했을 때 비교적 가벼운 수준으로만 볼 수 있는지 따져본 것이다.
유족 측 손 변호사는 "통계적으로 경찰관이 가장 많이 사망에 이르는 사례로 '논쟁 중인 상황'이 꼽힌다"며 "경찰은 현장 출동 업무에서 여러 사람의 인권을 보호하면서도 아직 피해자인지 피의자인지 알 수 없는 인물을 제압하기도 하는 등 매우 무방비한 상황에 노출된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대법원의 판례 취지는 망인이 건강관리를 잘못하는 등 다른 요인들이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을 때를 배제하기 위한 것"이라며 "차 경사의 사례처럼 급격히 흥분 상황에 놓인 경우까지 배제하려는 취지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4월 국무총리 소속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원회는 취객에게 폭행당한 후 투병하다 숨진 고 강연희 소방경에 대해 '위험직무순직'을 승인하기도 했다. 강 소방경은 취객으로부터 폭언·폭행 상황을 겪은 지 약 22일 후에 뇌동맥류 파열로 쓰러져 숨졌다.
한편 차 경사의 동료 경찰관 1만5000여명은 최근 2심 재판부에 차 경사의 국가유공자 인정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고 지난 18일과 19일 서초동 서울고법청사 앞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였다.
한 동료 경찰관은 "차 경사님은 애초에 동료에게 지령이 내려진 사건인데도 지원을 나가겠다며 먼저 현장에 도착해 신고자와 대응하던 중 사고를 당해 더욱 안타깝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음달 24일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