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서는 경색 국면을 풀기 위한 '실질적 대화 내용'보다는 정치적 셈법이 담긴 '대화 형식'에 집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이 여야 5당 지도부와의 만남을 제안했지만 한국당 황교안 원내대표는 자신과 대통령의 1대 1 단독회담을 역제안했다. 이에 당정청은 "권위주의적 정권 시절 제왕적 총재 시절에나 했던 일"이라며 이를 단칼에 거부했다.
청와대는 이후 5당 대표 회담 후 일대 일 회담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놨다. 이에 황 대표는 다시 1대 1 단독회담이 우선이고 그 다음에 여야 5당이 함께 만나야 한다고 역(逆)역제안을 했다.
황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황 대표가 원칙을 천명했는데, 청와대가 왜 고집을 부리는지 모르겠다"며 "지금 다른 야당들은 여당과 별 차이가 없는 입장 아닌가. 왜 한국당이 '5당'으로 함께 묶여야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게다가 한국당은 과거 홍준표 대표도 단독회담을 했는데, 이번에는 왜 못하냐고 지적한다.
하지만 여당은 당시에도 별 소득 없이 끝났기에 단독 회담을 꺼리고 있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두 사람만 만나면 회동이 끝나고 나서 서로 얘기하는 말도 달라 경색국면을 푸는데 큰 의미가 없다"고 전했다.
여권 입장에서는 이에 더해 내심 대통령과 황 대표를 동등한 구도를 만들어 황 대표의 지위를 격상 시켜줄 수 있어 이를 견제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나 원내대표는 "한국당을 들러리 세우는 5당 협의체, 범여권 협의체"라며 "3당으로 좁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1 야당에 걸맞은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다.
추경 심사 등 국회 정상화가 급한 여당 원내대표로서는 복잡해진 셈법에 고민만 깊어지고 있다. 전날 청와대는 '상설 협의체는 5당 원내대표로 시작했다'며 원칙론을 고수하며 한국당 나 원내대표의 역제안에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한국당 설득을 위해서라도 3당 교섭단체 대표와 대통령의 회담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민주당 원내 핵심관계자는 CBS 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대통령과 3당 교섭단체간 회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며 "하지만 한국당이 먼저 국회로 돌아올 것이란 확실한 신호를 준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입장에서도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을 설득할 수 있는 확실한 담보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런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민주당 이원욱과 한국당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는 14일 오전 첫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대화 내용보다는 형식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여야의 모습에 대한 근본적 비판도 제기된다. 국회를 돌아가게 하려는 '통큰 정치'보다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모양새나 형식에 얽매여 만남조차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강원택 교수는 대화 형식을 두고 벌이는 여야의 정쟁에 대해 "큰 정치가 사라진 모습"이라며 "실마리를 풀 대화보다는 정파적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교착 상태가 계속될 경우 최악의 경우 '패스트트랙 2탄'이 펼쳐질 수도 있다. 바른미래당의 의총 등 변수가 있긴 하지만 의무적으로 열도록 한 6월 국회를 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이 예산 심사를 진행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대화가 계속해서 성사되지 않는다면 여야 4당 밀어붙일 수 있다"며 "생각해볼 수 있는 카드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화 형식에 억매이다가 또다른 파국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