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남성의 '렌즈'로 대상화되고 소비되는 여성의 '몸'
② '페미니즘 디자인'보다 중요한 여성 디자이너의 '생존'
<계속>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가 주최한 2019 연속특강 '여성 창작자×페미니즘×이미지'의 두 번째 강의 '페미니즘 디자인이라는 건 없습니다만…'이 지난 11일 서울 을지로1가 서울특별시NPO지원센터 1층 품다에서 열렸다. 강연자로 나선 그래픽 디자이너 오늘의풍경은 지금도 계속 고민하는 부분인 '한국에서 시민 여성 디자이너로 페미니즘 하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늘의풍경은 "내 앞에 '페미니즘 콘텐츠'가 온다고 해서 내가 디자인에 접근하는 방식은 바뀌지 않는다. 보여주고자 하는 키워드를 어떻게 명징하게 보여줄지 고민하는 편"이라며 자신의 작업물 중 하나인 '히든워커스' 포스터를 예로 들었다.
'히든워커스'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된 여성의 노동을 이야기하는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 전시로, 가사 노동을 상징하는 고무장갑, 장바구니, 아기 젖병, 세제통 등을 모노톤으로 촬영해 포스터에 사용했다.
오늘의풍경은 "가끔 여성단체에서 나에게 의뢰가 들어온다. 그때 내게 주어진 과제는 분홍색과 빨간색을 쓰지 말라는 것"이라며 "만약 '히든워커스' 때 분홍색을 쓰지 못했다면 고무장갑 등 좋은 상징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 부분들은 같이 생각해보면 좋겠다. 여성을 말할 때 분홍색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이지만, 그걸 과연 못하게 하는 것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생각해 볼 지점"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시민 여성 디자이너로 페미니즘 하기'를 위해서는 결국 현실적인 부분에 대한 해결이 중요하다. 디자이너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온전히 일할 수 있는 상황을 줘야 여성 디자이너로서도 페미니즘을 구현할 기회가 주어진다. 현재 사회 곳곳에 여전히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여성 디자이너가 바로 설 기회가 마련되어야 할 이유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 나가보고자 여성 디자이너들과 모여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Feminist Designer Social Club, 이하 FDSC)'을 구성했다. FDSC는 여성 디자이너들이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고민 등을 나눌 수 있는 모임이다.
오늘의풍경은 지난 2015년 디자인계에서 많이 이야기됐던 '그 많던 여성 디자이너는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라는 문장을 소개하며 여성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야근과 격무 등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문화 △무급, 인턴제 등 열악한 노동 환경 △사회적으로 교육받은 여성성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에 노출되는 업무 환경 등을 여성 디자이너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로 꼽았다.
FDSC에서 '2019 그래픽 디자인계 임원 성비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집계된 114개 회사 중 여성이 대표로 있는 회사는 14곳인데 반해 남성이 대표인 곳은 97곳에 달했다. 비정규직 및 인턴의 비율은 여자가 90%에 육박했지만, 임원급 디자이너의 성비를 조사한 결과 남성 74%, 여성 26%로 나타났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여성의 비율은 줄어들었다.
오늘의풍경은 "서체나 소스를 써야 할 때 항상 여성 디자이너, 여성 사진가, 여성 일러스트레이터가 한 걸 쓰려고 노력한다. 여성 창작자가 많아야 페미니즘 디자인도 나온다"라며 "여성 창작자가 많아지려면 현실적으로 그 사람에게 돈이 가야 한다. 나도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며 다니는데, 지금까지 먹고사는 이유도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내게 일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여성 창작자에게 계속 기회를 줘야 한다. 그게 어떤 이미지를 만드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