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협상 상황에 밝은 한 소식통은 9일 CBS노컷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북미 간 물밑접촉이 지금도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북한이 곧 내부 정비를 마치는 대로 공식 대화에 응할 가능성을 예상했다.
이상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도 "해리스 대사가 (북한 비핵화 조치에 대한) 미국의 다음 수순이 준비된 것처럼 얘기하고 청와대에서도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조심스러운 낙관론을 얘기하는 것을 보면 뒤로 뭔가 오가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북한의 내부 정비가 마무리 단계에 와있다"면서 "인도적 지원이 관계 개선에 우호적 환경을 만들 것으로 본다"며 남북대화 재개 가능성도 거론했다.
◇ 김연철 "낙관도 비관도 어려워"…남북정상회담 여지 남겨
실제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 7일 한미정상회담 전 남북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낙관적 결과를 전망한다고 밝혀 파장을 불렀다.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도 마침 같은 날 열린 한 강연에서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그는 "미국은 여전히 비핵화와 병행해서 미북관계를 변화시키고, 한반도에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진행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물론 청와대는 이후 관계자의 발언은 진의가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해명했고,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9일 KBS에 출연해 "(그 관계자가) 뭐가 있어서 그렇게 얘기한 건 아니고 매우 원론적 차원에서 얘기했다"고 수습했다.
하지만 김 장관은 6월중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낙관도 비관도 하기 어려운 국면"이라고 밝혀 여지를 남겼다.
그는 특히, 북미 양측 모두에서 "몇 가지 아주 작은 변화들이 있다는 부분도 주목해야 할 것"이라며 긍정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북한은 지난 달 4일과 9일 미사일 발사 이후에는 우리 군의 을지태극연습(5월 27~30일)에도 추가 무력시위를 하지 않았고, 대남·대미 비난 수위에서도 미세하나마 변화가 감지된다.
예컨대 미국의 화물선 압류 사건에 대해 지난 달 14일에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로 "불법무도한 강탈행위"라고 비난했지만, 29일에는 '힘의 사용' 가능성을 경고하면서도 외무성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 담화로 급을 낮췄다.
남측의 대북 인도적 지원 방침에 대해서는 지난 달 27일에는 통일신보 게재 글을 통해 "시시껄렁"이란 원색적 표현을 동원해 비판했지만, 9일에는 우리민족끼리 개인 논평을 통해 "부차적인 겉치레" 쯤으로 논조를 완화했다.
사실 북한은 미국의 화물선 압류 건에 대해서는 국가기구 명의로 강력 대처한 반면, 남측의 인도적 지원 문제에 대해서는 노동신문 등 공식매체 대신 대남 선전매체를 동원하는 식으로 수위를 조정해왔다.
북한의 가장 최근 대미 메시지는 지난 4일 발표한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1주년에 즈음한 외무성 담화다.
북한은 "우리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며 미국의 계산법 전환을 촉구하면서도 6.12 성명을 이행하려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함으로써 대화 동력이 살아있음을 보여줬다.
이런 가운데 미국 내에서도 '하노이 노딜' 이후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주도의 '선(先) 비핵화론'이 주춤하고 단계적 해법이 다시 힘을 얻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한미의회외교포럼 의원단 소속 이수혁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미국 방문 결과를 설명하며 "단계적 해법에 대해 부정적 기류로 바뀐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미국) 의원들에게 단계적 해결 방법이 현실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연철 장관도 최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미국 내 분위기에 대해 "큰 원칙에서 보면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돼있고, 선비핵화가 아니고 동시병행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인식의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 北·美 기류변화 감지 불구, 큰 변화 이끌 韓 역량 부족
결과적으로 이런 흐름이 확대된다면 6월 남북정상회담 개최도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남북정상회담을 북미정상회담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의 '원 포인트' 성격에 한정한다면 지난해 5.26 판문점 회담의 전례를 준용해 신속한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물리적 시간은 여유가 있는 편이다.
특히 이번 달엔 첫 북미정상회담 1주년(6월12일)과 첫 남북정상회담 19주년(6월15일) 등을 계기로 활용할 수도 있다.
정성장 본부장은 강경파인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영향력이 축소된 것 등을 거론하며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이를 적극적으로 살려서 큰 변화를 이끌어낼 우리의 역량이 부재하고, 그런 문제의식조차 없는 외교안보팀의 인식이 안이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와 관련,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현재 남북미 3자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돌파구 마련을 시도하는 것은 전에 없던 특징"이라면서도 6월 남북정상회담 개최는 현실성이 낮다고 전망했다.
임 교수는 "북한은 트럼프의 재선 일정과 남한 총선 등 정치일정을 많이 고려하며, 합의 자체보다는 합의가 이행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을 더 중요하게 본다"면서 "그런 측면에서 6월은 좀 애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