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조직에나 각종 소문과 정보에 밝은 '정보통'이 있다. 영화 '걸캅스'(감독 정다원) 속 양장미(최수영 분)는 바로 그런 캐릭터다. 일 외적인 것에만 몰두하는 게 아니다. 수많은 시민을 대면하는 민원실 일에도 능숙하다. 무엇보다 혀를 내두르게 하는 컴퓨터 실력을 갖췄다.
인사 고과에 영향을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얄미운 민원실장(염혜란 분) 뒷담화를 하다가도, 당사자 앞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딴소리하는 솜씨도 일품이다.
언뜻 보면 마냥 밝고 가벼울 것 같지만, 박미영(라미란 분)과 조지혜(이성경 분)가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해결하려고 뛰어들 때 뒤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인물 역시 장미다.
"우리 뭐 된 것 같다"는 자신의 첫 대사를 보고 작품 합류를 결정했다는 최수영을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개봉 첫날이라 아직 관객들 반응을 체감하지 못한다는 그는 '양장미 너무 웃기다'는 얘기에는 반색했다. '걸캅스'의 '웃음 담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감초 연기를 톡톡히 해냈음에도, 코미디 연기는 "너무 어렵다"고 손사래 쳤다.
다음은 일문일답.
▶ 오늘(9일)이 '걸캅스' 개봉 날이다. 기분이 어떤가.
지금 개봉한 지 하루 차라서… (웃음) 지인분들 오셨을 때는 눈물도 찔끔하셨다고 하더라. 미란 언니가 가볍게 보러 왔다가 무겁게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딱 그것처럼 울고 웃다가 영화가 주는 메시지도 느끼고 돌아가신 것 같아서 저는 굉장히 만족했다. (웃음)
▶ 소녀시대 멤버들은 영화를 봤는지 궁금하다. 가족과 지인들의 반응은 어떤가.
아직 못 봤다. 친구들이 시사회 날에 다 해외 나가 있거나 스케줄이 있어서. 워낙 다 바빠서. 유리도 연극하고 있고 태연이도 콘서트 하고 그래서. 단톡방에서 얘기는 많이 한다. 오늘 개봉했으니 제가 개봉했다고 보내야겠다! '얘들아, 봐줘~' 이렇게. (웃음)
엄마는 (장미를 보고)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셨다. (웃음) 엄마가 봤을 때는, 제가 집에서 까부는 스타일이니까 (장미가) 그다지 새로운 모습이 아니었던 것 같다. 제가 '걸캅스' 나오기 전부터 제 연기가 스스로 아쉽다고 워낙 그래서인지, 지인분들은 연기 괜찮다고 많이 얘기해 주셨다. 영화 자체가 너무 웃기고 재미있다고 해서, 제 개인적인 평가와 무관하게 기분이 너무 좋다.
제 연기를 보니까 아쉬운 점이 보였다. 그런데 관객들이랑 다 같이 볼 땐, 관객분들이 이런 것에 웃고 재밌어하는구나 하는 걸 같이 느끼면서 보니까 그제야 저도 영화를 영화로 보면서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웃음)
▶ 거친 입담과 뛰어난 컴퓨터 실력을 갖춘 민원실 주무관 양장미 역을 맡았다. 언론 시사회 때도 장미 캐릭터가 웃긴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지혜 역의 이성경도 장미 너무 웃긴다고 했는데, 정작 본인은 연기 모니터하느라 정색하고 봤다던데.
성경 씨가 장미 너무 귀엽고 재밌다고 하긴 했다. 얘는 이렇게 자꾸… (웃음) 저만 연기 잘했다고 하는데 자기도 잘했다. 저는 성경 씨가 "쪽팔립니다, 경찰" 하는 장면에서 울컥했다. 서로 자기 연기 걱정을 하는 거다. 성경이한테 그랬다. '너는 도대체 왜 걱정을 하는 거야? 첫 대사부터 잘했는데'라고. 다 자기 것만 아쉽고 그런가 보다. 으하하. (웃음)
▶ 본인 연기에 불만족한 건가.
