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감독관.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근로규정의 실시여부를 감독하고, 이를 위반한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수사권을 가진 고용노동부의 '특별사법경찰관'. '철밥통'이라 불리는 안정적 직업을 위해 공무원이 됐지만 그게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일 줄은 몰랐던 주인공 조진갑. MBC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연출 박원국, 극본 김반디, 이하 '조장풍')의 주인공 조진갑은 누구보다 세상 '을'인 노동자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나서는 '히어로'가 된다.
지난 5월 3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소속사에서 만난 배우 김동욱은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서 해내야지 하다 보니 어떻게 잘 됐다. 재밌게 봐주신 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에 행복하다"라고 종영 소감을 밝혔다.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으로 데뷔 후 첫 타이틀 롤을 맡은 김동욱의 소감은 소박하면서도 묵직했다.
◇ 묵직한 이슈와 사회 패러디, 공부하는 배우 김동욱
'조장풍'은 왕년엔 불의를 참지 못하는 유도 폭력 교사였지만 지금은 복지부동을 신념으로 하는 6년 차 공무원 조진갑(별명 조장풍)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으로 발령 난 뒤 갑질 악덕 사업주 응징에 나서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통쾌 작렬 풍자 코미디 드라마다. 조장풍이란 인물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못할 히어로지만, 배우 김동욱은 조진갑을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김동욱은 '조장풍'에 출연하게 된 이유에 대해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이라는 제목에 있는 '특별근로감독관'이라는 단어가 생소했다. 그 제목이 특이해서 '어떤 거지?'라며 꽂혔다"라며 "그래서 봤더니 조진갑이라는 인물의 별명이 '조장풍'이고, '근로감독관'이라는 직업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때부터 어떤 직업인지 찾아보게 되고 인터넷 등으로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3100원 버스비를 미납해 해고된 버스기사, 근로계약서 한 장 쓰지 못한 채 불안한 위치에서 일하다 뇌출혈로 쓰러진 직장인 등 노동자들은 벼랑 끝에 내몰려 아등바등 살아간다.
이처럼 '노동자'라는 단어를 꺼리는 사회에서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노동자', '투쟁', '해고', '임금체불', '도급' 등의 소재가 '조장풍'에는 전면에 등장한다. 또한 욕설을 달고 사는 대기업 회장님, 땅콩회황 패러디 장면, 마치 "다스는 누구 겁니까"를 연상시키는 "그래서 선강은 누구 겁니까"라고 묻는 대목,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패러디하는 등 사회의 묵직한 이슈에 대한 패러디도 자주 등장한다.
"그런 풍자 하고 패러디하는 장면이 드라마 대본 곳곳에 나와요. 그것이 뭘 풍자하는지, 어떤 사회적 이슈가 나오는지 배우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면 장면이 대놓고 하는 게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뉴스 이슈가 된 장면이 곳곳에 굉장히 많이 나와요. 그런 것을 대본을 보면서 파악하는 게 먼저였어요. 등장한 장면에 나오는 사건들이 실제 있었던 일인지, 어떤 사건인지 알아야 했죠. 이러한 것들이 작품 안에서 내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연기해야 하는 건 당연해요. 그런데 재미를 줘야 하는 장면에 자칫 그런 것들이 포진되어 있을 때 보는 분들에게 불편함을 끼치면 안 되잖아요.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과 다르게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기에 아주 조심스럽게 고민하면서 연기하려고 노력했어요. 보는 분들이 최대한 불편해하지 않도록 연기 수위를 잘 조절해야 했죠."
◇ 김동욱의 가치, 조진갑의 원동력 '사람'
조진갑은 세상의 모든 '을'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그들을 위해 무모할 정도로 행동에 나선다. 그리고 하나하나 해결해가며 시청자에게 통쾌함을 선사한다. 이 무모함이라 부를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온 걸까. 그 원동력을 김동욱은 '친구'라고 말했다.
조진갑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라봐 온 김동욱은 "그런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내 옆에 있는 친구, 갑을기획 멤버, 선우, 말숙, 미란, 청장님, 근로개선지도과 동료들, 동영이. 시작은 혼자였다. 선우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혼자였지만 조금씩 친구가 늘어가며 진갑이도 자신감이 생겼던 거 같다"라며 "내가 가는 데 있어서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내가 한 선택들이 아주 틀린 건 아닌가 보다, 뭔가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용기가 생겼다"라고 설명했다.
