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만나고 나서 김 감독의 삶에는 굵직한 흔적이 남았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갔던 1984년, 한예종 영상원 영상이론과를 만들었던 1995년,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를 맡았던 2000년… 그가 직접 밝힌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관수동 인디스페이스 관객 라운지에서 다큐멘터리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의 김소영 감독을 만났다. 영화를 처음 만난 순간에서부터, 이야기하고 싶은 바를 표현하는 창구로 다큐멘터리를 택한 이유, 독특한 인상으로 기억에 남는 제목을 짓는 방법 등을 물었다.
◇ 김소영 감독이 제목 짓는 법
김 감독은 '망명 3부작'을 통해 고려인의 이야기를 전해왔다.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고려인을 연구한 아버지 故 김열규 교수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문학'이 아니라 '영화'로 방향을 잡은 건, 김 감독이 아버지에게서 멀리 떨어지려는 시도였다.
김 감독은 "멀리 떨어졌는데 다시 가 보니까 아버지 필드더라. 아버지는 문학으로 하셨고 저는 영화로 한 것"이라며 "완전히 타자가 아닌 것, 그게 되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작업물을 보고 고려인 문학 연구를 시작한 사례가 있을 정도로, 그의 활동 역시 누군가의 출발을 도왔다.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 앞머리와 끝부분에 등장해 수미상관을 이루는 내레이션은, '사람이 묻히는 땅'에 맞는 이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향이라는 말에 못지않게 정다운 말"을, 김 감독은 찾아냈을까.
김 감독은 "정답지는 아니지만 그 말을 찾긴 찾았다. 제가 '신여성 도착하다' 전시를 같이 기획하고 작품도 냈는데 그때 주세죽에 관한 걸 만들었다. 우리가 '정처 없다'는 말을 네거티브하게 쓰는데, 저는 '정처'를 파지티브하게 '자기 처소를 정하는 것'이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망명 3부작' 중에서는)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게 '눈의 마음: 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인데요. 저는 시가 언어 중에서 가장 귀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목이) 시 같으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는 중앙아시아를 압도적으로 감싸고 있는 천산을 제목에 담은 것이다. 김 감독은 고려인 커뮤니티 안에서도 좋은 평을 받아 안도했다고 부연했다.
◇ 한 방을 피하면서 다큐멘터리 만들기
김 감독은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을 찍으면서 모스크바 8진 중 한 명인 김종훈 촬영감독이 뒤늦게 작품의 의도를 이해한 때를 잊지 못할 순간으로 꼽은 바 있다. 당시의 벅참을 얼마든지 다큐멘터리 안에 넣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람들의 몰입을 높이는 '한 방'을 왜 굳이 피했을까.
"삶에는 한 방이 많지가 않죠. 극이 도드라지면 다른 이야기가 죽고요. 고려인의 삶에 결과 층이 굉장히 많아서 그걸 이삭 줍듯이 하는 거지, 한 방이 너무 강하면 그것만 남더라고요. (…) 그런 걸 안 쓰려고 되게 노력했어요. 유혹은 굉장해요. 어떤 사람들에게 각인이 되니까요. 다큐 찍다 보면 그런 한 방이 나오는 순간이 있는데, 그걸 탈중심화시키고 맥락화하고 싶었어요. (한 방을 중시하는 건) 다큐멘터리를 모색하는 과정이 아니라고 봤거든요. 한 방이 약한 형태로 있으면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스펙트럼과 프리즘으로 가져가요. (배급사 시네마달의) 김일권 대표와 일하면서 되게 좋았던 것도 그 지점이에요. 맨 처음에 일 시작할 때 김 대표 첫 마디가 '한 방이 없잖아요'였어요. 근데 '꼭 한 방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이라고 하더라고요. 덕분에 저희가 작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김 감독이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은 제목 짓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시'다. 김 감독은 "제가 시를 굉장히 중요한 언어 형식이라고 생각하고 높이 평가한다. '고려 아리랑'에서도 고려인들이 시를 쓰는데, 그 시를 통해 제가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고 밝혔다.
'고려 아리랑'에는 블라디보스토크의 빙판을 걸어가는 김 감독의 모습이 담겼다. 김 감독은 그곳의 얼음이 시체처럼 보여서, 자연스럽게 그 장면을 넣었지만 막상 보는 사람들은 '이 이미지가 왜 나오는지' 당황스러워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런 구성을 불편해하는 영화평론가도 있었다고.
김 감독은 "제목과 인트로, 엔딩 이미지를 따로 촬영했다. 이런 게 없으면 영화가 한 치 앞도 못 나간다. 진전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 왜 '다큐멘터리'인가
김 감독은 단편 '겨울환상', '질주환상'과 장편영화 '경'을 제외하면 그동안 꾸준히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왔다. 장르를 따로 구분한 건 아니었다. 극영화 역시 좋아한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만이 주는 매력이 있다고 한다.
본인이 만든 여성사 3부작이 계속 다른 맥락에서 상영되는 것을 보고, 그 작품이 어떤 컨텍스트 안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지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010년에 한 홍콩 대학에서 '거류'(2000)를 틀었던 사례를 들었다. 김 감독은 "10년이 지났는데도 새롭게 보이고 영화가 별로 늙지 않았더라"라며 "(트는 곳에 따라) 맥락이 너무나 풍부해지는 거다"라고 전했다.
김 감독은 "극영화는 폭발적이고, 그중에서 고전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다큐멘터리는 너무 융통성이 많다. 그게 참 희한하다. 저는 제가 다큐멘터리를 만들리라고 생각도 안 하고 '거류'를 만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큐가 다른 세대, 다른 나라에서 여러 맥락으로 상영되더라. 해석이 풍부해져서 되게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 질문은 김 감독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가 김 감독의 삶에 어떻게 자리 잡고 있냐는 거였다. 김 감독은 잠시 고민하다가 본인 인생은 '영화학교 인생'이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김 감독은 "영화를 통해 이런 8진과 같은 굉장히 만나 뵙기 힘든 분들을 만난 것처럼, 동시에 굉장히 만나기 힘든 학생들을 만난 것 같다. 얼마 전에 (한예종 영상원) 1기 졸업생 한 명의 편지를 받았는데 너무 감동했다. 이런 친구도 제가 학교에 있으니 만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제가 영화를 만들고 교육하면서 영화가 어떤 다른 삶을 살게 해 준다는 걸 알았다. 그 지점에서 학생들도 만났고"라며 "완벽한 한국말로 된 완벽한 문장을 쓰는, 자기 삶의 어떤 부분을 영화에 쏟아붓기 위해 학교에 온 친구들을 만났던 건, 제가 영화를 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