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 운동의 '영원한 동지'로, 동교동계에서는 정신적 지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 여사의 인맥은 동교동계 출신의 정치인 외에도 상당히 폭넓다.
故 피천득 시인 겸 교수부터 배우 손숙, 김남조 시인 겸 교수, 가수 조영남까지 다양한 인연을 맺었다.
1997년 발행된 책 '내가 만난 이희호'(명림당)에는 젊은 날의 이 여사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 피천득 "나를 늙은 옛 스승으로 여겨줘"
피천득 시인은 1946년 서울대에서 이 여사와 사제지간(師弟之間)으로 처음 만났다.
당시 피 시인은 서울대 영어과 교수로 재직할 때다.
피 교수는 "그때 그의 학업 성적은 탁월했고, 언니스러운 인품과 활발한 성격은 사범대학 전교 여학생들의 지도자적 역할을 하게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 여사가) 영어과 2학년을 수료한 후 교육과로 전과하기를 원했다. 나는 간곡히 말렸다. 그는 가고야 말았다"면서도 "그러나 그는 나를 그의 가장 늙은 옛 스승으로 여겨준다"고 했다.
총명한 제자를 곁에 두지 못했던 아쉬움과 함께 이 여사에 대한 고마움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 손숙 "어쩐지 차가운 첫인상"
배우 손숙 씨는 이 여사의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손 씨는 "사진에서나 혹은 어떤 모임에서 몇 번 먼발치로 본 그분의 인상은 어쩐지 차갑고, 가까이 하기엔 어려워보이는 그런 느낌이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이 여사를 몇 번 만나게 되면서 "나의 기우는 터무니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손 씨는 "'셜리발렌타인'이란 모노드라마 장기 공연에 지쳐 있던 나에게 진심으로 염려하고 걱정해 주시던 이 여사의 따뜻한 사랑을 지금도 잊지 않고 기억한다"며 "일도 좋지만 건강도 생각하면서 해야지. 병이라도 나면 어쩔려고 그래요. 얼굴이 말이 아니네"라고 걱정하던 이 여사의 위로를 가슴에 사무치게 느꼈다.
손 씨는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의 대화를 통해 이 여사가 의외로 마음 약한 인간적인 측면이 있다는 점도 알렸다.
김대중: 이 사람은 마음이 너무 약해서 큰일이에요. TV에서도 싸우는 장면이 나오면 어른 TV를 꺼버려요.
이희호: 아이구 난 정말 싸우는 건 싫어요. 동물의 왕국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동물들이 싸우는 것도 볼 수가 없어요(웃음)
군사정권에 탄압받는 야당 지도자의 아내로서 겪는 어려움도 이 여사는 웃으며 얘기했다고 한다.
동교동 자택에는 온갖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법석을 떠는데, 김 전 대통령은 그런 사람들을 불쑥 침실로 데려오기도 한다고 했다. 그럴 때면 이 여사는 잠옷 바람으로 화장실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손 씨는 "아이고 나 혼자 좀 조용히 있을 수 있는 방 하나만 있으면 좋겠어요"라며 웃으며 너스레를 떨던 여사의 모습을 기억한다.
◇ 맏며느리가 본 이희호, 친구가 말하는 이희호
맏며느리 윤혜라 씨는 이 여사와 함께 김 전 대통령과 남편 故 김홍일 전 국회의원의 옥바라지를 했다.
윤 씨는 1980년 5월 17일 김 전 대통령과 김 전 의원이 연행된 이후 매일 같은 시간에 군교도소와 서울 구치소 면회실을 찾았다고 한다.
면회 시간은 따로따로 잡혀 있어서 나올 때는 같이 나오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여사는 윤 씨에게 "오늘 네 생일이지"라며 윤 씨의 손에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꼭 쥐여줬다.
윤 씨는 "남편 일 때문에 기억조차 할 수 없었던 생일을 알았다는 것보다는 집안 일도 잘 챙기지 못했던 철부지 며느리의 생일을 기억해주신 어머님의 따뜻한 마음에 눈물이 그칠 줄 몰랐다"고 회상했다.
윤 씨는 "남들이 보기에는 불행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어머님이 계셨기에 나는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됐다"고 했다.
50년 넘게 친구로 지내온 김남조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바지런한 이 여사의 모습을 기억했다.
김 교수는 "이 여사가 미행을 괴로워하면서도 나의 우거(寓居)를 방문해 주곤 했는데, 와서부터 갈 때까지 손에서 일거리를 놓지 않는 일이 당시 내 앞에서 보여준 모습"이라며 "머리에 파마를 하는 일도 싸게 재료를 구입해 자기 손으로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몸놀림도 근로에 익숙한 사람처럼 민첩했고 그 식견에 있어선 시국현실에서 세계정세를 소상히 알고 있고 더 나아가 세계사의 흐름도 지혜롭게 헤아리는 듯 보였다"고 회상했다.
가수 조영남 씨는 故 이태영 변호사와의 인연을 통해 이 여사를 알게 됐다.
조 씨는 스스로 이 여사와의 관계를 "먼발치에서만 뵈어 왔다"면서 언제나 고요하고 침착하는 이 여사의 모습을 전했다.
조 씨는 "살벌한 한국 정치판의 한 가운데에 쭉 계신 분인데, 단 한 번도 흥분이나 울분 혹은 분노나 격앙 심지어는 얼굴 한 번 찌푸리는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었다"며 "그게 도무지 신기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