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배우가 어디 숨어 있다가 이제서야 나왔지?' 싶을 정도로 장혜진은 '기생충'에서 능수능란한 연기를 선보였다. 단적인 예가 영화에도 잠깐 등장하는 해머던지기 신이다.
"실제로 한국체육대학교에서 해머던지기 선수한테 지도를 받았어요. 처음에는 1㎏짜리로 연습을 하다가 무게를 늘렸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하냐'고 칭찬도 받았죠. (웃음) 대학 다닐 때 연기를 전공하면서 하루 기본 4시간씩 무용 등을 하면서 몸 쓰는 법을 익힌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손에서 해머가 빠져나가는 순간 느낌이 정말 짜릿하더라고요. '선수들이 이 맛에 하는구나'라고 느꼈죠."
장혜진은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배우라는 꿈을 포기한 채로 지내야만 했던 때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때 봉준호 감독 작품에 더 일찍 출연할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봉 감독님이 '살인의 추억'(2003)을 준비하던 16, 17년 전으로 기억해요.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 졸업생 앨범 속 도전적인 제 모습을 본 감독님으로부터 '같이 하자'는 연락을 받았는데, 당시 저는 고향에 내려가서 연기를 내려놓고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할 때였죠. 제가 '지금 연기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내일 휴가 내고 갈까요?' 했더니, 감독님은 '영화 잘 되면 다음에 하자'고 했어요. (웃음)"
그는 "이번 '기생충'으로 다시 연락을 받은 뒤로 감독님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깜짝 놀라더라"며 "그때 내 존재를 잊고 있다가 이번에 다시 인연을 맺은 것"이라고 봉 감독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장혜진이 설명하는 영화 속 충숙 캐릭터에는 이러한 자신의 모습이 녹아 있었다.
"봉 감독님에게 '기택과 충숙이 어떻게 부부로 만났을까'를 물었죠. '사랑으로 만났다'고 하더군요. 과거 해머던지기 선수였던 충숙은 전국체전에서 은메달을 딴 게 최고 성적이에요. 자기 분야에서 정점을 못 찍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잘 살고 싶은데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겁니다."
장혜진은 "남편 기택이 좋은 사람인 걸 뻔히 아는데다, 안쓰러운 아이들도 있는 충숙에게는 결국 사람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열심히 살아보자'는 각오를 다졌을 것"이라며 "안 그랬다면 '내 길을 가겠다'고 (집을) 뛰쳐나왔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극중 가난한 기택네 가족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에게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아요. 가난하면 가족끼리도 서로 헐뜯고 비난할 것이라는…. 하지만 기택네는 가난하기만 할 뿐 서로에 대한 마음이 변하지는 않았어요. 현실의 우리네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이렇게 해맑은데 나 아니면 누가 이들을 돌보나'라는 게 엄마로서 충숙의 마음인 것 같아요."
◇ "다시 찾은 배우의 길…포기 않고 즐겨 온 10년은 밑거름이었다"
"충숙이 운동선수로서 잘 되고 싶었던 것처럼 저 역시 연기를 잘하고 싶었던 젊은 시절이 있어요. 연기를 그만뒀을 때 제 마음은 짧은 말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물질적인 가난이 아니라, '더는 나아질 수 없다'는 마음의 가난이었죠. 그때는 기회가 빨리 올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더군요."
장혜진을 다시 배우의 길로 이끈 계기는 이창동 감독 작품 '밀양'(2007)이었다.
그는 "현지 연극인들을 대상으로 '밀양' 오디션이 있었는데, 과거 제가 이창동 감독님 전작 '박하사탕'(1999) 오디션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어서 '인사나 드리자'는 마음으로 오디션을 봤다"며 말을 이었다.
"감독님에게 '박하사탕' 오디션 이야기를 했더니 '기억이 난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연기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말하니까 감독님이 '감성이 충만해져 있으니 연기해도 될 것 같다'는 말로 다독이셨죠. 그렇게 '밀양'으로 연기를 하는데 피가 다시 도는 느낌이었어요. 과거에는 그렇게도 어렵게 느껴졌던 연기였는데, 그때 '다시 해도 되겠다'는 마음이 커졌죠."
장혜진은 "그때 다시 단역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10년을 이어왔다"며 "사실 조금 지치기도 했지만 '포기 말고 즐겁게 하자'는 마음이었다. 주변에서 내가 연기할 수 있도록 도와준 덕이 컸다"고 전했다.
"어린 시절 저는 몹시 자신감 넘쳤어요. 어떤 때는 자신감이 너무 과해서 친구들이 힘들어 하기도 했죠. 남자 애들과는 맨날 싸웠고, 학교에서는 저 모르면 간첩이었어요. (웃음) 중고등학교를 지나면서 사춘기를 겪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많이 흔들렸어요. 집안의 가장이 돼야 했는데, 가장 쉽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이 배우라고 생각했죠. 빨리 성공해서 돈을 벌자는…. 살면서 쌓인 것들을 연기로 풀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해요."
◇ "'엄마 장혜진보다 배우 장혜진으로서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딸에 뭉클"
"사람에게 기회는 공평하게 오지만 그 시기는 다 다른 것 같아요. 기회를 알아채는 것도 능력이겠죠. 놓치고 난 뒤 '그게 기회였구나'라고 알게 되기도 하고요. 저는 스스로가 아닌, 주변에서 만들어준 기회 덕을 많이 봤기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충숙이 '무계획'을 언급하는 대사가 너무 와닿는 요즘이에요."
그는 "큰애를 분장실이나 객석에 놔두고 공연 연습을 한 적이 참 많았다"고 했다. "작은애를 안고 출연한 영화가 있다"고도 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연기 활동을 이어온 입장에서 기회를 선뜻 포착하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열여섯 살인 큰애가 '기생충'을 봤어요. 처음 봤을 때는 '어렵다'더니 두번째 보고는 '재밌는데 슬프다'고 하더군요. 이젠 슬픔을 알 나이가 된 거죠. '(극중 충숙이) 실제 엄마처럼 박력있다'고도 했어요. (웃음)"
장혜진은 "'엄마 장혜진보다 배우 장혜진으로서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딸의 말에 뭉클했다"며 환한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기생충'을 한 뒤로 가족들이 '열심히 활동하라'고 독려해 줍니다. 배우로 활동할 수 있는 여지는 보다 넓어질 것 같아요. 그동안 단역이더라도 정말 열심히 연기하려 애써 왔어요. '기생충'에 주연으로 이름을 올리면서 함께 작업하는 훌륭한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는, 긴 호흡에 대한 부담감이 컸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하는 자세는 기존과 다르지 않았어요. 물론 그러한 태도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