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예능 '가시나들'(연출 권성민)에서 할매들이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교과서에 이름을 한글자씩 적는 모습을 보며 할머니는 "글을 똑똑이 쓰네"라고 하셨다. 나의 할머니는 글자는 알지만 글을 써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집배원이 우편물을 가지고 오거나, 어디 가서 이름을 써야 할 때, 본인 대신 내게 이름을 적어달라고 하신다. 삐뚤빼뚤한 글씨가 부끄럽다면서 말이다.
일요일 오후 '가시나들'을 보며 할머니는 다섯 할매들의 모습과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자신의 예전을 반추했다. 그렇게 프로그램을 보며 웃으시다가도 옛날의 기억을 손녀인 내게 하나둘 꺼내놓으셨다. 나는 그렇게 내가 몰랐던 할머니의 어린 시절을 듣고, 삶을 듣고, 할머니를 하나둘 알아갔다. '가시나들'은 할머니와 손녀, 추억과 삶, 과거와 현재를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편하게 살다 가는 게 꿈'이라는 '가시나들' 속 할매의 말처럼 여든한 살 우리 할머니도 가끔 비슷한 말씀을 하신다. "저 할머니도 저런 말씀하시네요"라고 하자 할머니는 "늙으면 다 그래"라고 하신다.
이남순 할머니가 여기저기 글씨 연습을 해 놓은 모습이 나오길래 내가 할머니께 요즘 글씨 연습은 하시냐고 물었다. 할머니가 삐뚤빼뚤한 글씨를 창피해하시길래 연습하시라고 책 한권과 필통과 연필을 사드렸다. 할머니는 그걸 자신만의 공간에 숨겨두고 아무도 없을 때 몰래 꺼내어 한 글자씩 적어보곤 하신다. 요즘엔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하시지만, 예쁘게 글자를 쓰고 싶다는 꿈은 지금까지도 지니고 계신다.
옆으로 누운 채 TV 속 보이는 할매들의 집을 보며 할머니는 "저런 수돗가가 있으면 좋은데. 김칫거리도 씻고", "아이고, 저 노인네가 해주는 걸 뭘 먹냐, 너희들이", "아이고, 저 할머니는 신식이네", (진달래 따러 가는 모습을 보며)"그래도 저 할머니는 잘도 올라가네" 등의 말씀을 하신다. 그러면서도 제법 집중해서 보신다. 평소에는 "나은이 나오는 거 틀어줘"라고 말씀하시던 할머니가 이날, 이 시간만큼은 나은이를 찾지 않으신다.
"우리는 진달래는 얼마 안 따먹었어. 보리수, 보리수가 익으면 맛있어. 할아버지(할머니의 아버지)가 보리수가 많이 익었다고 가자고 해서 가면, 할아버지가 빨갛게 익은 걸 (보리수) 가지를 꺾어다 줘. 여기 앉아서 따 먹으라고. 그거 먹고. 뻐꾹이(국화과 뻐꾹채속 뻐꾹채로 추정). 뻐꾹이라는 이름이 있어. 꺾어서 꽃이 펴. 그걸 꺾어서 껍데기 까버리고 속을 먹어. 그것도 꺾어 먹으러 가고. 싱아, 그것도 할아버지가 낫으로 벼서 한 단 묶어서 갖다줘. 그러면 그것도 먹고. 저기 뭐야, 그게 뭐지, 찔레꽃. 찔레꽃 이렇게 올라오는 새순이 있어. 그게 손가락 같이 굵어. 그러면 할아버지가 뚝뚝 잘라서 먹으라고 갖다줘. 애 보라고, 김매는데, 애 보라고 데리고 가잖아. 그러면 이제 나무 그늘에 앉아서 멍석 갖다 깔아놓고 있으면 할아버지가 먹을 걸 다 갖다줘. 앉아서 먹으라고."
함양 할매들이 학교에 가고, 글자를 배우는 모습을 보며 그래도 할머니는 학교는 다녔다고, 할아버지 덕분에 학교도 가봤다고 말씀하신다. 물론 6.25 전쟁이 터지면서 나무에도 오르고, 학교도 다니고, 아버지와 같이 보리수와 싱아를 따먹던 일상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당시는 행복했다고 말씀하신다.
