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나선 광주시민들 "5·18 헬기사격, 하늘 무너져도 진실"

"헬기에서 섬광 번쩍, '드르륵' 총 소리도"
39년 전 5월 생생하게 증언

사자 명예 훼손 혐의를 받는 전두환 씨의 형사재판이 열린 13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한 시민들이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하기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조시영 기자)
1980년 5월 헬기사격을 목격한 광주 시민들이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전두환씨의 형사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증인들은 5·18 당시 헬기사격이 분명 존재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 8 단독(장동혁 부장판사)은 13일 오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씨에 대한 재판을 열었다.

이날 재판은 1980년 5월 헬기사격 등 광주의 참상을 목격한 시민 5명에 대한 증인신문으로 진행됐다.

전 씨는 재판장의 허가에 따라 이날 재판에는 출석하지 않았다.

첫 번째로 증언에 나선 김 모 씨는 "1980년 5월 21일 오후 교회 관계로 평소 친분이 있던 아놀드 피터슨 목사가 걱정돼 그의 집을 찾았다"면서 "집에 방문해서 그의 아내에게 물으니 집 2층에서 헬기사진을 찍고 있었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김 씨는 당시 피터슨 목사의 집 1층에서 자신도 헬기 사격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는 39년이 지났지만 비교적 생생하게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김 씨는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드르륵' 소리가 났다"면서 "피터슨 목사가 대화 도중 '어떻게 헬기가 자국민을 향해 사격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당시 해군 대위로 군의관 신분이었으며, 휴일을 맞아 광주 양림동 근교 자신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고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김 씨는 "당시 시민을 향해 무작위로 총을 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였지만 헬기 사격은 분명 존재했고,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이다"고 강조했다.


1980년 당시 승려 신분이었던 이 모 씨는 두번 째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1980년 5월 21일 차량을 타고 이동 중에 헬기사격을 직접 당했다"고 증언했다.

이 씨는 "플래카드를 만들고 차량 등에 걸며 시위에 참여했다"며 "3~4명과 함께 차량을 이용해 광주천변 도로를 지나던 도중 헬기가 차량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그는 "총알을 피하기 위해 운전자가 지그재그로 운전했고, 총알이 떨어진 도로에 불꽃이 튀기도 했다"면서 "한 차례 공격 이후 헬기가 다시 돌아와 가로수 밑으로 피해 있던 차량에 사격을 또 가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당시 차량 탑승자 가운데는 부상자가 없었지만 인도 옆에 헬기 사격으로 부상을 입고 쓰러진 여고생을 병원으로 이송했던 사실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이 씨는 "인도 쪽에 여고생이 어깨에 총상을 입고 쓰러져 있었고 과다출혈로 사망할 것 같아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적십자 병원으로 이송했다"면서 "병원은 환자들로 가득했고 바닥에 피가 흥건했다"고 말했다.

그는 "분명 헬기사격이 맞았고, UH-1H 헬기로 추정하고 있다"면서 "군 경험상 기관총에 의한 사격이라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이에 반해 전 씨 측 변호인은 증인으로 나선 시민들의 진술의 신빙성을 확인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이날 오후 5시 40분 현재 나머지 3명의 증인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 중이다.

이날 증인으로 참석한 시민들은 재판이 열리기 전 광주지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도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사실은 하늘이 무너져도 진실"이라고 헬기사격이 분명 존재했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한편, 전 씨는 회고록을 통해 1980년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 기총소사 사실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비난하고 헬기 사격 사실을 부정해 조 신부와 유가족, 5·18 희생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지난 2018년 5월 불구속 기소됐다.

전 씨는 지난 3월 11일 5·18 민주화운동 39년 만에 피고인 신분으로 광주 법정에 섰지만 단 한 마디의 사과도 없어 광주시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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