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탄희 前판사 "지금 아는 걸 판사할때도 알았더라면..."

사법농단 맞선 이탄희 전 판사
'폐쇄성'이 핵심..아직도 변화없어
종이로 읽던 세상, 이젠 현장으로
정의는 진실에서 출발.."후회없어요"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이탄희 변호사 (전 판사)

이탄희 판사. 사법 농단 사건을 뉴스에서 수개월 동안 접하면서 여러분, 참 익숙해진 이름이죠. 이탄희. 이 이탄희 판사 얘기는 2017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른바 판사들의 꽃보직이라고 불리는 법원행정처로 출근한 첫날 뜻밖의 말을 듣습니다. 컴퓨터에 판사들 뒷조사 파일이 나올 텐데 놀라지 말아라. 이 업무가 주어졌다는 걸 알게 된 이탄희 판사는 결국 사표를 쓰게 됩니다. 이게 바로 사법 농단 사태가 세상에 드러나는 시작이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 그 사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요. 이탄희 판사는 자리를 옮겨서 더 근무를 하다가 올초에 두 번째 사표, 진짜 사표를 내게 된 건데요. 오늘이 벌써 6월 6일이니까 한 5달 됐네요. 이 특별한 초대 손님 오늘 스튜디오에서 인사 나눠보죠. 이탄희 전 판사님, 어서 오십시오.

◆ 이탄희> 반갑습니다.

◇ 김현정> 지금은 변호사신 거죠?

◆ 이탄희> 그렇죠, 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입니다.

이탄희 전 판사

◇ 김현정> 지금 공익인권법재단이라고 하신 이유가 기부하고 후원금으로만 운영되는 곳이라고 제가 들었어요. 가보신 분 얘기를 들어보니까 사무실에 에어컨이 없다면서요? 진짜예요?

◆ 이탄희> 에어컨이 완전히 없는 건 아니고요. 저희가 한 저희가 14년 정도 된 에어컨이 있는데 여러 가지 전기 요금 등의 문제로 자주 안 틀어서요.

◇ 김현정> 안 틀어서. 변호사 사무실에 에어컨 잘 못 트는 건 이건 참 희귀한 일인데, 요즘에.

◆ 이탄희> 다른 분들이 다 고생하고 계십니다.

◇ 김현정> 몇 분이나 계세요, 공감에는?

◆ 이탄희> 11분 계세요.

◇ 김현정> 11분 계세요. 사실은 한 해에 판사복 벗고 나오는 판사가 그렇게 많지 않을 거고. 그렇죠? 그래서 오라는 법무법인이, 로펌이 굉장히 많았을 텐데.

◆ 이탄희> 굉장히 많다기보다 몇 군데 있기는 했죠.

◇ 김현정> 그런데 왜 안 가셨어요?

◆ 이탄희> 사실 제가 여러 번 이야기를 했는데 제가 처음부터 딱 공감에 가야 되겠다. 이런 결심을 가지고 법원에서 나왔던 건 전혀 아니고요. 워낙 2년 동안에 제가 예상치 못했던 일들을 겪고 법관직을 내려놓고 나오고 나서 뭘 해야 되나 생각을 하면서 여기저기 가봤는데요. 아무래도 제가 판사를 하면서 내가 공적인 일을 한다라는 자부심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런 게 마음 깊숙이 자리를 이미 잡다 보니까 변호사가 돼서도 기왕이면 뭔가 세속된 일만 쫓지 말고 공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 좋지 않을까. 이런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 김현정> 가보기는 가보셨어요, 오라는 로펌에?

◆ 이탄희> 로펌은 안 가봤고요. 가까운, 소위 말하는 전관 변호사 선배들 사무실에 한번 갔었죠. 그런데 차 한잔 마시러 갔던 건데 앉아서 차 마시면서 얘기를 하다 보니까 되게 기분이 우울하더라고요, 왠지.

◇ 김현정> 우울? 최고 대우를 해 주겠다는데 왜 우울?

◆ 이탄희> (웃음) 그런 건 아니고요. 저한테 좀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그렇게 느꼈던 거죠. 그래서 인연이 됐습니다, 공감하고.

◇ 김현정> 그래서 에어컨이 잘 안 나오는 사무실로. (웃음)

◆ 이탄희> (웃음) 그때는 잘 몰랐어요.

