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버스노조는 88%의 지지율로 파업을 결의해 사측과의 협상이 무위로 돌아갈 경우 15일 0시 파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서울시 버스노조도 예외가 아니다.
인구 1천만명의 대도시로 대중교통 의존도(버스분담률 26.1%)가 높은 서울시에도 비상이 걸려 노조측과의 협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13일 "내일 2차 지방노동위원회 조정회의를 앞두고 버스 노사간 임단협 협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현재 노조측의 요구사항을 검토중이다"고 말했다.
서울시 버스노조의 요구조건은 크게 3가지. ▲완전한 주 45시간제 시행 ▲61→63세로 정년 연장 ▲자녀 학자금 지급시한 연장 등이다. 서울버스노조는 현행 노동시간을 평균 47.5시간에서 45시간으로 줄이되, 임금은 현재대로 지급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럴 경우 대략 5.9%의 임금인상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서울시 노사협상 관계자는 노조측 요구에 대해 "현행 임금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사람을 추가 고용해 45시간으로 근로시간이 줄어 들도록 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지만 임금을 올리는 건 난색이다. 시프트차량(러시아워 운행 버스) 운행방식의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고 협상분위기를 전했다.
예를 들어 시프트차량의 운행시간은 오전 2.5시간 오후 2.5시간이지만 버스회사에 따라서는 러시아워시간대 외에도 시프트차량을 지속 운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걸 바로 잡아 노조원들의 근로시간이 실질적으로 줄어들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버스의 사용자인 서울시는 시프트 차량만 전담해줄 추가 인력 채용을 고려해야 한다. 준공영제로 버스가 운행되고 있는 서울시는 임금과 수당, 복지비, 자녀교육비 등 기사에게 지급되는 모든 임금항목을 전액 예산으로 지급하고 있어 추가로 예산투입이 불가피해 진다.
시는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한 기사 임금 상승분과 추가 인력 채용에 따른 예산소요액 등을 놓고 어느 정도 선에서 노조의 요구를 수용할 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시는 13일 중 노조요구안에 대한 시의 입장을 정리할 예정이지만 노조측과 이견을 좁히지 못할 경우 2차 조정때까지 '밀당'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까지 서울시의 협상안은 베일에 싸여 있지만 노사협상에 따른 추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시 버스요금을 인상하지 않는다는 것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김의승 서울시 대변인은 13일 정례브리핑에서 "서울시는 버스 요금 인상요인이 없는데 경기도에서 필요하다고 해서 시민의 부담을 늘릴 순 없다. 명분도 없이 어떻게 요금을 올릴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또 "요금을 인상하고 싶다고 어느날 갑자기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올리기 전 원가계산도 해야하고 이해당사자의 입장도 들어보는 절차가 필요한 것"이라고도 말했다.
경기도와 서울시, 정부와 지자체간 버스요금 인상을 둘러싼 신경전이 한창인 가운데 나온 책임있는 서울시 고위간부의 발언이란 점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의중이 실린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서울시가 굳이 시민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도 노조의 요구를 수용할 여력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물론, 최악의 경제상황 속에 시민생활이 갈수록 팍팍해지는 데 버스요금까지 올려 시민에게 추가 부담을 지우지는 않겠다는 정무적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광역버스체계로 묶여 있어 서울시와 함께 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경기도 주장도 반박했다. '환승에 따른 사후정산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것이 서울시의 설명이다. 경기도가 독자적으로 요금을 올려도 문제가 없다는 것.
요금인상 보다 서울시가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은 버스노조의 파업이 현실화하는 것이다. 버스의 시민수송분담률이 26%로 워낙 높아 버스가 일제히 멈춰서면 서울시는 그야말로 교통대란이 발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시로서는 다소간 양보를 하더라도 파업만은 피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시 관계자는 "버스노조와의 협상이 최대한 접점을 찾아가는 중이다"고 협상분위기를 전해 서울시가 '노동시간을 줄이되 임금은 현행 수준을 유지해달라'는 노조측 요구안을 어느 정도 수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서울시는 2004년 버스공영제가 일찌감치 도입돼 버스기사들의 처우가 타 지방자치단체에 비해 양호한 것도 노사간 타협의 여지를 키워주는 부분이라고 판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