시나리오 첫인상부터 너무 재밌었다. 장미 대사가 너무 재미있었는데, 제가 연기한 장미가 시나리오보다 재미가 없는 거다. 제 생각에는 '어떡해! 감독님이 웃기게 잘 써 주셨는데…' 이런 거다. 또 미란 언니가 현장에서 장미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것 같아 하면서 예를 들어 설명해 주셨는데 그게 너무 재미있는 거다. 저는 그만큼이 잘 안 됐다. 진짜 선수처럼 하려면 난 진짜 한참 멀었구나… (웃음) 매일매일 부족함을 느끼면서 코미디 연기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많이 배우는 계기가 됐다.
▶ '언니, 우리 뭐 된 것 같아'라고 하는 첫 대사가 마음에 들어서 작품에 출연하게 됐다고 했다.
첫 대사부터 되게 셌고, (장미가) 확실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제가 이런 캐릭터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게 되게 컸다. 끝까지 읽어보기 전에 말씀드렸던 것 같고, 영화 하고 싶다는 갈망이 컸다. 이런 영화에서 제안이 왔다는 것 자체가 거절할 이유가 없는 기회였다.
장미가 의외로 되게 현실적인 사람인 것 같다. 결정적일 때 자기 이익을 챙기는 부분도 되게 좋았다. (웃음) 그게 되게 인간답지 않나. (미영이 도움을 요청할 때) '언니, 그럼 나한테 뭐 해 줄 건데?'라고 하는데, 직장 생활하면서 내가 피해를 보면, 나한테 돌아오는 게 있어야 뭘 해 주지 않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계산하는 그 부분도 좋았다. 정의감에 불타오르기만 하는 캐릭터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사람인지라… (웃음) 결정적인 순간에 엉뚱한 대사를 내뱉는 것도 오히려 현실적이라고 봤다.
▶ 자연스러운 생활밀착형 대사와 연기가 돋보였다. 혹시 애드리브는 많이 없었나. 방탄소년단 티켓팅 부분도 원래 시나리오에 있던 건가.
원래 대사에 있었다. (웃음) 이 영화를 찍을 때보다 요새 더 핫해지셨다. 대본의 장미 대사가 워낙 재밌어서, 그 대사들을 쓰인 것보다 더 재밌게 하는 게 숙제였던 것 같다. 그리고 미란 선배님 자체가 되게 여유를 갖고 연기를 하시는 분이어서 호흡 주고받는 게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 애드리브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했다. 언니가 하면 저도 '아, 이런 것도 해 볼걸' 하는 생각이 들지 않나. 상대가 라미란 선배님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걸캅스'는 왕년에 전설로 불렸던 전직 형사 미영과 의욕 넘치는 초짜 형사 지혜의 수사극을 코믹하게 그렸다. 유머 코드가 본인 취향과 잘 맞았나.
맞았다. 시나리오 너무 재밌고 장미도 너무 재밌는데 내가 이걸 더 재밌게 해야 하는데, 하는 부담감이 있었다.
▶ 개인적으로 어떤 부분이 가장 재미있었는지 궁금하다.
(잠시 생각하다가) 아! 안창환 선배님이 몰카 다 떨어뜨릴 때 진짜 웃겼다. 그게 너무 재밌었다. 시나리오에서 봤을 때도 재밌었는데 하정우 선배님 등장하면서 분위기 달라지는 게 있어서 그것도 너무 재밌었고. 음, '비벼!'도 재밌었었다. (웃음) 안재홍 선배님 나온 것도 진짜… '유단자야?' (웃음)
▶ 장미가 워낙 거침없이 말하는 스타일이라 촬영 끝나고도 욕이 입에 붙어서 고생했다고 한 게 기억에 남는다.
