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 봉준호 '기생충'…"나는 왜 계속 가난한가"

'설국열차' '옥자' 그리고 '기생충'
봉준호 감독 '자본 3부작' 결정판
극심한 빈부격차…촌철살인 비판
'상생' '공생' 향한 각성과 자성 촉구
흥미로운 서사·연기 등 볼거리 가득

영화 '기생충'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왜 부자는 계속 부자로, 가난한 자는 계속 가난한 자로 살아갈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한결같이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배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그것이 현실에서는 적용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아이러니하게도 '어렵지 않게' 깨달아 간다.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계급이 뚜렷하게 나뉘는 단순명료한 세상을 사는 까닭이다. 이른바 자본주의 사회다.

봉준호 감독은 말로 나타내기 힘들 만큼 다양한 부조리와 불합리를 낳고 기르는 이 체제를 고발하는 데 최근 수년간 천작해 온 모습이다. 그 결과물은 '설국열차'(2013)와 '옥자(2017), 그리고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탄 신작 '기생충'으로 이어진다.

'설국열차'를 통해 세상의 전부로 인식돼 온 기차를 전복시킴으로써 "우리에게는 또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던 그다. 후속작 '옥자'에서는 생명마저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켜 온 이 체제의 잔혹한 면모를 드러냈다.

봉 감독은 빙하기에 살아남은 사람들을 태우고 달리는 기차('설국열차'),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거대한 돼지('옥자')라는 공상과학 요소를 가미한 우화 형태로 현실 자본주의를 해부했다. 그는 자본 3부작의 결정판으로 다가오는 '기생충'을 통해 보다 현실에 가까운 사실적인 이야기를 전하고자 칼날을 벼린 듯하다.

그만큼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봉 감독의 이해에도 깊이가 더해졌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기생충'은 사회 불안의 최대 요인으로 꼽히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가 빚어내는 극심한 빈부격차를 그리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이 영화에는 극과 극에 놓인 두 가족이 등장한다. 한 축은 전원백수 가족인 기택(송강호)과 아내 충숙(장혜진), 아들 기우(최우식), 딸 기정(박소담)이다. 또 다른 축은 글로벌 IT기업 CEO 박사장(이선균)과 아내 연교(조여정), 딸 다혜(정지소), 아들 다송(정현준)이다.

4인으로 구성된 닮은꼴 두 가족이 마주하는 세상은 부자와 빈자라는 구분으로 인해 몹시도 대조적이다. 기택네가 사는 지하실 작은 창문을 통해 관객들은 순간순간 펼쳐지는 우리 사회 밑바닥 풍경을 접한다. 박사장네 으리으리한 집의 넓은 창 밖 햇살 좋은 정원은 출입이 허용된 극소수만이 이용할 수 있다.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으로 나눌 수 있는 이 두 풍경을 잇는 거리는 무척이나 멀다. 극 중반 이후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박사장네서 기택네 집으로 이동하는 모습은 마치 지옥으로 향하는 험난한 여정처럼 하강하고 또 하강한다. 저 높은 곳을 차지한 극소수 부자들이 '헬조선'을 사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만한 감수성을 갖기는 요원해 보인다.


영화를 보면서 최근 이슈가 된, 빈곤층이 사는 0.5~2평짜리 쪽방과 관련한 뉴스를 떠올리는 관객들도 있을 법하다. 부의 상징처럼 회자되는 타워팰리스 거주자가 4억여 원을 대출받아 투기 목적으로 쪽방촌 건물을 매입하고, 누군가는 쪽방 여러 채를 소유한 채 매달 1437만 원의 현금 수익을 얻고 있었다. 영화 '기생충'과도 맥이 닿아 있는 현실의 살풍경이다.

현실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를 혐오·비하하는 데 쓰이는 '00충'을 차용한 이 영화 제목은 그 자체로 부자 아닌 대다수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 민낯에 관한 촌철살인 풍자다.

좀처럼 이뤄지기 힘든 부자와 빈자의 만남은, 극중 기택네 장남 기우가 박사장네 고2 딸 다혜의 과외 알바로 들어가면서 이뤄진다. 이 우연한 만남은 걷잡을 수 없는 필연적인 사건의 단초가 된다.

"계급상승의 길은 노력하는 자에게 언제나 열려 있다" "부자들이 더 많은 돈을 벌어야 서민들도 더 잘 살게 된다"(낙수효과)는 논리는 부자 아닌 99% 사람들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도록 막아 온 자본주의적 환상과 최면이라는 비판에 힘이 실린다.

그 99%에 속해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기생충'으로 비하하도록 만드는 사회적 현실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영화 '기생충'에서 벌어지는 을과 을의 투쟁은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현실에 눈뜨도록 돕는다. 그 각성이 갑을 향한 계급투쟁으로 번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리라.

이는 곧 '상생'과 '공생'이라는 시대정신에 대한 부자들의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극중 박사장 등이 가난한 사람들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감각적 요소는, 권력자들이 스스로 우월함을 강조할 때 내세워 온 그것이다.

그 논리에 따라 부자와 빈자, 남자와 여자, 선진국과 후진국,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의 수직적인 구분은 늘 합리화 돼 왔다. 영화 속에서 기택네와 달리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제에 충실한 박사장네 풍경 역시 이를 증명하는 장치다. 결국 '왜?'라는 물음은 헬조선 건설에 일조해 온 그들이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감수성을 싹틔울 출발점이다.

영화 '기생충'은 그 자체로 재미있는 영화다. 사건을 겪으면서 세밀하게 변화해 가는 배우들 연기는 이야기에 탄탄한 설득력을 제공한다. 메시지를 강화하는 디테일한 공간과 소품 역시 뛰어난 볼거리다.

"도무지 멈춰 세울 수 없는, 맹렬한 희비극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는 봉준호 감독의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30일 개봉, 131분 상영,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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