◇ 김현정> 사실은 부인 되시는 오지원 변호사가 저랑은 인터뷰를 하셨어요. 부인은 인터뷰를 저랑 하셨어요.

◆ 이탄희> 그랬죠.

◇ 김현정> 지금 이 공익 변호사의 길을 가는 것에 대해서 부인도 오케이를 하신 거겠죠, 당연히?

◆ 이탄희> 저희 아내는 하여튼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많이 지지해 주는 편이어서요. 제가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그 이야기 조금 이따 다시 나누기로 하고, 일단. 사법 농단의 시작이었던 2017년 그때를 사실 저도 뉴스에서 수도 없이 말씀을 드렸고 우리 청취자들도 보도로 많이 들으셨지만 이탄희 판사가 직접 나오시니까 그래도 제가 한번 또 직접 여쭙고 싶어지네요. 법원행정처에 발령받았다는 건 굉장히 좋은 일이잖아요. 소위 꽃보직, 승진이 보장된 길, 법원의 판사들 중에서도 다 가고 싶어 하는 길. 발령받았을 때 축하 전화도 많이 받으셨죠?

◆ 이탄희> 그 당시에는 그랬죠.

◇ 김현정> 몇 통이나 받으셨어요?

◆ 이탄희> 제가 뭐 특별히 세보지는 못했는데요. 하여튼 처음 전화 주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그래서 이게 이 정도로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을 제가 새삼스럽게 했죠, 그때.

◇ 김현정> 처음 전화하는 사람까지 축하한다는 전화가 올 정도.

◆ 이탄희> 네.

◇ 김현정> 이런 곳입니다. 이런 곳에 뽑혀 간 겁니다. 그런데 출근을 하고 보니 '컴퓨터에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을 건데 놀라지 마시오, 이 판사' 이런 얘기를 들으신 거예요. 법원행정처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 모르셨어요?

◆ 이탄희> 저뿐만 아니라 일선에 있는 모든 판사들이 다 몰랐죠. 그리고 저희가 2017년 3월 달에 1차 조사를 했는데 1차 조사 결과도 법원행정처에서는 이런 업무를 하지 않는다. 이게 본연의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업무를 하지 않고. 하지 않는다는 그 설명을 그냥 컴퓨터 보지 않고 조사위원회에서 믿고 정말 없는 것 같다. 이렇게 결론을 내릴 정도였으니까요.

◇ 김현정> 기억이 나요.

◆ 이탄희> 그러니까 정말 판사들이 전부 다 상상 못 할 일이었다라는 게 거기에서도 드러나는 거죠.

◇ 김현정>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그렇게 판사들도 모르게 그 안에서 그렇게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요?

◆ 이탄희> 사실 저도 그래서 그 당시에 배신감으로 좀 많이 힘들었던 감정을 느꼈던 그런 기억이 있고요. 지금 와서 뒤돌아보면 뒷조사뿐만 아니라 지금 재판에 여러 형태로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정황들도 많이 나왔잖아요. 그런 부분들이 전부 다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데 그런 게 가능했던 이유는 구조적으로 보면 아주 극단적으로 폐쇄적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 김현정> 극단적인 폐쇄성.

◆ 이탄희> 그런 좀 생각이 많이 들고요. 그래서 제도 개혁 측면에서도 그런 폐쇄성을 극복하는 데 포커스를 맞춰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그 자리에 이 판사가 처음 가신 게 아니잖아요. 전임자들이 계속 있었을 텐데도.

◆ 이탄희> 그렇죠.

◇ 김현정> 그분들은 그러면 이걸 발설도 하지 않고 저항도 하지 않고 받아들였다는 게 저는 조금 사실은 슬프고. 슬프고 우울한 일이고. 더 놀라운 건 신망받는. 그러니까 동료들로부터 신망이 높은 분들이 오히려 그 자리에 갔었다는 건 무슨 말이에요?

◆ 이탄희> 말씀하신 대로 저도 그 부분을 가슴 아프게 생각을 하고요. 동료들한테 신망을 받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그런 뒷조사를 하는 데 더 수월했다. 이런 이야기까지 나중에 제가 들었어요. 그래서 그 기분을 말로 다할 수가 없죠.

