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금융혁신'을 내세우기는 했지만 별다른 성과도 없고 오히려 각종 규제 때문에 신사업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금융회사들이 아우성인 상황이라 그 이유를 물었다.
돌아온 대답을 정리해보면 이 인사가 말한 '관심'은 금융산업 발전에 대한 관심이 아닌, 어떻게 하면 금융권을 정부 정책의 실패를 보완하데 써먹을까 하는 '관심'이었다.
실제로 소득주도성장의 일환으로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하자 자영업자들의 반발이 극에 달했고 이들을 달래기 위해 정부는 카드 수수료 인하를 단행했다.
카드 수수료율은 예나 지금이나 논란의 대상이 된만큼 이를 인하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문제를 만들어 놓고 민간 기업에게 이를 수습하라고 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술 더 떠 금융권의 맏형 격인 은행에 "일자리를 늘려라"는 특명을 내렸다. 금융위원회가 오는 8월에 발표하기로 한 민간 은행의 '일자리 창출효과 측정' 얘기다.
금융위는 14개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이 직접 고용하거나 아웃소싱을 통해 창출하는 직접적인 일자리 창출 기여도와 함께 은행 영업을 통한 '간접적' 기여도까지 측정하겠다는 방침이다.
◇ 은행 '원죄' 생각하면 "어려울때 기여해야"
은행들은 벌써 아우성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말이 좋아 일자리 창출효과 측정이지 은행에게 일자리를 더 늘리라는 지시를 내린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규제산업인 금융에 대한 당국의 막강한 정책.감독 권한을 고려했을때 은행에서 나올 법한 하소연이다.
이에 금융위 측은 산업 전반에 일자리 창출효과를 측정하는 것은 금융당국의 당연한 역할이고 개별 은행이 아닌 산업 전반을 보는 것으로 압력행사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런 금융당국의 주장도 일면 타당한 측면이 있다. 불경기로 어려운 상황에서 은행들이 경제주체들로부터 꼬박꼬박 이자를 챙기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으니 일자리를 나누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일반.특수은행을 포함한 19개 국내은행의 올 1분기 당기순이익은 3.8조원을 기록했다. 특히, 국내은행의 1분기 이자이익은 10.1조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다 IMF 외환위기 이전 산업자본과 결탁해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가 이후 국민 혈세를 쏟아부어 되살린 국내 은행들의 '원죄'를 상기해 보면 경제가 어려울때 은행이 무언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까지 부여된다.
그러나 이같은 다양한 배경과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민간기업인 은행을 향한 정부의 반강제(?)에 의해 이뤄지는 일자리 창출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내 은행의 고용인원은 최근 늘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14개 국내 은행의 임직원 수는 지난 2014년부터 감소세를 이어오다 지난해에는 10만여명을 기록하며 전년보다 7천여명 가량 늘어났다.
비대면채널 활성화로 인력수요가 급격히 줄어들며 대규모 희망퇴직을 시행하고 있는 은행의 인력이 오히려 늘어난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이유를 금융당국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5월 "은행에 희망퇴직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퇴직금도 올리도록 권할 것"이라며 "금융공기업도 퇴직금 많이 줘서 희망퇴직 유도해 신규 인력 창출을 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희망퇴직 대상이 대부분 한창 일할 나이인 40~50대인데 돈 더 줘서 내보내라는 말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나오느냐"라면서 "아무리 청년층 고용이 중요하지만 희망퇴직으로 일자리를 잃은 가장은 어떻게 하라는 얘기냐"고 하소연했다.
또, 희망퇴직의 반대급부로 얼마나 많은 청년층을 고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경기상황과 업황 등을 고려했을때 신규 채용 인력을 무작정 늘리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은행들이 양질의 일자리 보다는 비정규직이나 파트타임 등 질낮은 일자리를 확대하는 식으로 숫자만 채우는 방향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다 '간접적' 기여도의 경우 한마디로 고용창출 효과가 큰 음식점.숙박업.인력소개소 등 노동집약적 업종에 대출이나 지원을 집중하라는 것으로 4차산업 시대에 역행하는 조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에대해 시민단체 금융소비자원은 성명을 내고 "금융당국이 국내 은행들을 자신들의 하청 기업쯤으로 여기며, 아직도 이런 인식으로 국가의 핵심산업의 하나인 금융산업을 다루고 있다"면서 "촛불정부에서 은행산업이 과거보다 더 후진적인 관치금융의 부속품으로 강화되고, 활용되고 있다는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 정부 간섭도 문제지만 은행 향한 싸늘한 시선도
임근 수준이 높은 양질의 일자리가 많은 금융권에 대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대명제는 잘못된 정책이라 할 수 없다. 다만, 그 방식이 금융산업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게 문제다.
당국이 나서 일자리를 짜내기 보다는 금융권이 혁신을 통해 스스로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대표적인 예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인터넷전문은행 인가다. 금융당국은 '금융혁신' 정책의 대표주자로 인터넷은행 활성화를 내세웠지만 각종 규제로 인해 기존 사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물론 제3의 사업자도 선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와 여당이 내부 반발을 무릅쓰고 은산분리를 완화하는 조치까지 취하는 등 노력을 하기는 했지만 대주주적격성이라는 또 다른 규제가 인터넷은행 활성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게 금융권의 주장이다.
그밖에도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 핀테크 산업 활성화, 신사업 진출을 위한 M&A 등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사업들이 각종 규제로 제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대해 한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가 "금융산업은 첨단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규제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라고 푸념했다.
다만,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 역시 당국의 간섭을 마냥 비판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시중은행들은 올 1분기에만 10조원이 넘는 이자이익을 올렸지만 비이자이익은 총이익의 15%에도 못미치는 1.7조원에 불과했다.
'규제완화'와 '혁신'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손쉬운 '이자놀이'에 안주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다 부당 금리산정, 유령배당, 무차입공매도 등 금융권의 도적적 해이는 말하기 입이 아플 지경이다.
일자리 창출 측정을 두고 금융당국에 대해 시대착오적, 또는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작 은행과 금융권을 바로보는 여론은 더욱 싸늘한 이유를 은행 스스로 돌아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