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해지기 좋은 시간 '가시나들'

[노컷 리뷰] MBC 파일럿 예능프로그램 '가시나들'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들'에 선 할머니들 통해 보는 삶과 위로

MBC 파일럿 예능프로그램 '가시나들'(연출 권성민) (사진=방송화면 캡처)

"좋고 나쁘고 뭐… 저… 저기…. 우리 일 이 삼 사도 모르니까…. 큰아들한테 야야 이거 느그 집에 전화할라 카믄 이거 어느 자 어느 자를 눌르야 되노, 그래 그칸 게. 글자를 인자 가르키면서 고래 눌르라 캐요. 그래 인자 그걸 눌르고 저 박무순이 어머니가 글을 좀 아니까 배워보구로. 그래가지고 인자 핵교(학교)도 나간 기라. 그래 나가가지고, 아들네 집에 전화 눌르던 걸 들여다 본께, 아하, 아이고나 이, 요자(이 글자), 요자, 아이고, 요자가 그리 가는 기구나 싶어서. 그래 눌른 게 되는 기라. 신기한 기라, 이 글이…. 글이 신기한 기라. 고맙지 뭐. 그런 학교가 없으면 어데 가서 배우겄어."(이남순 할머니)

"할머니는 배우면서 어떤 단어가 제일 좋았어요?"라는 짝꿍 이브의 질문에 큰아들에게 전화하기 위해 누른 글자를 알아보니 신기하다고, 글이 신기하다고 대답하는 할머니. 그리고 글을 알려준 학교가 고맙다는 말에는 '가시나'(계집아이의 방언)라 견뎌왔던 80여년의 세월이 담겨 있었다.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읽고 한 자 한 자 직접 써 내려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설움 속에 살아왔을지 모른다. 그러한 세월을 견뎌 온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워나가는 시간, 그 시간은 할머니에게도, 우리에게도 마음 따뜻해지기 가장 좋은 시간일 것이다.

MBC 파일럿 예능프로그램 '가시나들'(연출 권성민) (사진=방송화면 캡처)

지난 19일 MBC 파일럿 예능프로그램 '가시나들'(연출 권성민)에서는 인생은 진작 마스터했지만 한글을 모르는 할매들과 한글은 대략 마스터했지만 인생이 궁금한 20대 연예인들의 동고동락 프로젝트 첫 이야기가 펼쳐졌다.


경남 함양의 작은 시골학교에는 어린 시절 학교를 못 갔던 할머니들의 한글 교실 '문해학교'가 있다. 그곳에서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들'인 이남순 할머니(85), 박무순 할머니(83), 김점금 할머니(77), 박승자 할머니(76), 소판순 할머니(72)의 한글 배우기가 이루어진다.

배우 문소리가 선생님으로, 배우 장동윤, 위키미키 최유정, (여자)아이들 우기, 이달의 소녀 이브, 우주소녀 수빈이 각각 할머니의 짝꿍이 되어 할머니들의 한글 배우기를 돕는다.

MBC 파일럿 예능프로그램 '가시나들'(연출 권성민) (사진=방송화면 캡처)

'찌다'('끼다'의 방언), '우짜다'('어찌하다'의 방언) 등 낯설면서도 익숙한 경상도 방언을 하나씩 주워 담는 재미도 있고, 함양 할머니들이 말하는 강아지 짖는 소리 '공공'에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표준어와 경상도 방언의 차이에서 오는 배움, 방송이 낯선 할머니들의 솔직한 이야기와 행동에서 나오는 솔직한 웃음은 '가시나들'을 통해 얻는 또 다른 재미다.

지금은 웃으며 한글을 배우지만 사실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들'이 되기까지에는 지난한 세월이 있었다. 가뜩이나 힘들었던 시절, '가시나'라 더 힘겨웠던 할머니들만의 시간 말이다.

수업 도중 마음에 안 들면 밥상을 엎던 남편의 이야기가 나온다. 요즘엔 남편이 밥상을 엎으면 혼난다는 말에 할머니들은 말없이 끄덕이지만 그 안에 응축된 마음은 얼마나 깊을지 짐작할 수 없다. "여자가 고달팠어, 우리 때는"(박무순 할머니)라는 말과 "콱 쥐어박고 싶지"(소판순 할머니)라며 웃으며 하는 이야기 속에 담긴 건 고달팠던 그 시절의 기억이다.

또한 일제강점기부터 태평양 전쟁(194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과 연합군 사이에 벌어진 전쟁. 일본에서는 '대동아 전쟁'이라고 불렀다), 한국전쟁까지 고난의 역사를 직접 겪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묵직하게 다가온다.

MBC 파일럿 예능프로그램 '가시나들'(연출 권성민) (사진=방송화면 캡처)

"우린 시대를 잘못 타고났거든. 얼마나 배가 고프면 벽을 뜯어 묵었을까. 저거 있잖아 벽 발라놓은 거, 그걸 돌아누워 갖고 다 뜯어먹었다니까. 그때는 대동아 전쟁이라, 내 어릴 땐데. 내 위에 또 언니가 하나 있어. 뭘 까삭까삭 묵어 싸! 뭘 이리 묵는가 봤더니, (벽을) 다 뜯어 묵어. 그래서 지금은 쌀 사오지? 하나 흘리면 그거 쌀은 줍게 돼. 콩하고 이런 건."(박무순 할머니)

아픔 속에서도 단단하게 자신과 가족을 지켜오며 살아 온 이들의 삶은 그 자체로 용기와 위안을 전한다. 마치 어릴 적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고, 우리가 모르는 시골의 삶을 알려준다. 손주를 챙기듯 할머니들은 자신의 짝꿍과 서울에서 온 '양반들'인 스태프를 챙긴다. 스태프들 한 명 한 명 음료를 챙기고, 스태프들이 끼니끼니를 제대로 못 챙길까 걱정해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모습은 우리네 할머니의 모습 그대로다.

MBC 파일럿 예능프로그램 '가시나들'(연출 권성민) (사진=방송화면 캡처)

첫 수업에서 받은 교과서 표지에 할머니들은 느리고 서툴지만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자신의 이름을 새긴다. '가시나'라는 이름으로 새겨진 차별과 설움을 견뎌 온 세월이 눌러 담긴 이름 석 자에 울컥하고, 그런데도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들이라며 한글을 배워가는 모습에 존경을 담아 바라보게 된다.

'가시나들'에서 할머니들은 한글을 배우지만, 짝꿍이 된 연예인들은 할머니의 삶과 인생을 배운다. 그들의 소통과 이야기를 보며 시청자도 자연스레 위로와 잔잔한 감동을 전달받는다. 그렇기에 할머니들의, '가시나들'의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억척스러움으로 불린 할머니들의 삶의 진실, 인자함 뒤에 숨겨왔던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마음 따뜻해지기 가장 좋은 시간을 만나기 위해서 말이다.
MBC 파일럿 예능프로그램 '가시나들'(연출 권성민) 포스터 (사진=M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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