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김용장(5.18 당시 주한미군 군사정보관)
"39년 동안 아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사실을 이 자리에서 밝힌다" 하면서 공개석상에 나선 분. 미군 정보 요원입니다. 이분이 광주에서 그 당시에 보고 들었던 이야기. 그중에서도 그동안 갑론을박이 뜨거웠던 이야기들이 있어서 오늘 이 자리에 직접 모셨습니다. 전 미군 군사정보관 김용장 씨 연결을 해 보죠. 김용장 선생님, 나와 계세요?
◆ 김용장> 네, 안녕하세요. 김현정 씨, 반갑습니다.
◇ 김현정> 반갑습니다. 그러니까 피지에 거주하시면서 이번 이 기자 회견을 위해서 일부러 한국에 오신 거예요?
◆ 김용장> 그렇습니다.
◇ 김현정> 이게 워낙 엄청난 사실들을 지금 밝히시는 거고 그중에는 그동안 갑론을박이 계속 진행돼 왔던 그런 사실에 관한 부분도 있기 때문에요. 이해하시겠지만 선생님의 그 당시 신분을 증명해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 되겠습니다. 그 신뢰도를 갖는 부분도. 그래서 제가 몇 가지 질문을 드릴 수밖에 없을 텐데. 몇 년부터 몇 년까지 어디서 정확히 근무를 하신 건가요?
◆ 김용장> 총 25년간을 근무했거든요.
◇ 김현정> 그러면 마지막 근무하신 연도를 알려주시면 되겠네요.
◆ 김용장> 98년인가 99년까지 근무했고 그 당시 때가 김대중 대통령 취임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때 이민을 가게 됐어요.
◇ 김현정> 그러셨군요.
◆ 김용장> 그리고 제가 근무는 501 정보여단. 광주 파견돼서 25년간 근무했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그 당시에 받은 신분증이나 이런 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미군 정보 요원이라. 그 당시 받은 신분증이라든지 문서, 기록 같은 것도 혹시 가지고 계실까요?
◆ 김용장> 물론 있죠. 그 당시 때 받은 표창장도 있고 군속 근무 기록도 있고 여러 가지 것이 많이 있어요.
◇ 김현정> 그래요. 이런 것들이 사실 5.18재단을 통해서 혹은 민주당 쪽을 통해서 또 여러 언론을 통해서 이미 입증이 된 걸로 저희가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 청취자들의 도움을 위해서 이 정도 질문을 드리는 것으로 하고 오늘 제한된 시간 안에 모든 걸 다 이야기하실 수는 없을 테고 제가 그동안 그렇다, 아니다 갑론을박을 수없이 반복했던 이야기들. 또 새로운 증언들 이런 것들을 위주로 좀 질문드려보겠습니다. 우선 전두환 씨가 그 당시에 광주에 있었는가 아닌가. 이 부분에 대해서 분명히 광주에 있었다라고 어제 말씀하셨어요.
◇ 김현정> 5월 21일.
◆ 김용장> 낮 12시경에 본인 헬기로 왔어요. 확실한 겁니다.
◇ 김현정> 헬기를 타고 왔다가 언제 돌아간 겁니까?
◆ 김용장> 1시간 후에 돌아갔습니다.
◇ 김현정> 1시간 머물다가 간 겁니까?
◆ 김용장> 네.
◇ 김현정> 그 1시간 머물다가 간 동안 직접 목격을 하신 건 아니고 이건 정보원을 통해 들으신 거라고 하셨어요.
◆ 김용장> 네, 정보원을 통해서. 전화로 왔어요.
◇ 김현정>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 김현정> 뭐라고 하던가요, 그 정보원이?
◆ 김용장> 왔다는 얘기죠. 전두환 씨가 왔다고.
◇ 김현정> 왔다.
◆ 김용장> 이미 와서 대기하고 있었던 정호용 전 사령관. 또 505보안대의 이재우 대령 그리고 또 한 분이 계신데 그분 이름은 나중에 그분 이름을 알게 됐지만 그 이후에 알게 된 내용은 제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때 보고한 내용만 얘기할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그 인지한 내용들은 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거든요.
