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검사장이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설치하는 내용 등이 담긴 수사구조 개혁안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주목받고 있다.
윤웅걸 전주지검장은 10일 검찰 내부 전산망인 '이프로스'에 A4 용지 19장 분량의 글을 올려 "현재 제시된 검찰개혁안과 같이 권력의 영향력은 그대로 둔 채 검찰권만 약화할 경우 개혁은커녕 힘 빠진 검찰의 정치 예속화는 더욱더 가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검사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권을 보다 제한하고 검찰을 통치수단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며 "검찰이 권력의 상대방에게는 칼이 되고 권력 자체에는 방패가 되는 불합리에서 벗어나 누구에게나 공정한 검찰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지검장은 그러면서 "권력자에게는 좀 더 불편한 방향으로 검찰이 개혁되는 것이 제대로 된 검찰개혁"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선 현재 진행 중인 논의 가운데 '수사와 기소의 분리' 주장과 관련해, 재판권과 기소권을 나눈 서구 선진국들이 기소권과 수사권은 분리하지 않은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지검장은 "검찰을 개혁하겠다고 하면서 제시된 구호가 '수사와 기소의 분리'"라며 "마치 권력을 분산시켜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듯 포장돼 있지만, 이는 검사의 수사권과 수사지휘권을 제한하거나 박탈함으로써 결국 수사에 대한 법률가의 통제를 없애고 경찰 주도의 수사구조를 만들자는 주장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서구 선진국들이 오랜 논쟁을 거쳐 검사에게 수사권과 수사지휘권을 준 것은 그 나라 경찰이 우리나라 경찰보다 실력이나 자질이 떨어져서가 아니다"라며 "수사권을 사법 기능으로 분류함으로써 수사에 대한 정치권력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고, 국민생활에 밀접해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경찰에 대해 법률가인 검사로 하여금 통제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지검장은 공수처 도입과 관련해서도 공수처의 원형으로 볼 수 있는 싱가포르 탐오조사국(CPIB)이나 홍콩 염정공서(ICAC), 인도네시아의 부패근절위원회(KPK), 대만의 염정서(AAC) 등 해외 기관들을 사례로 들며 대부분 검찰제도가 미약했던 영연방 도시국가이거나 우리나라가 굳이 모델로 삼을 만한 나라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싱가포르 탐오조사국은 기소 사건의 90%가 민간부문으로 공직부패 전담 수사기관이라는 것이 무색하고, 자체 비리와 정부 비판인사 탄압 등 정치적 중립성 문제가 발생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홍콩 염정공서의 경우 불법감청·감시·미행 등 사찰 수준의 수사방식으로 비판받고 있고, 이마저도 민간 부문을 대상으로 삼는 탓에 부패 혐의로 기소되는 공무원이 연간 3~4명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중국 국가감찰위원회 역시 "우리나라에서 제안된 공수처보다 정치적 독립성이 있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부패척결을 명목으로 한 효율적인 정적 제거 등 최고 통치권자인 주석의 권력 공고화와 장기집권에 기여하고 있다는 언론의 평가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윤 지검장은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공수처는 공직자 부패척결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고 오히려 다른 목적에 활용될 가능성이 많은 제도"라며 "공수처가 기존 검찰보다 권력에 대한 수사를 더 잘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더 잘 지킬 수 있다는 것은 막연한 희망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공수처에 의미가 있다면 검사의 범죄에 대해 검찰이 수사하는 경우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비판을 불식시키는 정도에 불과할 뿐이라고 밝혔다.
다만 검찰의 직접 수사를 줄이고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을 폐지하는 방안에는 동의했다.
윤 지검장은 "검찰에 접수된 사건도 가급적 경찰에 수사지휘를 함으로써 검사가 1차 수사로 인해 가질 수 있는 오류를 줄이고 경찰 수사과정에 대한 사법통제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검찰개혁의 종착점은 검찰이 권력의 예속에서 벗어나 국민의 권익을 보장하는 기관으로 거듭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받는 검찰로 귀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지검장은 이런 측면에서 "정부에서 제시한 검찰개혁안과 이를 토대로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며 "결국 인권보장을 위한 검찰의 순기능은 사라지고 정치 예속화라는 검찰의 역기능은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