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표준계약서 첫발…"도입 유의미·지상파만 한계"

지상파 3사 등 공동협의체, '지상파방송 드라마제작환경 가이드라인 기본사항' 합의
드라마 종사자 131명 중 37명 만이 표준계약서 사용 경험
이번 '드라마제작환경 가이드라인'은 지상파 3사에만 적용된다는 한계 있어
한빛센터 "지상파뿐 아니라 전 영역, 그리고 모든 장르에 걸쳐 도입 필요"

사진 왼쪽부터 KBS2 '단, 하나의 사랑', MBC '검법남녀 2', SBS '녹두꽃' 포스터. (사진=KBS, MBC, SBS 제공)
방송계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손꼽히는 드라마 제작 현장에 표준근로계약서 시대가 열리게 된 가운데, 지상파 3사 외에도 다른 방송사들의 동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전국언론노조(위원장 오정훈, 이하 언론노조)는 지난 20일 KBS, MBC, SBS 등 지상파방송 3사와 언론노조,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로 구성된 '지상파방송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 공동협의체'가 '지상파방송 드라마제작환경 가이드라인 기본사항'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합의는 지상파방송 산별협약에 따라 언론노조와 지상파 3사가 '드라마제작환경개선특별협의체'를 구성한 지 6개월, 드라마제작사협회와 방송스태프지부까지 참여해 4자 간 협의체로 전환한 지 2개월 만에 끌어낸 결과다.

공동협의체는 이번에 합의한 기본 가이드라인에 따라 드라마 제작현장의 장시간노동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주 52시간제 시행에 대비해 노동시간 단축 상황을 점검하는 것은 물론, 스태프와 계약할 때는 드라마스태프 표준근로계약서를 적용하기로 했다.

'2018 방송제작 노동환경 실태조사'
◇ 드라마 종사자 131명 중 37명만이 표준계약서 사용 경험 있어

이에 그간 제대로 된 노동 환경을 보장받지 못했던 드라마 현장 스태프들에게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방송영상콘텐츠 제작역량 강화 및 제작인력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동환경 전반을 시범 분석한 '2018 방송제작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408명 중 드라마 종사자 131명 가운데 37명만이 표준계약서 사용 경험을 가졌다.

직종별로 살펴보면 드라마 작가의 71.4%(15명), 드라마 연출 스태프의 60.0%(3명)가 표준계약서를 사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기술 스태프의 경우 18.1%(19명)만이 표준계약서 작성 경험이 있었다.

표준계약서 사용 경험에 대한 심층 인터뷰 결과에 따르면 협·단체 차원에서 지속해서 내용을 전달받은 경우 표준계약서 인지가 뚜렷한 반면, 일부 직군에서는 표준계약서 인지율이 다소 낮았다. 표준계약서를 인지하고 있어도 계약서 내용을 협의할 수 있는 여지가 적어 표준계약서를 준용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15년차 드라마 촬영 스태프는 "문체부에서 상황에 맞게 쓰라고 표준계약서를 여러 안을 만들어줬다. 그런데 그걸 선택해서 쓸 여지가 없다"라며 "제작사에서 내민 계약서가 곧 정해진 계약서"라고 말했다.

20년차 드라마 조명 스태프는 "스태프 입장에서 자기가 근로계약서를 써야 하는지, 프리랜서 계약을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문체부에서 내놓은 여러 가지 계약서가 있어도, 제작사는 당연히 자신들한테 유리한 계약서만 채택해서 쓰는 것 같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공동협의체는 이번 합의를 바탕으로 오는 9월까지 드라마스태프 표준인건비기준과 표준근로계약서 내용을 마련한 후 현장에 적용할 계획이다.

또한 제작현장 내 스태프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하여 드라마 제작 현장별로 '종사자협의체'를 설치해 운영하기로 했다. '종사자협의체'는 방송사와 제작사 책임자, 스태프 대표자가 노동시간과 휴게시간, 산업안전 조치, 기타 근로조건에 대해 협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다.

방송스태프노조, 언론노조, 한빛센터 등 관계자들이 지난 5월 16일 오후 서울 상암동 CJ ENM 사옥 앞에서 ‘아스달 연대기’ 문제해결 및 고 이한빛 PD 사건 재발 방지 약속 이행 촉구 플래시몹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지상파 3사뿐 아니라 전 영역에 걸쳐 '가이드라인' 도입되어야 해

이 같은 합의 내용에 대해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한빛센터)는 21일 논평을 내고 '지상파 방송 드라마 제작 가이드라인' 도입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한빛센터는 "오랜 시간 동안 모르쇠로 일관했던 지상파 방송사들이 책임 있는 자세를 드러내고, 방송 노동자들이 드라마 제작의 당당한 주체임을 입증한 유의미한 움직임"이라며 "언론노조가 방송-미디어 노동의 문제 해결에 함께하며 만든 연대가 낳은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빛센터는 이번 가이드라인이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에만 적용된다는 한계를 지적했다.

과거와 달리 다채널 다매체 시대에 드라마를 제작하는 주요 주체가 지상파 3사에만 그치지 않고 JTBC 등 종합편성채널을 비롯해 드라마 제작 대표 주자로 부상한 CJ ENM 등 케이블 채널,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 등으로 확장됐기 때문이다.

한빛센터는 "이번 가이드라인 도입에 전 영역의 방송사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를 요구한다"라며 "동시에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 시사교양,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 제작 현장에도 이른 시일 내에 가이드라인이 도입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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