"학교 댕겼지. 그 전엔 학교도 가면, 지금은 시험 본다고 그러지. 그때는 가서 나이 대고, 이름 대고, 생일 대면 합격이야. 할머니(할머니의 어머니)가 그걸 못 댔으면 했대. 떨어지면 집에서 애 보라고 하려고. 할아버지는 학교를 보내야 한다고 하고, 할머니는 안 가도 된다고 했어. 내가 할머니를 날 데리고 학교에 갔는데, 이름이 뭐냐니까 이름 대고, 생일이 뭐냐니까 생일대고, 나이가 몇 살이냐 하니까 몇 살이라고 하고. 그러니까 합격됐잖아. 할머니가 집에 와서 나는 그런 것도 못 댈 줄 알았는데 다 대가지고 학교 가야 된다고. 비가 와서 돌다리를 못 건너가면 할아버지가 업어서 건너 주면서 학교 가라고. 그러면 또 갔다 올 때는 와가지고 기다리고 있다가 건너 주고 그래."
"내 위의 오빠가 나하고 한 학교가 되어 버리니까 나하고 경쟁한다고 밤낮, 지가 먼저 가. 지가 먼저 가면 이쪽 길에 시골이니까, 풀이 났잖아. 이쪽도 나고. 그러면 이걸 다 묶어놔. 지가 먼저 가면서. 내가 이렇게 고개에 올라서면 빨리 내려오라고 손짓해. 삼촌만 쳐다보고 뛰다가 걸려서 엎어지고 걸려서 또 엎어지고. 엎어져도 깨지지도 않아. 풀이 많아서. 그러면 그다음 날은 또 내가 먼저 가. 내가 먼저 가서 다 묶어놔. 그리고 저 아래 가 있으면 고개 이렇게 넘어와서 서낭당 있는 데서 날 내려다봐. 빨리 오라고 하면 저도 뛰다가 다 엎어져. 뒹굴뒹굴 구르고. 자치기 하고, 둘이 던지면서 밤낮."
"나는 쓴 건 안 먹어. 죽은 외숙모가 여기 피난 나와서, 어디 가서 나물 뜯어오라고 해서 우리가 가서 나물 뜯어왔는데, 쓴 나물을 뜯어왔어. 그걸 넣고 죽을 끓였는데, 쌀 아깝다고, 쓰다고 안 먹는다니까, 쌀 아깝다고 먹으라고 해서 그때 먹고는 그다음부터는 퍼런 국은 안 먹어."
할머니는 이전부터 쑥이 들어간 음식을 좋아하시지 않았다. 전쟁 당시의 기억이 남아서였다. 단지 쑥이 갖는 쓴맛이 싫어서만은 아니다. 말씀은 써서 싫다고 했지만, 먹을 것이 없어 나물을 캐는 과정에서 폭격도 목격하고, 폭격의 여파를 온몸으로 겪기도 하셨다. 피난 중 다친 어머니에게 그 쓴 것만 드시라고 했던 기억, 그 과정이 담긴 쑥이 할머니에게는 아프고 힘든 기억인 거다.
'가시나들'이 과장된 자막도, 웃음을 위한 억지스러운 설정도 없는 '청정예능'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청정예능 이상으로 '가시나들'은 동시대를 살아온 노년들의 과거와 현재를 위로하는 예능이기도 하다. 가시나라서, 전쟁을 겪으며 살아남기도 힘든 그 하루하루를 견뎌 온 이들의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의 우리가 미처 몰랐던, 억척스럽다고 말하는 노년의 삶이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알 수 있는 계기가 '가시나들'이다. 잠시 잊고 있던, 우리와 다를 바 없었던 노년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기를 짚어볼 수 있는 계기가 '가시나들'에 있다. 현재와 과거를 잇고, 현재와 과거를 대화하게 하는 프로그램이기에 '청정예능'을 넘어 따뜻한 예능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