◇ 김현정> 동료들이 믿는 신망 높은, 평판 좋은 판사가 그 자리에 앉으면 뒷조사하기가 더 쉽다, 털어놓을 테니까.

◆ 이탄희> 그렇죠. 개인적으로 많이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지나간 일이기도 하고 저는 개개인에 대해서 사실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고요. 평범한 판사들도 다 그런 일에 별다른 저항을 못하고 할 정도의 상황이 됐다라는 것. 그런 구조적인 문제에 집중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 김현정>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다 순응하게 됐을까, 그 엘리트 판사들이 그 자리에 갔을 때.

◆ 이탄희> 저는 그런데 계속 말씀드리는 게 그 폐쇄성이라고 하는 게 굉장히 무서운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는 제 명예를 지킨다고 사표를 냈지만 사실 명예라고 하는 건 남들이 모르면 비밀이 지켜지면 침해되는 게 아니다라고 사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거든요. 극단적으로 폐쇄적인 상태로 오랫동안 흘러오다 보니까 내가 어떤 일을 해도 절대로 드러나지 않을 거다.

◇ 김현정> 나만 내 양심에 눈 감으면 돼.

◆ 이탄희> 그런 믿음이 다 퍼져버린 거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이걸 투명하게 만들어서 애초에 그런 믿음 자체가 자리 잡지 못하도록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 김현정> 그런데 거기는 사실은 조직이지만 조직에 순응하면 안 되는 조직인 거잖아요. 조직원들이 순응해버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판사는?

◆ 이탄희> 판사는 그렇죠. 네, 맞습니다. 판사의 덕목이라고 하는 거는 외부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려고 하더라도 그걸 단호하게 거부하고 자기가 독립적으로, 외롭더라도 독립적으로 판단을 해야 되는 일이기 때문에 조직원으로 전락하면 안 되는 정말 최후의 직업인 거죠.

대법원 (사진=윤창원 기자)

◇ 김현정> 이탄희 판사, 특전사 나오셨죠?

◆ 이탄희> 네, 맞습니다.

◇ 김현정> 2008년에 판사 선서를 할 때 이런 말을 들으셨다면서요. "이 친구 특전사 나왔으니 요원으로 잘 키워봐." 그때는 이게 농담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조직의 요원. 이런 인식이 숨어 있었던 건가 갸우뚱하셨다.

◆ 이탄희> 어떻게 그걸 알고 계시나요? 그게 저도 사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이 일이 불거지고 나서 다시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때 당시에 저희도 면접 비슷하게 봤는데 그 면접 위원장을 하셨던 분이 나중에 대법관이 되셨어요. 그런데 그분이 대법관이 되시기 전에 임명식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죠, 다른 심의관들을 옆에 두고. 그래서 그때는 제가 흘러 들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사실 요원의 덕목은 거듭 말씀드리지만 판사의 덕목과는 정반대거든요.

◇ 김현정> 조직에 충성.

◆ 이탄희> 네, 그렇죠. 그리고 요원이란 말 자체를 안 써요, 판사들이.

◇ 김현정> 쓰면 안 되죠.

◆ 이탄희> 안 쓰는 말인데 그 당시에 그 말이 있었지 하는 생각이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까 나더라고요.

◇ 김현정> 약간 등골이 서늘하시겠어요. 그 말을 이제 생각해 보면.

◆ 이탄희> 뭐 그런데 지난 일이어서 서늘하기보다는 그냥 웃음이 나오죠.

◇ 김현정> 웃어요. 블랙리스트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이걸 파다 파다 보니까 법원행정처와 대법원이 청와대와 교감까지 하면서 재판에 개입한 사실들이 드러났습니다. 이 정도까지 될 거라고는 그때 예상 못 하셨죠?

◆ 이탄희> 전혀 예상 못 했죠.

◇ 김현정> 전혀 예상 못 하셨죠. 지금 드러난 그 사법 농단의 실체들을 보면서 제일 화나고 아픈 부분, 개인적으로. 어떤 겁니까?