◇ 김현정> 이 장면을 목격한 정보원에게 직접 듣고 미국으로 보고한 내용은 지금 말씀하신 이 내용이다. 이 말씀이세요. 그렇군요. 어제 그러셨어요. "이 회의에서 아마 발포 명령, 발포 명령을 넘어서 사살 명령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이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 김용장> 그건 제 사견이에요. 왜 그러냐면 그분이 서울로 돌아간 바로 직후에 광주 도청 앞에서 집단 사살이 이뤄졌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한 70명. 그렇게 집단 사살을 당했는데 그건 전두환 씨 명령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전두환 씨가 사살 명령을 내렸을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고 저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우리 정보원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 김현정> 그러니까 그날 집단 발포가 있었던, 발포 명령이 떨어진 날이 전두환 씨가 광주를 방문하고 간 그날 공교롭게도 같은 날이기 때문에 이건 추정해 보자면 결국 그 명령을 하고 간 것이 아닌가라고 공유를 하셨군요, 정보원들 사이에서는.
◆ 김용장> 제가 말하는 것은 그 발포는 그 이전에도 이루어졌는데 그렇게 집단 사살 행위는 전두환 씨가 광주에 온 이후에 일어났어요. 그래서 이런 것들은 위원회가 결성이 되면 거기서 밝혀져야 할 일이거든요.
◇ 김현정> 그러면 이것들을 보고한 정보원들은 그러면 군 내부 사람들인가요? 왜냐하면 전두환 씨 얼굴을 목격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이 정보원은 군 내부 정보원인가요? 여러 명?
◆ 김용장> 한 분이 있는 게 아니고.
◇ 김현정> 복수의 정보원입니까?
◆ 김용장> 그렇습니다. 복수의 정보원들이고.
◇ 김현정> 전두환 씨를 목격한 사람이 여럿이다.
◆ 김용장> 네.
◇ 김현정> 그분들은 그러면 지금 한국에 계시는 건가요?
◆ 김용장> 지금 다 살아계실 겁니다.
◇ 김현정> 누구인지는 기억을 하세요, 이름이라든지 생생하게.
◆ 김용장> 물론 기억하죠.
◇ 김현정> 그러면 그분들이 한분이 아니라 여럿이라면 그분들 중 누군가가 양심 선언을 하고 공개적으로 말씀을 하실 수도 있겠네요.
◆ 김용장> 그럴 가능성도 있죠.
◇ 김현정> 있군요.
◆ 김용장> 그러나 그분들이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을지 좀 회의적입니다.
◇ 김현정> 왜 회의적이실까요?
◆ 김용장> 자기가 속해 있는 조직 있잖아요. 그 조직으로부터 잘못하면 속말로 왕따를 당할 수 있는. 특히 정보 기관에서는 배신자. 이런 낙인을 찍힐 가능성이 많거든요. 그리고 또 양심 선언을 해서 오는 여러 가지 불이익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감히 못 하죠.
◇ 김현정> (어쨌든) 이건 내가 직접 본 건 아니라는 말씀을 지금 하셨어요.
◆ 김용장> 제가 본 건 아닙니다.
◇ 김현정> 그런데 지금부터 할 이 부분은, 지금부터 이야기를 나눌 이 부분은 김용장 선생께서 직접 보셨다고 밝힌 부분이기 때문에 제가 더 주목이 됩니다. 무엇인고 하니 "남한 특수군이 존재했다. K57 광주 제1전투비행단 격납고에서 민간인 복장을 한 국군을 30-40명 목격하셨다." 맞습니까?
◆ 김용장> 네.
◇ 김현정> 어떻게 된 건가요?
◆ 김용장> 편의대라고 부르죠, 그분들을.
◇ 김현정> 편의대? 왜 이름이 편의대예요?
