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훈이 '기생충'을 만나고 겪은 꿈 같은 일들

[노컷 인터뷰] 영화 '기생충' 근세 역 박명훈 ②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기생충' 근세 역 배우 박명훈을 만났다. (사진=세컨드윈드 필름, (유)산다문화산업전문회사 제공)
※ 이 기사에는 영화 '기생충'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시고 기사 읽기를 권장합니다.

지난달 21일(현지 시각)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세상에 처음 공개된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 배우와 제작진 등 관계자들은 정식 개봉 전에 기술 시사 등으로 먼저 영화를 본다. 하지만 박명훈은 봉준호 감독의 특별한 배려로 그보다 더 빠르게, 배우 중 가장 처음으로 '기생충'을 봤다.

본인보다 더 영화를 좋아하고 많이 본 '영화광' 아버지 덕분이었다. 박명훈의 아버지가 현재 폐암 투병 중이라는 이야기를 사석에서 들은 봉 감독이 먼저 제안해 극소수의 관계자만 참석하는 시사에, 박명훈과 그의 아버지를 초대한 것이다. 박명훈은 봉 감독 덕에 '크나큰 효도'를 하게 됐다면서 "인간에 대한 배려와 관심과 애정이 감독님을 더 훌륭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명훈은 이처럼 믿기 힘든 일이 '기생충' 촬영 중에도 일어났다고 전했다. 지하에 오래 살았던 근세의 감정에 닿아보기 위해, 본인 촬영 전 미리 전주 세트장에 내려왔을 때 생긴 일이다. 박명훈이 직접 밝힌 '꿈 같은 순간'을 공개한다.

◇ 함께 즐거운 추억을 나눈 '기생충' 배우들

박명훈은 '기생충'에서 아내 문광(이정은 분) 덕에 박사장(이선균 분)네 지하에 숨어 사는 근세 역을 맡았다. 부부로 연기 호흡을 맞춘 이정은과는 2005년 '라이어'라는 공연을 6개월 동안 하면서 친해졌다.

이정은은 앞서 진행한 언론 인터뷰에서 박명훈이 착해서 지금처럼 복을 받은 거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자 박명훈은 "제가요?"라고 되물으며 오히려 이정은을 칭찬했다. "개인적으로 밥 드시고 해 보면, 사람들을 얼마나 꼼꼼히 챙겨주는지 말로 할 수가 없다"고.

이어, "문광이 근세를 챙기듯이 저한테도 너무 그렇게 챙겨주시니까 정말 무장해제된다, 누나한테는. 그 마음이 진짜 하는 척이 아니라, 진심을 다해서 사람을 챙겨주기 때문에… 다른 배우들, 스태프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부연했다.

"이정은 배우가 ('라이어' 때) 제일 선배님이었어요. 공연이라는 게 저희 배우들끼리 약속에 의해서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잖아요. 공연엔 NG가 있을 수 없으니까요. 6개월간 공연하다 보면 가끔은 기계적으로 할 수도 있는데 그런 틈이 보일 때마다 후배 배우들과 그 장면에 대해서 다시 연구하고 다시 한번 복기하셨어요. 그땐 누나가 매체 쪽으로 전혀 (활동) 안 하실 때긴 했는데, 연기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도 뛰어나셨고 모두의 모범이 됐던 선배님이었어요. (제가) 봉준호 감독님 리스펙트하는 것처럼 누나도 인간에 대한 굉장한 관심을 갖고 계세요. '명훈이가 잘 돼서 좋다' 이런 말도 진심으로 하시는 말이에요, 빈말이 아니에요. 영화 끝난 다음에도 하루에 문자를 수십 통을 주고받고 통화도 여러 통 하고 애틋하고 끈끈하게 부부처럼 지내고 있어요. (웃음)"

'기생충' 800만 돌파를 기념해 배우들은 오는 23일 서울 잠실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 무대인사를 할 예정이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공식 트위터)
'기생충'에서 전원 백수인 가족의 가장인 기택 역을 맡은 송강호하고도 특별한 시간을 쌓아갔다. 어렸을 때부터 송강호가 나온 작품을 보고 자랐다는 박명훈은 "연기자 선배님으로 제가 제일 존경하는 훌륭한 선배님"이라고 표현했다. 처음에 만났을 때도 마치 영화 화면을 보는 것 같아서 어안이 벙벙했다고 털어놨다.