◆ 이탄희> 사실 전체적인 내용 다 우리가 판사로서 사실 입에 담기도 힘든 내용들이기 때문에 어느 부분을 딱 특정해서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고요. 제가 마음 아픈 부분은 오히려 그 일을 정말 많은 젊은 판사들이 노력을 해서 밝혀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에 이게 과거와 명확하게 단절하지 못한 채 어떻게 보면 질질 끌려가고 있는 그런 형국이잖아요. 그런 부분이 좀 있다라는 게 좀 사실 지금은 마음이 아파요.

사실 꼭 그렇게 흘러갈 일은 아니었는데. 우리가 이렇게 노력을 한 이유는 어떤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서 그 조직이 비난을 받음으로써 나도 같이 비난을 받는다. 그런 상황을 달가워할 판사가 누가 있겠어요. 이 일을 한 이유는 진실을 밝혀내고 과거와 단절을 해서 우리가 법관 생활을 명예롭게 다시 시작해보자라는 취지에서 한 거거든요. 그런데 그 부분에 있어서는 좀 아직까지 미흡한 부분이 많아서 그 부분이 좀 안타까워요.

◇ 김현정> 아무도 저항하지 못했던 걸 이탄희 판사가 저항했고 그 후에 이 정도까지 밝혀냈는데 왜 더 이상 안 되고 있다고 보세요? 그걸 가로막는 건 뭐예요?

◆ 이탄희>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일 큰 건 대법원의 리더십. 이건 특정인 한 사람의 문제는 아니고요. 전체적으로 지금 고위 법관들을 중심으로 해서 대법원에 형성돼 있는 리더십이 좀 아직은 약한 면이 있다. 이런 생각이 좀 많이 들고요.

◇ 김현정> 더 확확 좀 끌고 가줘야 되는데.

◆ 이탄희>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고. 정확한 건 가치를 명확하게 세워야 되는 거죠. 뭘 하기 위한 거냐, 과연. 이 모든 과정이.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만들 새로운 법원이 뭐냐라고 하는 걸 언어로써 표현을 해 줘야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런 부분들이 많이 미흡하고 여전히 좀 사법 행정이 폐쇄적이고 불투명해서. 저번에 징계 명단이 공개가 안 된 게 대표적인 예일 텐데요.

◇ 김현정> 66명의 판사 명단은 여러분 공개 안 됐어요. 지금 누구인지 몰라요, 우리.

◆ 이탄희> 그런 예처럼 여전히 좀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관행이 많이 남아 있어서 그런 부분들이 개선되려면 시간이 좀 걸리려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지금 말씀하신 거 아주 쉽게 제가 말하자면 결국은 팔이 안으로 굽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우리 사람 이름을 공개해? 그거 망신 주기 아니야? 그렇게는 못하겠어, 우리 자식을. 이런 거 아니에요?

◆ 이탄희> 그런데 그게 어리석은 생각인 게 결국은 66명이라고 하더라도 3000명의 판사를 대비해서 비율로 보면 2-3%잖아요.

◇ 김현정> 맞아요.

◆ 이탄희> 그 2-3%를 익명화해서 3000명 속에 섞어버리면 결국 3000명 전체가 이 일로 인해서 의심을 받는 거거든요. 그건 조직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도 저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답답하네요.

◇ 김현정> 1차 공판에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이렇게 말했어요. 이토록 잔인한 수사가 어디 있냐. 검찰의 공소장은 한 편의 소설이다. 무려 24분 동안 검찰을 향해서 거침없는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사찰이다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 이탄희> 저는 사실 특정인 개인의 어떤 행동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지는 않고요. 다만 일반적으로 이런 권한 남용 사건에서 고위 공직자분들이 보이는 언행에 대해서 공통점을 제가 발견한 것은 공사 구별이 안 된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월 23일 오전 서울 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있다. 이한형기자

◇ 김현정> 공과 사가?

◆ 이탄희>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요. 첫 번째는 본인이 공직 생활을 하면서 한 행동에 대해서 마치 자기가 사적으로 한 행동을 조사받고 재판받는 것처럼 행동하는 거. 마치 집안일 조사받는 것처럼 말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건 잘못된 태도거든요. 공직이라고 하는 거는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거고 자기의 어떤 공적 과업을 다하기 위한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히 조사받고 재판을 받아야 되는 거고요. 두 번째 측면은 사실은 자기 역할이 끝났으면, 임기가 끝났으면 그다음부터는 사인으로 돌아가는 거거든요. 이게 뭐 봉건적인 신분이 아니잖아요.

