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캅스', 처음부터 라미란 주인공으로 두고 쓰인 이유

[노컷 인터뷰] '걸캅스' 정다원 감독 ②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걸캅스' 정다원 감독을 만났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이 기사에는 영화 '걸캅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연극과 뮤지컬로 무대에 섰던 라미란이 영화로 자리를 옮겨온 건 2000년대 중반이었다. 그는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에서 주인공 금자(이영애 분)의 복수를 돕는 오수희 역을 맡은 이후, 패션을 위해 시각을 포기한 디자이너('차형사'), 복채 강탈 전문 가짜 보살('봉이 김선달'),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인('특별시민'), 교만한 미술관 관장('상류사회') 등 다채로운 배역을 소화했다.

오랜 시간 맛깔난 조연으로 활약했던 그가 첫 주연을 맡은 상업영화가 바로 '걸캅스'(감독 정다원)다. 우선 제작사의 의지가 확고했다. 정다원 감독도 여성 형사 콤비물이라는 제안을 받고 작업을 시작하면서부터, 라미란을 주인공으로 점찍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밝힌 바 있다.

'걸캅스'는 48시간 후 업로드가 예고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발생하고, 경찰마저 포기한 이 사건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뭉친 전직 형사 미영(라미란 분)과 현직 형사 지혜(이성경 분)의 비공식 수사를 그렸다.

라미란은 1990년대 여자 형사 기동대에서 활약하며 각종 표창을 휩쓸었으나, 결혼-출산-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후 주무관으로 변신해 혹시 권고사직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사는 미영 역을 완벽히 소화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다원 감독에게 '걸캅스' 캐스팅 배경을 물었다. 왜 라미란이었는지, 미란이 맡은 미영이라는 캐릭터를 세우며 가장 중점 두었던 점이 무엇인지.

▶ 라미란을 주인공으로 두고 시나리오를 썼는데 어떤 점이 캐릭터와 잘 부합한다고 생각했나.

제작사 대표님이 전에 '소원'이란 작품을 했다. 그때 미란 선배가 조연으로 나오셨는데 연기를 너무 잘하셔서 형사물로 주연 영화를 해 보고 싶었다고 저한테 말씀해 주셨다. 미란 선배님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면 너무 재밌겠다면서.

미란 선배는 대한민국에서 독보적인 배우 같다. 단역, 조연에서 주연까지 꿰찬 여자 배우는 잘 없는 것 같다. 남자 배우는 몰라도. 심지어 그런 분이 제 영화를 하게 된다? (웃음) 저도 사실 처음이고 미란 선배님도 성경 씨도 처음이니 예상이 안 되지 않나. (웃음) 모든 사람이 예측 안 되게 좀 해 봐야겠다, 어차피 이렇게 판이 깔렸으니 극대화해 보자 싶었다.

50편에 가까운 영화를 찍었던 라미란은 '걸캅스'로 첫 주연을 맡았다. (사진=㈜필름모멘텀 제공)
▶ 라미란이 맡은 미영 캐릭터에서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은.

미란 선배님은 짠한 건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하는 것 같다. (웃음) 전직 형사였지만 육아, 출산 때문에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형사 일은 못하고 생계형으로 민원실에서 주무관 생활을 하는데 그 속에서 정기인사 퇴출 압박도 있다. 민원실장(염혜란 분) 눈으로 봤을 때 셋(라미란-이성경-최수영)이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짠해 보였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실제로도 짠한 게 있는 것 같다. 형사 DNA를 갖고 추격하지만 많이 맞지 않나. 여자 형사가 말이 되냐, 여자가 남자를 제압할 수 있냐고 논란이 이는데 남녀의 신체적 차이는 있다고 본다. 혼자는 못 이기더라도, 저희 영화에서는 최대한 같이 하게 했다. 고군분투해도 힘든 걸 그려서 짠해 보이게 했다. 미영은 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실력도 있는 설정이다. 자꾸 되뇌지 않나. 그립감이 떠오른다, 손맛이 생각난다면서. 자기가 워낙 꿈꿨던 일을 다시 하게 되니까 너무 좋아했던 것 같다.

▶ 지혜 역의 이성경은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시나리오를 다 쓰고 지혜 역할 캐스팅할 때 많은 고려를 했다. 성경 씨가 나오는 드라마 짤 같은 걸 봤다. 노래하는 영상도 있고 많더라. '어, 이 사람은 뭔데 이렇게 매력적이지?' 했다. 자기 할 말 시원시원하게 하는 것 같고 되게 주체적인 사람인 것 같더라. 쇼에도 많이 서고.

강력반에 여자 형사가 실재할까 싶었는데 자료 조사해 보니 많으시더라. 강력반은 아무래도 남자분들이 많은 집단이라, (여자 형사들이) 두세 배 더 노력하시는 것 같더라. 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 꿈을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성경 씨랑 닮아 보였다. 그래서 '연기 안 해도 된다. 그냥 막 해 달라'고 했다. (웃음) 마음에 걸리면 보통 말을 안 하는데, 얘(지혜 역)는 그런 게 없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고 봤다. (웃음)

▶ 미영의 민원실 단짝이자 해커 뺨치는 실력을 지닌 주무관 장미 캐릭터도 재밌었다. 어떻게 캐릭터를 잡았는지.

장미 같은 경우는 미영에게 민원실 단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어떻게 하면 사건에 도움도 주고 재미있게 갈까 싶어서 자꾸만 역할을 부여했다. CCTV 이런 걸 다룰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싶었다. 민원실 사람들이 되게 뭔가 다 사연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웃음) 해커는 기본적으로 컴퓨터를 잘 다룰 뿐만 아니라 수학, 공학적인 능력이 있다고 봐서 카이스트 출신으로 설정했다.

