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GV는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사회로 진행됐고, 각각 김준겸 판사와 이현진 검사 역을 맡은 배우 문소리-이영진, 영화를 만든 김무령 제작자가 참석했다. '배심원들'을 10번 넘게 보았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관객이 있었을 만큼, GV에서는 '배심원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2008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린 국민참여재판의 담당 판사 '김준겸'의 이름 뜻은 무엇인지부터, 영화엔 실리지 못한 김준겸의 미래 장면, 여성 판·검사가 나오는 설정으로 인한 일화, 청소 요정 김선영 캐스팅 비화까지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졌다.
다음은 이날 나온 이야기와 질의응답 내용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 김준겸이란 이름의 탄생 배경은.
김무령 제작자 : 원래 시나리오는 남자 판사였다. 그때 이름을 기억해냈다, 김성규였다. 여자 판사로 바꾸기로 했는데도 감독님이 이름을 안 바꾸셔서 (읽는 데) 방해가 됐다. 그럴 거면 내가 바꿔보겠다고 해서 좇을 준(遵) 자에 칼 겸(鉗) 자를 써서 칼처럼 날카롭고 정확한 판결을 좇는 판사라는 느낌을 저희끼리는 줬다. 그 이름이 판사에 어울린다고 한다면, 문소리 배우 덕인 것 같다.
문소리 : 받고 나서 든 생각은… 발음하기 어렵다? (일동 웃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름을 들었을 때 조금 중성적인 느낌이 있어서, 감독님한테 일부러 이 캐릭터가 중성적이길 원하느냐고 물은 적도 있다. 감독님은 중성적인 걸 원하는 건 아닌데 '여성이기 때문에'라는 이유를 달기 전에 그냥 '인간 김준겸'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이 사람이 잘 보이면 여성으로서의 고충이나 그 삶도 잘 녹아날 것 같다면서. 저한테는 판사라는 직업 자체가 무게가 느껴지는데 이름까지 이렇게… (웃음) 나의 어깨를 누르는구나 생각했다.
▶ '배심원들' 김준겸은 얼마 만에 한국영화에 등장한 여성 판사인지.
문소리 : 2019년에 김준겸이 있었다면 1962년에는 한국의 홍은원 감독님의 '여판사'라는 영화가 있었다. 홍은원 감독님은 한국에서 두 번째 여성 감독이다. 괜히 제 느낌에 여자 판사가 참 오랜만인데 얼마나 오랜만이지? 한국 영화사에 판사가 있었나 주변에 물어봤다. 가정법원 판사나, 청소년 범죄 담당으로 잠깐 나오긴 하지만 여성 판사가 주가 되는 영화가 없고, 거슬러 올라가면 1962년 '여판사'라는 게 있다고 했다. (…) 그건 문정숙 선생님께서 연기했다. 문 씨가 대대로 판사 역을 하고 있다. (일동 폭소) 판사를 하면서 집안일 병행하기 너무 힘든데, 판사 때려치우고 변호사가 되어 시할머니 변론을 하고 재판을 승리로 이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1962년 하면, (지금으로 따지면) 50 몇 년이 지나지 않았나. 그런데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현실의 일하는 여성들이 겪는 고통이나 사회적 인식이 조금은 달라졌겠지만, 세월에 비해서 참 미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몇십 년 만에 나타난 캐릭터인데 내가 이번에 이걸 죽을 쑤면 (웃음) 이걸(여성 판사 캐릭터를) 너무 오래 못 보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어서 훨씬 부담감을 느꼈다. 한국 사회가 다른 면으로는 빨리 발전했다고 하지만 젠더감수성이나 성평등 지수 차원에서는 참 더디게 나아가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이영진 : (여성) 판사를 보면서 판결할 때도 후련함이 있었다. 딱 하고 저거 너무 좋다 싶었던 건 판사가 담배 피울 때였다. (웃음) 어느 순간부터 영화에서 남자 배우들은 어느 때고 담배를 피워도 이상하지 않은데, 여성 역할이 담배 피우는 씬을 하면 느낌이 좀 다르게 표현됐다. 근데 (극중 김준겸이) 불을 딱 붙이는데 '저거야!' (일동 웃음) 그런 해방감이 있었던 것 같다.
문소리 : '리틀 포레스트'에서도 제가 담배 피우는 씬을 임순례 감독님이 되게 고민을 많이 했다. 이 엄마가 집을 나가는 것도 이해받기 어려울 수 있는데 담배까지 피우면 더 이해받기 어려울 수 있다고. (웃음) 주변에서 걱정도 많이 하고 반대하는 의견도 많았는데, '끝까지 고민해보겠다. 그런데 나는 괜찮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시더라. 임 감독님은 원래 담배를 안 피우신다. 원래 시나리오에 없었는데 한번 피워보라고 하시더라.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넣었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도 사회적 분위기가 있으니까 그때도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우리('배심원들')는 그보다는 건물 안에서의 금연이 몇 년도에 시행됐나, 이런 걸 봤다. 법과 원칙에 충실한 재판장이니까. (웃음) 또 안전벨트는 몇 년 전부터 꼭 해야 했는지 이런 것들을 조사하면서 찍었다. (웃음)
▶ 검사 캐릭터를 잡으면서 중점에 두었던 부분은.