◇ 김현정> 그럼요, 그럼요.

◆ 이탄희> 그런데 여전히 자기가 어떤 공직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기를 재판하는 것은 조직에 대한 재판을 하는 것이고 그래서 지금 같은 경우도 법원과 검찰의 조직 대립인 것처럼 그렇게 취급되는 언행을 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안타깝고 공사 구별을 좀 더 명확히 하는 문화로 우리가 나아갔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좀 많이 듭니다.

◇ 김현정> 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판정 들어설 때 다 일어섰다는 것도 굉장히 화제였거든요.

◆ 이탄희> 제가 직접 보지는 못했는데요. 만일 그랬다고 하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죠.

◇ 김현정> 그래요. 이탄희 전 판사. 사법 농단 사태의 시발점이 된 주인공 이탄희 판사 만나고 있습니다. 아까 변호사 되신 얘기 잠깐 했는데 판사 때 못 한 경험도 많이 하고 계시겠어요.

◆ 이탄희> 그럼요.

◇ 김현정> 에어컨 없는 경험도 처음이실 테고. 현장에 나갈 일도 사실 판사 때는 없잖아요?

◆ 이탄희> 사회적인 접촉면이 비교가 안 되게 넓어졌죠. 사실 판사는 그냥 혼자 하는 일이거든요. 우리가 동료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노력은 하지만 일 자체는 법대에서 혼자, 사무실에서 혼자 하는 건데 변호사의 일은 혼자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 김현정> 그래요?

◆ 이탄희> 당사자도 만나야 되고. 특히 공인인권법재단 공감 같은 경우는 저희가 사건을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서 하는 게 아니고 저희가 중요하다고 의미가 있는 사건이 뭔지를 찾아나서서 사건을 하기 때문에 현장에 가야 될 일 또 현장에서 활동하시는 활동가분들을 만나야 될 일. 이런 것들이 많아요.

◇ 김현정> 제일 기억나는 현장은, 그중에?

◆ 이탄희> 사실 제가 아직 한 달밖에 안 돼서 현장을 많이는 못 갔는데 얼마 전에. 제 관심 분야가 빈곤, 복지 분야거든요. 그리고 요즘에 그 분야에서 문제되는 것 중의 하나가 주거권 문제여서 노숙인들 실태를 확인할 겸 항상 인권 지킴이 활동을 하는 단체가 있어서 같이 제가 따라 나가봤는데 서울역을 한 바퀴 돌았죠.

거기서 한 분, 한 분 만나고 어떻게 해서 오시게 되셨는지. 그중에는 보니까 지난주까지만 해도 어디 다른 곳 쪽방촌에서 묵고 있었는데 임료가 한 3달 밀려서 나왔다. 이렇게 말씀하신 분도 있고 하더라고요.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내가 예전에 판사할 때는 종이로 읽기만 했는데 이런 부분들이 있었구나. 내가 어찌 보면 이걸 차라리 겪고 판사가 됐으면 더 좋은 판사였을 텐데 그런 생각도 좀 들더라고요.

◇ 김현정> 되게 중요한 지점이네요.

◆ 이탄희> 그렇죠.

◇ 김현정> 공부 잘해가지고, 시험 잘 봐서 바로 판사 되고 검사 되고 이게 아니라 이런 것 좀 세상 보고 겪고 내가 판사가 됐었으면. 그래요. 그 얘기를 하다 보니까 법원 개혁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는데 오늘 다 법원 개혁 전체를 다 얘기할 수는 없을 테고 핵심은 탈(脫)판사화다. 그런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 이탄희> 맞습니다.

◇ 김현정> 판사한테 탈판사화 이게 뭡니까?

◆ 이탄희> 행정은 행정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판사는 재판을 하자라는 건데요.

◇ 김현정> 그럼 행정 업무 파트에 있어서 탈판사화.


◆ 이탄희> 그렇죠. 법원행정처. 그런데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고요. 대부분의 사법 선진국들은 법원행정처라는 조직에 판사를 넣어두지 않거든요.

◇ 김현정> 그래요?

◆ 이탄희> 우리나라에만 있는 거고요, 일본을 제외하고는.

