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의 공무상비밀누설혐의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공판준비기일은 피고인의 출석 의무가 없어 이들 모두 재판엔 나오지 않았다.
대신 피고인 3명의 변호인으로 변호사 9명이 출석했다. 성 부장판사를 위해서만 5명의 변호사가 재판에 나왔다.
신 부장판사는 2016년 서울중앙지법 형사 수석부장판사로 근무하던 당시 검찰의 '정운호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법관의 비리 연루 의혹이 일자, 관련 기밀 사항을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보고한 혐의를 받는다. 유출한 비밀 정보는 영장전담 재판부를 통해 얻은 영장청구서와 수사기록 등을 정리한 보고서 9개와 검찰 수사보고서 사본 1부다.
성·조 부장판사는 당시 영장전담부장판사로서 신 부장판사에게 기밀인 영장심사 내용 등을 전달한 혐의가 있다.
이날 3명 피고인의 변호인들은 모두 공소사실 전체를 부인했다. 신 부장판사의 변호인은 "수석부장판사 직책에서 당연히 보고해야 할 의무있는 것을 상급 기관인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것"이라며 "사법행정상 필요에 의한 것으로 직무상 정당한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조·성 부장판사의 변호인들도 "영장판사가 수석부장에게 보고한 것은 기관 내에서 이뤄진 일로 누설의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내부 보고에 불과해 국가기능에 장애를 초래했다고 볼 수 없고 범죄가 있다고 판단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검찰 측은 "영장청구 필요성을 담은 자료와 종합수사보고서를 통째로 복사해 은밀히 수차례에 걸쳐 보고했을 뿐 아니라 법원행정처에서 준 가이드라인도 수행했다"며 "영장전담 재판부의 수사기능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했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정운호 수사와 관련해 법관과 그 가족에 대한 영장이 청구되면 엄격 심사해 기각하는 영장 가이드라인을 이들에게 이메일로 전송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날 변호인들은 다른 사법농단 재판에서와 마찬가지로 공소 내용이 '공소장일본주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서는 재판부도 이례적으로 "통상적인 공소장과는 많이 다르고 힘이 많이 들어가 있는 공소장"이라며 "피고인들과 직접 관련 없는 행정처 사정 등이 상당히 들어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공소장일본주의 위반으로 공소 자체를 기각하기 보다는 검찰에서 먼저 공소장 내용을 정리하는 방향으로 권고했다.
검찰은 이날 성 부장판사 측이 이번 사건을 "정치적 기소"라고 비판한 의견서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성 부장판사 측은 여당 인사(김경수 경남도지사) 재판에서 성 부장판사가 실형을 선고하자 검찰이 정치적인 사정으로 기소했다고 주장해 왔다.
검찰 측은 "지난해 9월 성 부장판사를 조사한 후 압수수색영장이 계속 기각되면서 수사기간이 길어진 것"이라며 "성 부장판사 측 주장은 근거 없는 억측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다음달 17일 공판준비기일을 한차례 더 연 후 이르면 다음달 말부터 정식 공판을 진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