'아, 이게 붙었구나' 하고 자각하기까지도 되게 오래 걸렸던 것 같다. 내 행동과 일상이 거칠어진 느낌? (웃음) '걸캅스'와 드라마 촬영 시작을 맞물려서 해서, 드라마 촬영할 때 스태프들 계신데도 상관없이 말투 되게 거칠게 했다. 아, 행동을 조금 조심해야겠다고 그때서야 생각했던 것 같다. 같이 다니는 스타일리스트가 '언니, 장미 같아요' 이래 가지고… (웃음)
공무원이라는 직업 자체는 '38사기동대' 때 세금 징수 공무원을 연기했었다. 음… 서류 떼러 동사무소 가면 (직원분들을) 유난히도 관찰했다. 생각보다 그분들도 특별할 거 없는 일상을 살고 계시더라. 그래서 제가 생각했을 때 장미는 과한 옷보다는 흰 티와 청바지가 어울린다고 봤다. 책상에서의 소품 디테일, 커피, 칫솔, 치약 이런 것들을 더 생각했던 것 같다. 워낙 (장미의) 개성이 강해서 직업적 특성을 생각한다기보다 인물로서 캐릭터 구축하려고 했다. 분위기적으로 사실 말도 안 되지 않나. 민원실에서 욕을 하면서 키보드 친다는 게. (웃음) 민원실장님도 같이 계시는데… 아무튼 캐릭터의 개성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 정다원 감독은 이름에 맞춰 장미 네일아트 스티커를 붙이고 온 세심함에 놀랐다고 말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준비해 와서.
손톱 같은 경우는, 손이 많이 나오는 사람이다 보니까 손으로도 개성을 표현해 볼까 하는 생각에서… (웃음) 장미 모양 시안을 (감독님께) 많이 보냈다. 네일아트는 여자분들이 많이 하시니까 감독님이 잘 모르실 수 있지 않나. 이런 장미 어떻냐, 저런 장미 어떻냐 하다가 결국 그 장미가 채택돼서 하고 갔다. 그런데 손톱 말고, 감독님이 봤을 때 아니다 싶은 건 '수영 씨 아닌 것 같아요' 하신 것도 있었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주고받는 아이디어가 더 많았다. 안경을 가운뎃손가락으로 올리고 하는 것도 (웃음) 하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
▶ 중간에 키보드를 자유자재로 치는 장면에서도 폭소가 터졌다.
하하하하하. 그거를 많이 물어보시더라. 감독님이 키보드 씬을 따로 딸 때, '장미 씨, 진짜 말도 안 되게 해 보자'고 하시더라. '말도 안 되게'라는 워딩 자체가 이런 걸 말씀하시겠거니 하고 들렸다. 그걸 마지막 회차에 찍었다. 감독님이랑 계속하다 보면 감독님이 이런 거 좋아하시는구나, 이런 걸 알게 되지 않나. 부연설명 없이 '장미 씨, 한번 막 해 봐요' 하시면 '이런 거요?' 하고 보여드렸다. 그럼 '네네, 그런 거요' 이러셨다. (웃음) 그런 것만 딱 재밌게 편집해주셨는데 진짜 쓰실 줄 몰랐다, 그 장면.
▶ 라미란-이성경이 멋진 액션 연기를 보여줬는데, 혹시 보면서 나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나.
너무 어렵기도 어렵고 아직 해보지 않은 영역이어서… 해 보고 싶은 건 있지만 두 분이 잘 소화하셨고 감히 셋이 액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못했던 거 같다. (웃음) 제가 직업이 형사가 아니고 앉아서 액션 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혹시 수영 씨도 액션 해 보고 싶은 답답함은 없었는지' 많이들 물으시는데, 저는 키보드와 사랑에 빠지면서 충분히 구강 액션을 펼쳤기 때문에. (웃음)
두 분(라미란-이성경)께 너무 죄송할 따름이다. 진짜 더운데 고생하셨다. (웃음)
▶ 지금까지 경찰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한국영화는 아주 많았지만, 여성 경찰이 이렇게 부각된 경우는 '걸캅스'가 처음인 것 같다. 장미나 민원실장 등 주요 인물이 여성인 것도 보기 드물고. 거기서 오는 신선함과 재미가 있었을 것 같다.
막상 찍을 때는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셋이 이렇게 모여있는 그림을 보니 알겠더라. 여자 셋이 모여있는 그림을 스크린에서 본 적이 잘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민원실에서 셋이 모이는 씬이 재밌다고 해 주시는 것도 여자들끼리 사건을 해결하는 케미가 되게 신선해서 그렇게 봐주시는 것 같다. 앞으로도 다양한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