◆ 김용장> 그 편의대란 말은 편리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라는 뜻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군인이 이런 민간인 복장을 하고 어떤 일을 수행하잖아요. 그걸 편의대라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한 30-40명 왔어요, 헬기를 타고. 그리고 광주로 가서 유언비어를 유포하기도 하고 또 시 군중들이 어떤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고 또 과격한 시위를 해서 폭동하는 이런 일을 했어요. 그건 보고를 제가 하지 않고 다만 편의대가 현장에 있었다. 그것만 보고를 했습니다.
◇ 김현정> 군 수송물을 탈취한다든지 유언비어를 조장한다든지 시민들 사이에 섞여서 이런 일을 했다.
◆ 김용장> 그분들이 했다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확신하고 계세요. 이게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자연히 북한군 침투설로 얘기가 이어지는데 북한군이 광주로 내려와서 그러니까 시민이 아니고 그 북한군이 내려와서 폭동 일으킨 거라는 게 지금까지 지만원 씨의 주장 아니었습니까? 지만원 씨를 비롯한 일부 세력들의 주장. 그러면 선생님이 판단하시기에는, 북한군이 와서 시민들 사이에 섞여서 했다는 그 행태들. 그것은 편의대, 사복 군인들, 침투된 사람들이 명령을 받은 행동이라고 추정하고 계셨어요?
◇ 김현정> 거짓말이다. 이 말씀이세요.
◆ 김용장> 난센스예요, 그냥 그야말로.
◇ 김현정> 난센스. 그러면 저는 갑자기 드는 생각이 편의대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복을 입고 민간인들 사이에 침투해서 뭔가 조작을 하는 이 편의대가 광주 민주화 운동 때뿐 아니라 다른 사건 때도 투입이 됐던가. 예를 들어서 87년 6.10 항쟁이라든지 이런 역사적인 민주화 운동 때에도 이런 식으로 투입이 됐을 가능성. 있습니까?
◆ 김용장> 물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죠. 그러나 저는 그 당시 때 광주에 있었고 제가 보고한 내용이기 때문에 어떤 그런 가능성을 제가 상상하거나 이럴 수는 없고 내가 보고했던 내용들만을 제가 오늘 말씀드리는 거예요. 얼마든지 가능하죠.
◇ 김현정> 그럼 광주에 30-40명의 사복 편의대가, 그러니까 군인들이 내려와서 민간인들 사이에서 이런 활동을 한 게 아주 특수한 일이 아닌 걸로 알고 계셨던 거예요, 그 당시에 미군 정보원으로서.
◆ 김용장> 그건 정보 기관이 특히 보안사 같은 데는 흔히 있는 일이에요.
◇ 김현정> 흔히 있는 일이라고요.
◆ 김용장> 임무 중에 들어 있어요.
◇ 김현정> 임무 중에요?
◆ 김용장> 보안사 임무 중에 이런 일들을 공작이라고 그러거든요. 그 공작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하는 거죠.
◇ 김현정>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었고 광주에도 그 30-40명의 편의대가 도착했고 내 눈으로 봤다. 이 말씀이세요. 또 하나 충격적인 증언은 실종자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실종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 김용장> 많이 있겠죠. 숫자는 모르지만 많이 있을 겁니다.
◇ 김현정> 일부는 어디 묻혔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하고 여러 이야기들이 들립니다마는 사실상 찾아내지는 못하고 있는데 그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희생자들은 광주 병원에서 소각이 됐다라고 말씀하셨네요? 이건 무슨 얘기입니까?
◆ 김용장> 그 시신을 소각했다는 거죠. 첩보를 입수해서 보고한 내용이고 광주통합병원에 시신이 운반되고 거기에서 소각했다라는 것까지 말했습니다.
◇ 김현정> 몇 구 정도가 어떤 식으로 소각이 됐는지 어떻게…
◆ 김용장> 그건 못 했습니다.
◇ 김현정> 그건 보고하지는 않으셨고요.
◆ 김용장> 지금도 모르고 있습니다, 몇 구가 소각됐는지는.
◇ 김현정> 제가 알기로는 미국으로 보고된 정보들은 상당히 짧게 메모 형식으로 보고된다고 제가 알고 있습니다.
◆ 김용장> 그렇습니다.