◇ 김현정> 우리 몇 명 들어 있어요, 법원행정? 30명?

◆ 이탄희> 원래 30명 넘게 있었는데 지금 약간 줄어서 25명 정도가 있는데 이 부분이 전부 다 저는 빠져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게 이번 사건에서도 보면 국회에 파견 나간 판사라든가 아니면 비서실에서 비서로서 일했던 판사라든가. 이런 판사들이 행정 업무를 하면 사실 일선 판사들한테 연락을 해서 재판에 안 좋은 영향을 많이 미쳤잖아요. 그런 통로로 쓰이기 때문에 그런 통로를 차단하는 의미도 있고요.

또 저는 국민들 입장에서 봐도 국민들이 더 이상 행정 업무를 하고 비서 업무를 했던 판사로부터는 재판받고 싶지가 않다, 꺼림칙하다라고 하는 공감대가 저는 이미 형성돼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문제는 단순히 그건 특정인의 문제나 특정 대법원장의 문제가 아니라 현 대법원장 비서 역할을 하는 판사도 3-4년 뒤에 예를 들어서 민감한 정치적 사건을 맡게 되면 똑같은 운명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국민들의 입장에서도 행정처에 판사가 빠지는 게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 김현정> 그게 핵심이다. 좋은 부분 지적해 주셨네요. 이탄희 판사를 향해서 지금 응원의 문자가 오늘 쉬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많이 쏟아지고 있는데 마지막 질문은 좀 크게 드려도 돼요? 너무 큰 것 같은데. 이탄희 판사가 생각하는 정의란 무엇입니까?

◆ 이탄희> (웃음) 너무 큰데요. 이건 책을 한 권 써야 될 문제인데.

◇ 김현정> 그러게요.

◆ 이탄희> 그런데 저는 소박하게 이야기하자면 일단은 진실이다. 그렇죠? 뭐가 진실인지 그걸 명확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 그게 정의의 출발점일 것이고요. 그 진실에 의미가 부여가 될 텐데 그 의미를 부여함에 있어서는 정말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의미, 그것을 부여하는 것. 그게 저는 정의라고 생각해요. 그게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제가 2년 동안 이 일을 겪으면서 느낀 점은 당연하지 않더라고요.

◇ 김현정> 당연하지 않더라.

◆ 이탄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생각을 아주 교묘하게 상황에 맞지 않는 언어를 쓰면서 시선을 분산시키기도 하고, 생각을 비틀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제가 가까이서 많이 목격을 하고 체감을 했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제거해나가는 것. 이게 정의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 김현정> 지금 수입 많이 줄으셨죠? 옛날보다, 판사 때보다.

◆ 이탄희> 뭐, 그렇긴 하죠.

◇ 김현정> 이런 질문은 좀 유치할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2년 동안 갖은 마음고생 많이 하시고 수입도 지금 줄어들고 법복은, 판사복은 벗었고. 후회 안 하십니까?

◆ 이탄희> 사실 이 모든 순간의 결정들이 제가 계획한 게 아니고요. 그때그때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서 저는 제가 이 사안 자체가 공적인 사안이기 때문에 공적인 관점에서 책임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결정을 해 왔고요. 그런 결정을 뒤돌아볼 때 잘못된 결정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제가 마지막에 사직한 것에 대해서는 아쉬워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걸 저도 알고는 있는데 거듭 설명드리지만 사실 판사는 본업이 재판이거든요. 재판이라고 하는 건 사실 심판을 보는 일이고. 본업을 중심으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고, 저는. 지난 2년 동안에 제가 겪은 일들이 제 입장에서는 심판이 아니라 점점 선수가 돼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제가 이미 그렇게 느끼고 있는 이상은 나오는 게 더 올바른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부분마저도 저는 후회는 없습니다. 그리고 다 지나간 일이기 때문에요. 중요한 건 지금이잖아요.

◇ 김현정> 인상이 어쩜 이렇게 좋으세요? 어려운 일 겪으신 분 같지가 않아요. 계속 웃으면서 말씀하시는 게 긍정의 마인드가 더 좋아 보입니다. 응원하겠습니다.

◆ 이탄희> 고맙습니다.

◇ 김현정> 고맙습니다. 이탄희 변호사였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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