▶ 장미 역의 최수영과 작업해 보니 어땠는지 궁금하다.

되게 열심히 하는 사람 같았다. 저희 때는 수영 씨가 소녀시대였지 않나. 확실히 베테랑이더라. (웃음) 어떻게 보면 저는 이 바닥에 새내기지만 수영 씨는 정말 많은 경험이 있으니. 그렇게 10년 동안 꾸준히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이유가 있구나, 자기 관리도 그렇고 어떤 역할을 했을 때 되게 열심히 하는구나 싶었다. 장미 역할하면서 장미 네일아트를 해서 보여주시더라. 그런 것까지 신경 쓰더라. 키보드 치는 배역이니까 이런 디테일도 많이 신경 쓰는구나. 오히려 제가 놓쳤던 것들까지 같이 만들어가는 재미가 확실히 있었다.

왼쪽부터 배우 라미란, 이성경, 최수영, 위하준 (사진=㈜필름모멘텀 제공)
▶ 민원실장 역의 염혜란은 어떻게 캐스팅하게 된 건가.

제가 '아이 캔 스피크' 영화를 보고 너무 반해가지고 저분은 꼭 해야겠다! 했다. (웃음) 저는 운이 좋은 케이스다. 진짜 너무 반해서 무조건 염혜란 배우님과 해야겠다, 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래서 연기 대가 미란-혜란이 만나는 씬은 항상 볼 때마다 좋았다. 뭔가 모니터가 꽉 찬 느낌이다. 저희 영화에서 초반 안타고니스트는 민원실장이었다. (주인공에게) 압박을 주니까. 저희 영화가 반전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마지막에 틀어봐야겠다 싶었다. 그들(미영-지혜)이 어떤 일을 해서 (민원실에) 안 들어오는지도 알고 있고, 나중엔 공조 수사를 하지 않나.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 극중 악당 우준 역으로 나오는 위하준이나 형사팀 막내로 나오는 조병규, 상두 역의 안창환은 영화를 찍을 당시보다 지금 더 많이 알려진 케이스다. 두 사람 캐스팅 배경도 듣고 싶다.

하준이 같은 경우는 제가 '커터'라는 영화를 봤다. 거기서 조연으로 나오는데 연기를 너무 잘하는 거다. '곤지암'에서도 저 친구 뭐지? 싶었고. '씨네21'에 올해 라이징한 배우 1번으로 딱 꼽히고. 너무 잘할 것 같았다. 사실 되게 순하고 착하고 순진한 친구인데, (연기)하면 눈이 바뀌더라.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친구고, 원래도 꿈이 액션 배우였다고 한다. 운동을 좋아해서 이미 주짓수와 격투기를 했던 친구였다. (연기할 때) 거의 대역 없이 다 소화해서 너무 좋았다. 덕분에 더 현실성 있는 액션을 하게 됐다.

오디션을 봤는데 너무너무 똘망똘망한 친구가 있더라. 저희 영화에서 막내 형사가 되게 순수한 친구다. 신입일 때 직업의식이 항상 강하고 의욕적이지 않나. 병규라는 친구를 봤을 때 되게 당당하게 하고 눈도 의지가 있어 보여서 같이 작업해보면 좋겠더라. 그리고 쏭삭! 안창환 씨 나오는 씬도 좋아해 주시더라. (웃음) 쏭삭으로 잘 돼서 너무 좋더라. 창환 씨도 뭔가 억울하고 짠해 보이는 게 있다. 현장에서도 너무 안 밉고 귀여웠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 '걸캅스'는 화려한 카메오로도 화제가 됐는데 어떤 인연으로 캐스팅한 건가.

(제작사) 대표님 인연도 있고 제 인연도 있고, 배우분들 인연도 있고. 다른 영화에서 다 첫 번째 주인공 하시는 분들이지 않나. (웃음) 워낙 (장면을) 책임지시는 분들이다. 다들 너무 좋은 마음으로 와 주셨다. 아마 저희 영화 취지와 의미를 다 아시고 도와주신 거 같다. 너무 감사드린다.

'걸캅스' 정다원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지혜가 있는 강력반 팀장으로 성동일이 나오는데 계속 자는 설정을 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방관자라고 생각했다. 다른 형사들은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지 않나. 그러면 누군가는 아예 방관하는 사람도 있겠다 싶었다. 지혜가 수갑 집어던지면서까지 얘기할 때, 누군가는 바뀌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방관자에서 바뀌는 사람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는 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코 골고 자는 건 제 나름의 시각화, 청각화랄까? 그러다 나중에 '같이 나가자.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도와주는데, 누군가는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해서 그런 설정을 했다.

▶ 라미란은 '걸캅스'가 시리즈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혹시 시리즈물도 고려 중인가.

사실은 이런 기획이 대한민국 영화판에서 쉽지 않은 기획이었지 않나. 간만에 나온 거였으니 저는 계속했으면 좋겠다. (웃음) 저도 이미 한 배를 탔기 때문에 빠져나올 수 없다. (웃음) 저희가 느끼기에 되게 현실적이고 시의성 있는 범죄가 등장한다면 그때는 또다시 해 보고 싶다. 물론 이번처럼 굉장히 많은 논란과 악플과 많은 것이 예상되긴 하지만 도전해 보고 싶다. 그리고 저희 팀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또 한 번 작업해 보고 싶다. 그러려면 잘 돼야 하지 않나, 흥행적으로도. 이 영화가 성공했으면 좋겠다. (웃음) <끝>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