◇ 김현정> 하지만 선생님이 취득하시는 정보들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길 텐데 선생님이 미국으로 보내는 건 그렇습니다마는 그래도 들으시는 것은 여럿 있으실 테니까 많이 들으시지 않으셨어요?
◆ 김용장> 나중에 들은 얘기들은 재 처리 문제거든요. 시신에서 나오는 재.
◇ 김현정> 잔해들.
◆ 김용장> 청소차를 이용해서 어딘가에 버렸다. 이런 얘기들이 있었어요.
◇ 김현정> 청소차를 이용해서 그 남은 재는 어딘가에 뿌렸다라고 들으셨어요.
◆ 김용장> 갖다버렸다. 이런 얘기를 들었어요.
◇ 김현정> 이건 미군에 보고한 내용은 아니라는 말씀.
◆ 김용장> 보고한 내용은 아닙니다.
◇ 김현정> 이것도 충격적이고요. 그러네요.
◆ 김용장> 충격적인 일이 많이 있죠. 밝혀지지 않는 얘기들이죠.
◇ 김현정> 한 줄 한 줄씩, 팩트로 한 40건 정도를 보고하셨다고 제가 들었습니다.
◆ 김용장>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렇습니다. 그러면 지금 말씀하신 내용들 외에도 짧은 것들이라면 다른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기억나시는 것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 김용장> 많이 있습니다. 공수부대 대원들에 의해서 성폭행 당한 것들도 있고. 또 교도소 습격 사건. 습격 사건은 완전히 그건 허위거든요. 전혀 그런 일이 없었어요. 시위대들이 광주 외곽으로 나가려고 하는 그걸 교도소 습격했다고 이렇게 말을 바꾼 거거든요.
◇ 김현정> 혹시 이 내용들이, 선생님이 증언하신 그 내용들이 어떤 다른 수첩이라든지 다른 기록물 뭔가 사진. 이런 걸로 남아 있는 증거는 없습니까?
◆ 김용장> 그건 우리는 그렇게 하도록 안 되어 있어요. 우리 정보 기관에서는 사무실 일단 나가면 머릿속에 있는 걸 전부 다 지워버리고 나가야 하거든요.
◇ 김현정> 기록 같은 거 남기지 않도록.
◆ 김용장> 네. 심지어 우리 협조를 하는 그분들을 만나러 갈 때도 어떤 필기도구, 볼펜이나 아니면 수첩이나 이런 것을 가지고 나가도록 하지 않아요. 전부 다 머릿속에 기록을 해야 돼요. 머리에다 기록을 해가지고 나중에 사무실에 와서 그걸 다시 영어로 디브리핑이라고 해요, 디브리핑. 다시 기록을 하는 그런 체제라는 거예요.
◇ 김현정> 오로지 머릿속에만 남아 있고 그것을 39년 동안 부인에게도 풀지 않았다고 지금 말씀하셨는데요. 그 정도로 철저하게 이 비밀들이 지켜져왔다는 말씀이세요. 그러니까 수첩이라든지 다른 기록물이 남아 있기는 어렵다는. 알겠습니다. 참 어려운 결심을 하고 이렇게 증언을 하셨는데 선생님, 끝으로 지금 듣고 계신 청취자들께 한 말씀 남기시겠습니까?
◆ 김용장> 감사하죠.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감사드려요. 우리가 옳고 그름. 이런 것을 우리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이런 관심을 좀 가져주시면 하는 마음입니다.
◇ 김현정> 조금 두렵지는 않으세요, 선생님? 이것들을 밝히고 나서의 그 심정이랄까요?
◆ 김용장> 두렵죠.
◇ 김현정> 두려우세요.
◆ 김용장> 두렵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 김현정> 알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용기 내주시고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전 미군 군사 정보관으로 5.18 당시에 광주에 머물렀던 분입니다. 미국으로 40여 건의 정보들을 수집해 보냈던 분. 피지에 거주하면서 이번에 서울을 방문하면서 기자 회견을 열었습니다. 김용장 씨 만나봤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