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에는 그의 초상화를 그려 들고 온 부시 전 미국대통령을 비롯해 전,현직 정치인들과 그를 그리워하는 추모객들로 차고 넘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난 것은 2004년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였다.
현직 대통령과 다수의 언론인이 자유토론 형식의 간담회를 가진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당시 그는 토론에 참여한 기자들과 제대로 인사조차 나누지 못할 정도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토론이 진행되면서 차츰 그의 달변과 공격적인 태도를 되찾았지만, 그가 얼마나 언론과의 관계를 껄끄러워 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최근 발견된 그의 친필메모에는 기득권세력과 결탁한 수구 언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그럼에도 그는 언론과의 토론회를 피하지 않았고 결국 탄핵위기까지 몰렸지만, 그의 소신을 솔직하게 답변했던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세월이 지나고 그가 서거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면서, 그의 성품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광우병 사태로 위기에 몰린 MB정부가 국면전환을 위해 그를 희생양으로 삼아 무리한 수사를 강행했고, 결국 그를 죽음까지 이르게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가 개혁하고자 했던 기득권은 여전히 강고한 저항을 이어가고 있고, 입에 담지 못할 언사로 그를 조롱하던 야권은 여전히 험하고 천박한 말로 현 정권을 비난하고 있다.
노무현의 뒤를 이은 두 전직 대통령이 비리와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혐의로 교도소 신세를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들을 지지하는 일부 세력은 훨씬 강하고 거칠게 저항하고 있다.
하지만 저항이 거칠고 야비해졌다는 것은 그만큼 두려움이 커졌다는 것을 반증한다.
노무현이 원했던 세상은 앞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한 견고하고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지역주의의 벽이 한 자락 허물어 진 것도, 맨 주먹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았던 그의 무모한 정치역정이 한 몫 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넘어야 할 벽은 높고 강고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벽 틈이 갈라지고 그 틈으로 한 줄기 빛이 들어오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또 10년이 흐르면 그를 디딤돌로 어떤 세상이 와있을지 모를 일이다.
'바보' 노무현을 추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