김동욱이 말한 것은 결국 '연대'의 힘이다. 절실함이 서로 하나로 뭉쳐 내는 힘이 조진갑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 원동력이다. 김동욱은 "진갑이란 인물에게 용기를 줄 수 있었던 건 결국 사람이다.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며 "끝까지 혼자였다면 좌절했을까요? 그럴 수 있었을 거 같다"라고 말했다.
'조장풍'이라는 작품은 김동욱이 중요시하는 '사람'에 대한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 그렇기에 이번 작품을 통해 김동욱은 즐거움을 느꼈다고 한다. 김동욱은 "김동욱이라는 개인의 삶을 살면서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살려고 하는데 '조장풍'은 그런 모습들이 아주 긍정적이고 해피엔딩으로 그려지는 작품"이라며 "그래서 작품을 하면서 즐겁고 행복했고 대리만족도 느꼈다. 나도 이렇게 살면 조진갑처럼 든든한 친구들이 많이 생길 수 있지 않나,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조진갑 혹은 조장풍으로 불리는 이 인물을 그려내는 데 김동욱은 균형을 가장 고민했다. 판타지와 현실 사이에서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비현실적인 설정 속 조진갑을 현실적인 인물로 그려내는 데 중요했다.
"드라마를 보시는 분들은 과연 저런 사람이 현실에 있을까, 진짜 저렇게 물불 안 가리고 자기 일처럼 나서서 끝까지 해결해주려고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내 주변에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연기할 때 연기 톤이나 외형적으로도 최대한 현실적으로 보이려 고민을 많이 했어요. 상황이나 거기서 무언가 해결해나가는 행동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판타지적이기 때문에 연기적으로 이것들을 과장되거나 더 어필하려고 하면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고민했죠. 진짜 현실에 있을까? 저런 사람이? 그래서 최대한 조진갑의 모습들은 현실에 저런 사람을 어디서 본 거 같다는 게 공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연기에 대한 고민은 평생 가져가야 할 숙제
조진갑은 다른 사람들은 지켜냈지만 자신의 가정은 지키지 못하고 주미란(박세영 분)과 이혼하게 된다. 김동욱은 조진갑이 이혼하게 된 원인을 '소통'이라고 봤다.
그는 "조진갑이 그렇게 된 건 어느 한쪽에 너무 치우치고 빠져서가 아니라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것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함께 하는 사람과 적절하고 충분한 소통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시간이 지나서 10년 뒤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부족한지를 조금씩 이야기하고 주변인과 소통하기 시작하면서 친구도 늘어가고 지원군도 늘어갔다. 미란이도 골칫덩어리 내 남편이 결국 이렇게 살고 싶었구나 하고 조금씩 공감하게 된 거 같다"라고 말했다.
근로기준법 위반과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수사권을 가진 '특별근로감독관'을 주제로 하는 드라마인 만큼 이와 관련한 질문을 피해갈 수 없었다. 김동욱은 소신껏 자기 생각을 밝혔다. 그는 열악한 드라마 제작환경에 관해 "조금씩 하나하나 개선되어 나갈 것이라 생각한다"라며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갑자기 달라질 수 없으니 조금씩 한 명 한 명 한 팀 한 팀 서로가 개선 노력을 시도하고 자리 잡으면 스태프, 배우들이 시작부터 끝까지 웃으면서 좋은 기억으로 끝나는 작품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욱은 지난 2004년 영화 '순흔'으로 데뷔한 이래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다양한 연기를 선보인지도 벌써 15년이 됐다. 최근 영화 '신과 함께', 드라마 '손 더 게스트' 등에 이어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의 흥행으로 원톱 주연으로서도 입지를 굳힌 김동욱은 아직도 연기에 대한 고민이 크다고 한다.
"배우로서 앞으로 연기라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어떤 작품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주고 싶은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는 거 같아요. 지금도 계속 그런 고민을 해요. 연기를 잘하는 거, 연기를 잘한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더더욱 많은 연륜을 가지고, 많은 경험을 갖고 무수히 많은 작품을 한 선배들을 보면 대단하다고 느껴요. 작품이 적으면 적을수록 연기를 보여드릴 기회가 많고, 그간 보지 못한 캐릭터를 보여드릴 기회가 많아요. 반대로 수많은 작품과 캐릭터를 보인 선배들은 그런데도 계속해서 관객들에게 멋진 작품 안에서 멋진 연기를 보여주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 배우가 하는 연기를 그렇게 많이 봐왔는데도 아직도 보면서도 이렇게 감동을 하고, 여전히 연기를 잘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갖게 되는 걸 보면 대단한 거 같아요. 어려워요. 연기는 아직도 어려워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