이영진 : 검사가 크게 활약하는 영화와 달리 ('배심원들'에서는) 기능적으로 존재했다. 이름이 이현진이었는데 그 캐릭터보다는 '검사'(라는 직업)에 더 맞춰졌다. 우리끼리 했던 얘기는,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공무원 같았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그래서 좀 더 드라이하게 느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 판사도 여성, 검사도 여성인 설정 때문에 제작 과정에서 생긴 어려움은 없었는지.
문소리 : (처음엔) 남자 판사였고 검사는 여자였지 않나?
김무령 제작자 : 검사는 여자였는데 남자 판사를 여자 판사로 바꾸게 되면, 검사도 여자로 하는 게 괜찮을까 싶었다.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여자 판사와 여자 검사가 되었다.
이영진 : 제가 사실 다른 작품들을 할 땐, 캐릭터를 보려고 다큐멘터리를 자주 찾아보는 편이다. 근데 검사에 대한 다큐 찾기가 되게 힘들더라. 참고로 제가 봤던 다큐도 다 남자 검사였던 것 같다. 나이가 좀 있거나. 이 작품 때문에 국민참여재판도 보고 (다른) 재판도 많이 봤는데 제가 본 재판은 여자 검사가 더 많았다. (그걸 보고 미디어에서) 다뤄지지 않은 게 더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역할은 좀 기능적인 면이 있어서, 캐릭터보다는 딕션에 더 신경 썼다. 이번에 해 보면서 안 건데, 검사 딕션이 생각보다 많이 힘든 것 같다. 그리고 이미지적으로도 우리가 판·검사가 남자 배우일 때는 그렇게 의문을 가진다거나 성비에 대해서 어떤 불편함 없이 간다. 근데 이 '배심원들'만 해도 판사의 성별에 따라 검사(성별)가 달라지는 걸 많이 고민하셨던 것 같다. 왜 판·검사가 다 여자이면 안 되지? 이것도 좀 선입견 아닌가? 라고 해서 모험하신 것 같다. 약간 그런 것에 보답하고 싶었고, 그래도 그림이 나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은 갖고 있었던 것 같다.
▶ '배우들이 캐릭터의 여백에 슥 들어와서 메꿔줄 때'가 있다고 했는데 어느 순간에 느꼈는지.
김무령 제작자 :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배우한테 그런 부분이 있다. 여백을 쓱 메워졌다고 할 수도 있고 저만 캐치하면서 '아, 저거 너무 잘했어!' 하는 부분이 배우들마다 다 있다. 검사 역은 물리적으로 많이 나오진 않는데 판사가 휴정을 했을 때 법정을 풀샷으로 보면 재판부 나가버리고 나서 검사가 막 서둘러서 자기 짐을 싸려고 준비하는 장면이 있다. 그다음 장면이 재판부들이 빠르게 합류하는 장면인데, (검사의 이전 장면이) 디테일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고 생각한다. 항상 휴정 장면이 나오면 검사의 동선을 보고 있다. 판사는 마지막 판결을 내리면서 자기 마음을 정리하는 장면이 있다. 사실 시나리오 지문에는 그런 디테일이 없다. 없는데, 법대 위에서 깍지를 딱 끼는 순간이 있다. 모니터로 보는데 저는 소름이 확 끼치더라. 손동작만으로 이 사람의 고민과 생각이 잡힌 것 같아서 그 순간을 꼽고 싶다.
문소리 : 저는 법대에 앉으면 거의 움직임이 없다. 수사기록 펼쳐보는 것, 이 사람이 말하면 이 사람 보고 듣고 저 사람이 말하면 저 사람 보고 듣고… 정말 움직임이 극도로 자제돼 있다, 그 재판장이라는 역할이. 마지막에 손을 올릴 때도 '너무 과하지 않을까?', '나 지금 고민 중이야라는 걸 너무 드러내놓고 표현하는 게 아닐까?' 하고 고민했다. 그전에 혼자 시나리오 쓰면서 여러 해 동안 남자 판사인 시절도 있었고 해서, 감독님은 김준겸이라는 판사가 마지막 선고를 할 때 시원하게 휘두르는 그런 느낌이 강하셨나 보다. 근데 선고하는 장면에서 감독님이 카리스마를 휘두르지 말고 안으로 좀 삼켜야겠다고 하셨다. 지금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도 그렇고. (일동 웃음) 사법농단 이런 기사들이 너무 많이 나오고 그럴 때여서, 내가 지금 고개를 들고 무죄를 선고할 때가 아닌 것 같았다. (웃음) 리허설 때 여러 테이크를 보시고 괜찮을 것 같다, 이렇게 가자고 해서 아침에 결정이 된 거다. 그 순간에도 손 하나 올리는 게 (웃음) 김준겸한테는 너무 큰 움직임이어서 그때 고심했다.
