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 감독의 '검은 여름'(2017, DCP, 112분, 극영화, 우지현·이건우 등 출연)
▶ '검은 여름'의 줄거리
대학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지현. 그는 큰 욕심 없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살아간다. 항상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고 보관하는 것이 그의 낙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다음 영화를 준비하며 배우 오디션을 보다가 대학 후배 건우를 만나게 된다. 함께 작업하며 더욱 가까워지는 둘. 그들에게 다가온 낯선 감정에 혼란스러워한다. 두 사람의 관계가 대학 커뮤니티에서 논란으로 떠오르고, 끝없는 정신적 육체적 폭력이 이들을 덮친다. 배우가 되고 싶은 건우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 사람들 앞에 자신을 성범죄의 가해자로 내세우는 지현. 인간적 좌절과 희망에 두 남자는 어떤 입장으로 맞설 것인가?
▶ 감독 노트
사랑하는 딸이 세 살이 되던 해. 그제서야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았다는 지인이 있었다. 바람이 불면 바람개비가 돌아가듯 어떤 논리적 설명도 필요 없이 그 사람을 만난 순간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남자라서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하고 보니 남자였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사랑의 의미에 대해 고민했다. 이 영화는 그 고민의 산물이다. 이 사회에서 어떻게 우정이 부서지고 소수자들이 배척되는지, 지현이 남기고 떠난 순서가 뒤죽박죽인 메모들을 통해 들여다보려 한다. 이 방식을 통해 관객들을 이야기에 동화시키는 대신, 너무 익숙해서 감각이 둔해진 삶을 낯설게 체험하도록 유도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