"제가 한 달 전에 세트장 갔다고 했잖아요. 송강호 선배님이 굉장히 잘 챙겨주셨어요. 그땐 (정식) 촬영 전이라서 (현장에 제) 매니저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본인 차로 항상 데려다주셨어요. 저희 숙소랑 세트장까지 차로 20~30분 걸리는데 항상 저를 픽업하시고 데려다주시고 식사도 맨날 사 주셨어요. 아침에도 전화 와서 '아침을 먹었냐' 하시고요. 정말 이게 꿈인가 생신가 할 정도로 너무 그런 배려심으로… 어떻게 보면 저는 영화계에서도 처음 보는 후배일텐데 놀라운 배려를 해 주신 거죠. 그 차를 한 달을 타고 다녔어요. 다른 분들도 놀라셨죠. 연기자로서도 안 그래도 존경하는 선배님이었는데, 그렇게 챙겨주시니 너무 황송했어요. (웃음)"


박명훈은 "봉 감독님이 저희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어준 것처럼, 송강호 선배님은 저한테 손 내밀어주셔서 두 분이 그런 부분이 닮아있는 것 같다"며 "항상 놀라운 지점의 연기를 하는 분이시기 때문에 (제게도) 항상 깨어있는 연기를 해야 한다고 말씀 많이 해 주시고, 일상의 소소한 얘기도 했다"고 전했다.

박사장 역의 이선균, 충숙 역의 장혜진과는 동갑내기여서 더 의지가 됐다. 특히 '나의 아저씨'를 시청한 이후여서 이선균과 맛집 투어를 다닌 게 더 꿈 같았다고. 박명훈은 "이선균 배우와는 친구 맺고 나서 서로 맛집 투어 다니면서 이 얘기 저 얘기하고 가끔 맥주도 한잔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연기도 너무 훌륭하시지 않나. 그때 정말 꿈 같은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충숙 역의 장혜진에 관해서는 "충숙 그 친구도 저처럼 독립영화를 하다가 발굴된 친구라서 서로 의지가 많이 되고 도움을 줬다. (다른 분들은) 다들 누구나 봐도 알만한 위대한 배우들인데 서로 무명 배우에 가까워서…"라며 "혜진 씨와 선균 씨는 원래 친구여서 저희끼리(셋이) 밥도 많이 먹었다"고 밝혔다.

이어, "조여정 배우는 요번에 기가 막히게 너무 연기를 잘하셨다. 보석 같은 배우고, 자기 관리도 뛰어나고 연기에 대한 열정을 너무 강렬하게 느끼게 돼서 후배이지만 정말 많은 공부를 했다. 저도 보면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극찬했다.

박명훈은 "우리 최우식-박소담 이 두 남매는 정말 막냇동생 같았다. 전주에서 최우식 군, 박소담 친구와 자주 같이 다녔는데 얘기도 많이 나눴다. (현장에서) 그 두 친구를 싫어하는 분이 아무도 없고 다 좋은 마음으로 막내처럼 예뻐해주고 그랬다. 활력소였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보면 이 영화에 되게 소수의 인물들이 나오지 않나. 8명 정도 나온다. 지소, 현준이도 있지만, 성인 연기자들로 치면 그 정도인데, 가족처럼 똘똘 뭉쳤다. 촬영할 때 집엘 안가고 거의 합숙했다"고 말했다.

◇ '기생충'을 본 영화광 아버지의 반응은

배우 박명훈 (사진=엘아이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앞서 언급했듯, 박명훈은 봉 감독의 배려로 현재 암 투병 중인 아버지와 '기생충'을 다른 배우들보다 조금 빨리 볼 수 있었다. 아버지의 감상은 어땠냐고 묻자, 박명훈은 "아버지가 저보다 영화 더 많이 보시는 분이다. 평생에 몇천 편 보셨을 것이다. '이런 한국 영화는 본 적이 없다, 역시 이래서 봉준호 감독님이 세계적인 분이구나'라고 하셨다. 어떻게 보면 저보다 영화적인 지식이 더 많고 정확하셔서, 그 말씀을 들었을 때 더 뿌듯하고 좋았다"고 답했다.