김무령 제작자 : 손을 올려서 딱 깍지를 끼면서 마음을 정리하는 장면을 찍는데, 처음부터 재판 장면을 내내 지켜봐 왔던 보조 출연자분이 계셨다. 판사가 판결 내리는 연기가 끝나 컷 소리가 나자마자 너무 자연스럽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치셨다. 저희가 배우, 스태프들이 너무 좋은 분위기에서 같이 만들어가는 게 있었는데 (그걸 보고) 보조 출연자도 같이 만들어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김무령 제작자 : 중간에 나오는 청소 아주머니가 저희 엔딩에도 나오는데 10년이 지난 후에도 변하지 않은 모습이다. 감독님은 그 캐릭터에 판타지적인 느낌, 디케(* 기자 주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상을 상징하는 등 여러 의미를 두셨다. 세월이 지나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누군가로서. 이 역할 캐스팅하면서 가장 큰 위기를 겪었다. 부산지방법원에서 촬영했는데, 법원 촬영 허가받는 게 굉장히 어렵다. 미리 출연하기로 했던 분이 드라마 촬영이 겹쳐서 부산 내려가기 한 4일 전 (캐스팅이) 취소됐다. 길 가는 분이라도 데려다가 찍어야 했다. 김선영 배우가 타이밍도 맞고, 심지어 부산인데도 와 준다고 해 주셨다. 그날 (새벽) 4시 50분에 법원에 도착한다고 하셨다. 맞춰서 나가서 차 앞에 레드카펫이라도 깔아놓고 싶었다. (웃음)
문소리 : '언니, 이거 언니가 나온다며? 이거 뭐야? 시나리오 읽을 시간도 없어. 언니 무슨 얘긴지 빨리 얘기해 봐' 하더라. 그래서 '선영아, 읽고 오지 않아도 되고 좋은 얘기고 다른 건 다 내가 알아서 할게. 너는 우리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요정이야. (일동 폭소) 그냥 형식이 데리고 다니면 돼'라고 했다. (웃음) 법원 가면 판사들 구두를 매일 와서 닦아주시는 분들이 계신다고 한다. 자기 방처럼 들어와서 구두 닦아놓고 나가시고 그걸 오래 하셨다고 한다. 그분들이 경험이 쌓이면 재판 조언도 해 주신다고, 워낙 법원에 오래 계시다 보니까. 거기서 처음에 모티프를 얻었는데 요새는 그 일하시는 분을 서울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어서, 디케처럼 여성으로, 또 청소하시는 분으로 바꾼 거다. 선영 씨 연기를 보고 저는 진짜 영화 보고 집에 가서 따라 해 봤다. (일동 폭소) '난 저렇게 할 수 있나? 어떻게 저렇게 다 아는 것 같으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연기할 수 있지?' 싶었다. 그 대사를 집에 가서 해 본 적도 있는데 그 맛이 안 나더라. 요정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 (웃음)
▶ 마지막 인사.
이영진 : 이 영화를 물론 계속 여러 번 봐주셔서 너무 감사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이기도 했다. 그게 지금 스코어로는 조금 아쉽긴 한데 그래도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많은 애정을 보여주셔서 감사하다. 이 자리에 늦은 시간까지 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김무령 제작자 : 마무리하는 이즈음이 아니라 시작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저는 스태프와 배우들을 만나서 이 이야기로 처음부터 끝까지 온 사람이어서 제 마음속에는 모자란 부분도 보인다. 그런데도 예쁜 점을 많이 봐주시고 칭찬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주 큰 제작비가 들지 않더라도, 잘 만든 이야기를 꼭 챙겨봐 달라. 그래야 새로운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올 것 같다. 감사하다.
문소리 : 저는 오늘 GV가 매진됐다는 소식을 듣고 감사한 마음에 제가 뭘 주섬주섬 가져왔다. 제가 홍보하면서 입었던 재판장 티셔츠랑, 사실 이건 박형식 씨 팬들이 마련해준 건데 배심원들 모자랑 하나 더 있는데, 핸드폰에 붙이는 손걸이에 배심원이라고 써져 있다. 이것도 내가 들고 있는 것보다 우리 영화 보신 분들이 가지면 좋을 것 같아서 가져왔다. 오늘 감사했다. 즐거우셨죠? 늦은 시간까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