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 ① 젊은 나이에 몸을 던진 학생열사들 ② 산업민주주의 이끈 1980년대 노동열사들 (계속) |
1980년대는 군사정권에 의한 산업화 정책 아래 노동자들은 살인적인 노동조건에서 일하며 기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특히 전두환 정권은 정권 초기 민주노조를 탄압해 수많은 노조를 강제 해산시키는 것은 물론 조합원들을 해고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당시 노동자들의 삶도 바꾸어 놓았다.
인권재단 사람의 박래군 소장은 "1980년대 노동운동이 다시 시작하는 과정에서 5·18광주정신이 원동력이 됐다"며 "광주의 들불야학 중심으로 영향을 준 것을 비롯해 1980년대 노동운동이 새롭게 태어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했다.
박 소장은 "1980년대 일었던 시민사회운동 전체가 광주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다"면서 "5·18은 광주만의 것이 아니라 전국의 5·18이다. 많은 이들이 민족민주열사들을 잊고 살아갔는데, 2년 전 문재인 대통령의 5·18기념식 호명으로 관심이 조금씩 커져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물 두 살의 나이로 1980년 6월 9일 오후 5시 50분 서울 이화여대 앞에서 노동 3권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광주학살의 의분(義憤)을 호소하는 전단을 배포하고 분신했다.
1984년 "내 한 목숨 희생되더라도 더 이상 택시노동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 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한 박종만 열사. 1987년 거제 옥포 대우 조선 노동자로 평화적 시위를 벌이던 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석규 열사. 1987년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고 외치며 부산 상고 앞에서 분신한 황보영국 열사. 서울 세종로에서 '광주사태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분신한 표정두 열사…….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는 신군부에 의해 고립되며 실패한 민중항쟁으로 끝난 듯 보였지만 이후 이들 노동자의 삶에 투영돼 산업민주주의를 이끌었다.
표정두 열사의 어머니 고복단 여사는 "많은 사람들이 열사들의 고귀한 뜻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이다"며 "이름 석자 만이라도 기억해줬음 좋겠다"고 했다.
5월 광주 정신을 계승한 이들 노동 열사들의 희생을 기억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