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총장은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피신조서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사회가 급속히 바뀌어 수평적·보편적 민주주의 시대에 와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피의자 신문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은 수사 단계에서 피의자를 신문하고 이를 조서로 꾸민다. 피의자일 때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을 형사재판 과정에서 부정하면 법원은 이를 증거로 쓸 수 없다. 그러나 검찰의 피신조서는 예외다. 강요에 의하거나 남이 대신한 것이 아닌 이상 검찰에서 한 진술은 재판에서 피고인이 번복해도 증거로 채택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312조 1항에 규정된 이러한 막강한 증거능력 덕분에 그간 검찰 수사는 피의자의 자백을 얻어내 손쉽게 혐의를 입증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이 과정에서 강압수사가 이뤄지고 피의자는 경찰에서 한 진술을 검찰에서 다시 되풀이하는 이중수사를 받기도 했다.
문 총장은 그간 검찰의 피의자 신문 방식과 그 조서에만 유독 부여되는 증거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에는 공감했다. 그러나 "제도를 한꺼번에 바꿀 때 오는 공백에 대한 우려도 크다"며 "저도 몇 가지 안을 가지고 있지만 여기서 말하기는 어렵다"고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형소법 제312조 1항을 폐지해 다른 수사기관의 조서와 동등하게 취급돼야 한다는 여론을 아직 다는 수용하지 못한 셈이다.
문 총장이 고심 중인 가안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제시돼 있다. 2005년 헌법재판소는 제312조의 위헌 여부를 다투다 5대4로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찬반 양측 모두 현 제도는 공백이 있다며 관련 입법을 촉구했다.
대표적으로는 조서 작성 시 변호인이 참여해야만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등의 조항을 마련하는 것이다. 현재 피신조서를 피의자가 자유롭게 수정하기 어려운 실무적 환경 등을 절차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방안도 제시된다.
그러나 검찰이 견제와 균형 원칙에 입각해 '셀프 개혁'하겠다고 나선 만큼 이러한 보충적 조치에 그칠 것이 아니라 해당 조항을 완전히 내려놓는 결단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조항의 전제 자체가 검찰 조직은 다른 수사기관보다 우위에 있음을 의미한다는 이유에서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검찰은 경찰과 달리 피의자를 신문해도 사실상 사법부에 준하는 '공정성'과 '독립성'이 있어서 그 조서를 증거로 믿을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검찰과 타기관간 '견제와 균형'이 이뤄질 수 없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문 총장이 고민하는 여러 가지 보충적 안들로는 일부 '특별한' 피고인의 권리만 강화하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형사소송 전문 한 변호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자신의 피신조서를 30시간 검토해 업계에서 많이 회자됐다"며 "검찰 피신조서 증거능력은 그대로 두고 요건만 강화한다면 비싼 변호사를 살 수 있고 피신조서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 위주로 혜택을 받지 않겠나"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