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매주 수요일 정오 열리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낯선 얼굴의 외국인 학생들이 무대에 올랐다.
미리 준비한 내용을 또박또박 한국어로 읽은 이는 인도에서 온 대학생 운나 말라이(21) 씨였다. 다소 긴장한 듯 보였던 운나 씨는 큰 박수에 곧 웃음을 찾았다.
수요시위에 참여한 운나 씨 등 인도 학생들은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州) 주도 첸나이에 있는 마드라스 크리스천 칼리지(Madras Christian College·MCC) 재학생들이다. 대학에 설치된 한국어 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1시간 남짓 이어진 집회에서 이들은 '일본은 공식 사죄하라', '일본은 올바른 역사를 교육하라'는 구호를 한국어로 함께 외치며 인도에서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운나 씨는 3일 "친구들과 한국의 역사를 공부하다 실제로 수요집회에 참여해보니 놀라웠다. 아흔이 넘은 이옥선 할머니께서 직접 나오시고, 어린 학생들도 함께한다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함께 수요시위에 참여한 대학원생 쉐린(23) 씨는 "벌써 20여년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집회를 이어온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할머니들을 위한 간절한 바람이 이렇게 유지된다는 게 존경스럽다"고 놀라워했다.
이들은 애초 한국 드라마나 K팝 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가 일제 강점기와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를 보면서 한국 근현대사에도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특히 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룬 영화 '귀향'에서 큰 인상을 받았다.
이후 학생들은 영어로 된 자료를 찾아가며 위안부 문제를 공부했고, 지난 3월에는 교내에서 열린 '한국의 날' 행사에서 한국의 위안부 피해 문제를 인도 사회에 알리는 캠페인 부스를 마련하기도 했다.
지난달 17일 한국을 찾은 이들은 보름간 서울과 광주, 전주 등을 오가며 한국 역사와 문화를 체험한 뒤 인도로 돌아갔다.
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나비 모양 열쇠고리를 갖고 다닌다는 멜리타(20) 씨는 "과거 힘든 경험을 극복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존재만으로도 중요하다"며 "그들의 용기와 경험은 다른 사회에도 영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리마(21) 씨는 "수많은 사람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한목소리를 낸다는 게 인상 깊었다"며 "인도로 돌아가면 많은 사람에게 오늘의 경험을 공유하고 널리 알릴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