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150만 원…수사기관 증거취득 '위법' 논란

재판부 "위법 수집으로 증거능력 없어" 판단
검찰 "위법성 여부 다퉈볼 여지 있다" 해명
전문가 "수사결과만큼 적법절차도 중요" 지적

(사진=자료사진)
수사기관이 조사를 하면서 피의자에게 통화녹음 사실을 알리지 않고 진술거부권도 고지하지 않는 등 위법하게 증거를 취득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30일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 형사부(신원일 부장판사)는 6·13 지방선거에서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이경일 고성군수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이 군수는 지난해 지방선거가 치러지기 하루 전날인 12일 A씨를 통해 선거운동원 20명에게 현금 50만 원을 각각 나눠준 혐의를 받았다. A씨 역시 재판에서 줄곧 이 군수의 요청을 받고 현금 1천만 원을 서울에서부터 고성까지 직접 들고 왔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1심 선고에서 재판부는 돈을 전달받았다고 알려진 20명 중 17명만 유죄를 인정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3명에게 전달된 150만 원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재판부에 따르면 당시 사건을 수사한 강원지방경찰청 수사관은 후보 연설지도를 담당했던 B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면서 선거운동원 C씨에게 전화를 걸도록 해 통화내용을 녹음하고 녹취록을 작성했다.


이 과정에서 통화내용을 듣고 있다거나 녹음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 뿐더러 진술거부권에 대한 고지도 없었다.

C씨는 B씨와 통화에서 '(자신 외) 선거운동원 3명도 돈을 받았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녹음된 통화 내용을 근거로 수사관은 C씨를 피의자로 소환 조사하면서 이를 집중 추궁했다.

이에 C씨는 3명도 돈 봉투를 받았다고 진술했지만, 이내 법정에서 경찰의 수사방식이 알려졌고 C씨는 3명이 금품을 수령했는지 여부를 잘 알지 못한다고 번복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마치 B씨가 혼자 통화를 하는 것처럼 C씨와 통화를 하게 하고, 그에 따라 유도된 C씨의 답변을 녹음했다고 보고 있다.

이는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피의자 진술거부권을 부정하는 것으로,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C씨가 번복한 3명에 대한 공소사실은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돼 무죄가 선고됐다. 이에 따라 선거운동원들에게 전달된 1천만 원 중 150만 원은 사실상 '증발'한 꼴이 됐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참고인에 대한 영상녹화가 진행 중이었는데 영상녹화를 중간에 끊을 수 없어 통화도 자연스럽게 녹화된 것"이라며 "통화 당사자가 수사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녹화 여부에 대해 고지하지 않은 것으로, (C씨에게) 전화를 하기 위한 녹화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영상녹화 중 녹음된 통화 내용이 증거로써 위법성이 있는지는 다퉈볼 여지가 있다"며 "다만 통화녹음 증거 외에도 당시 선거사무실에 있던 목격자들의 진술을 종합해 3명도 돈을 받았다는 정황을 포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두 사람의 동의 없이 제3자에 의해 녹음된 통화는 위법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김남근 변호사는 "제3자가 한 사람의 동의만 받고 녹음을 한 것은 결국 남의 대화를 '감청'한 것으로, 이는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만약 불가피하게 감청을 하게 된다면 '감청 영장'을 발부받았어야 했다"고 일갈했다.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 서보학 교수도 "법 집행을 하는 국가기관은 법에 정해진 절차원칙에 따라 수사를 하고 증거수집과 진술확보를 해야 한다"며 "수사에 필요한 진술을 확보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방식이 더는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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