아들의 연기는 어떻게 보았을까. 박명훈은 "냉철하게 보고 판단하시는 편인데, 어쨌든 제가 운이 너무 좋게 임팩트라고 해야 하나, 그런 부분이 세게 나와서 거기에 흡족해하시는 것 같다. '너무 훌륭하게 잘해냈다', 아버지에게 받는 칭찬이어서 더 기분이 좋았다"고 고백했다.

연기를 시작하는 데 '영화를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냐고 물으니, "그것도 당연히 있었을 것"이란 답이 돌아왔다. 박명훈은 교회를 다니면서 연기의 맛을 알았다. '문학의 밤' 행사에 참여하며 콩트와 연극을 했다.

대학도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었지만 낙방해서 일반 대학의 행정학과에 다니다가 군대에서 다시 한번 방향을 잡았다. 복학할 것인가, 연기할 것인가 갈림길에서 그는 후자를 택했다. 제대 후 20대 중반이 된 나이, 연기 전공 시험에 합격할지 불투명한 점 등 걸림돌이 있어서 그는 바로 '현장'에 가는 걸 택했다.

박명훈은 "20대 중반이 됐는데 2년 내지는 4년 학교 다니는 게 시간이 너무… 연기에 학벌이 뭐가 중요하냐, 그런 생각은 지금도 갖고 있다. 그럼 대학로로 가 보자고 해서 제대하고 바로 대학로에서 포스터 붙이는 일부터 시작해 연기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 곧 좋은 일이 있지 않을까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영화 '재꽃', '산다', 드라마 '또 오해영'에 출연한 배우 박명훈 (사진=각 제작사, 박명훈 인스타그램)
박명훈은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명성황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카르멘', '블루 사이공', '금강', '라디오스타', '쓰루더도어', '락시티', '스칼렛', '달콤한 안녕', '한여름 밤의 꿈', '달을 품은 슈퍼맨' 등 다수 작품에 출연했다.

2015년부터는 '산다'라는 작품으로 영화 쪽으로도 활동 영역을 넓혔다. 박명훈은 결혼할 때 '산다' 찍었는데 그때가 기점이었던 것 같다"며 "배우가 다양하게 매체를 접하면서 할 수 있는데 꼭 한 곳에만 매여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우연히 감독님이 공연 보시고 캐스팅해주셔서 독립영화 처음 시작하게 됐다. '스틸 플라워', '재꽃', 단편영화까지 합치면 한 10편 정도 한 것 같다. '기생충'이라는 좋은 기회도 독립영화를 통해 얻게 됐다"고 부연했다.

배우 생활에 큰 힘이 되어 주었던 아내에 대한 애정도 숨기지 않았다. 아내는 소극장 뮤지컬 할 때 분장사로 만나, 결혼한 지 올해로 5년이 됐다. 박명훈은 "대한민국 모든 남자 배우분들의 와이프는 다들 위대하신 분들인 것 같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박명훈은 "저희는 작품을 해야 수입이 있다. (매달) 월급이 나오는 그런 직업이 아니고, 불규칙한 것을 봤을 때 거기에 대해 지지해 준다는 것은 솔직히 정말 굉장한 일인 것 같다"며 "기약 없는 걸 이해해 준다고 했을 때 너무너무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 이를 데 없다"고 전했다.

'기생충'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많은 관객에게 알린 박명훈. 그는 "아직까지는 되게 조심스런 상태고 이것을 계기로 수많은 작품을 하게 된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며 "지금은 제가 선택을 받는 위치이기 때문에, 선택받는 거에 한해서 좀 열어두고 많이 하고 싶다는 청사진이 있다"고 말했다.

차기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곧 좋은 일이 있지 않을까 계속 꿈꿔봐요. '기생충'의 근세처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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