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만들어 준 그들만의 왕국' 부산항운노조 비리, 왜?

직업안정법에 따라 항만 독점 근로자공급권
항운노조 가입이 곧 취업…노조이면서 '사용자의 지위'
보여주기식 제도 아닌 외부 기관 적극적 개입과 감시 필요

부산항운노조는 1947년 결성된 대한노동조합 총연맹 부산부두 노동조합을 모태로 하고 있다. (사진=부산항운노조 홈페이지 자료)
4개월여에 걸쳐 부산항 비리를 파헤친 검찰 수사로 부산항운노조의 검은 민낯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1987년 이후 노조를 이끌었던 7명의 위원장이 모두 취업비리 등의 혐의로 구속되는 오명까지 쓰게됐는데, 부산항운노조의 특수한 조직 성격이 이 같은 비리 고리를 끊지 못하는 주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부산항운노조는 1947년 4월 결성된 대한노동조합 총연맹 부산부두 노동조합을 모태로 1981년 3월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 산하 노동조합으로 출범했다.

올해 2월 기준 정조합원 7695명, 임시조합원 2천521명으로 전국 항운노조 중 가장 큰 규모다.

항운노조는 직업안정법에 따라 부산항 일대 항만과 철도, 육상, 농수산물 하역 업무에 대한 근로자 공급사업 허가를 받은 유일한 노조로 독점적인 근로자공급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라 일반적인 노동조합과 달리 조합원을 채용, 지휘, 감독하는 '사용자의 지위'를 갖고 있다.

특히, 취업을 하고 노조에 가입하는 방식이 아닌 사용자가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만 채용할 수 있어(Pre-entry closed shop), '노조 가입이 곧 취업'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항운노조는 계약을 체결한 화주 또는 하역업체에 노무를 제공한 뒤 그 수수료를 받아서 조합원들에게 배분한다.

만일, 하역업체(터미널 운영사)에서 노조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할 경우 노무공급을 중단 등의 대응을 할 수 있어 부산항에서는 '절대 갑'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 책임의 부담 없이 채용과 지휘의 권한을 갖고 있는 위원장을 위시한 노조 집행부의 힘은 여타 노조와는 다른 차원에서 발휘된다.

무엇보다 주요 항만지부의 경우 일반 직장인 임금보다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어, 한때는 뒷돈을 준비하고 항운노조에 취업하려는 대기자가 줄을 섰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수십 년동안 이어져 오던 항운노조의 검은 뒷거래는 지난 2005년 검찰 수사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검찰은 취업 비리 혐의로 전직 위원장 3명을 비롯해 모두 40여명을 재판에 넘겼다.

이후 부산항운노조는 항만인력수급위원회 도입과 인사추천심의위원회 등의 제도적 장치를 만들었으나 취업 비리는 끊이지 않았다.

부산항운노조는 1947년 결성된 대한노동조합 총연맹 부산부두 노동조합을 모태로 하고 있다. (사진=부산항운노조 홈페이지 자료)
심지어, 지난 2010년 취업비리로 구속된 전 위원장 A씨는 교도소 수감 중에도 돈을 받고 동료 수형자 아들을 조합에 부정 채용하기도 했다.

A씨는 2012년 교도소 출소 이후에도 조합 내 취업과 승진 비리에 연루돼 이번에 다시 재판에 넘겨졌다.

범행 수법이 교묘해진 것은 물론 검은 돈의 규모도 커졌는데, 주요 항만지부의 경우 취업은 3천만원~5천만원, 조장 승진은 5천만원, 반장 승진은 7천만원~8천만원까지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항운노조 개혁을 주창하며 지난달까지 항운노조를 이끌었던 전 위원장 B씨는 조합 간부 친인척 등 105명을 가공조합원으로 만든 뒤 전환배치라는 꼼수를 통해 조합의 뒷문을 열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항만업계에서는 항운노조 자체적인 개혁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항만업계 관계자는 "부산항운노조가 중심이 된 개혁작업은 매번 실패로 끝이 났다"며 "항운노조 비리는 항만산업 경쟁력과도 연계가 되는 만큼 공적 기관의 적극적인 개입과 감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항만 노무 공급 독점권'이라는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반복되고 있는 부산항운노조의 불법 행위를 끊기 위해서는 반세기 넘게 외부인의 개입을 차단한 항운노조의 높은 담벼락부터 허물어야 한다는 말이 부산항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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