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열혈사제’ 속 쏭삭 테카라타나푸라서트는 태국인 출신 노동자다. 제 몸에 맞지도 않는 ‘이ㅎ여대 ROTC’가 새겨진 옷을 껴입고 노란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러 다닌다. 쏭삭을 보며 많은 시청자가 이질감을 거의 느끼지 않고 극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쏭삭 역을 맡은 배우 안창환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늘 웃으며 장룡(음문석 분)에게 당하는 쏭삭이 알고 보니 왕실 경호원 출신의 무에타이 고수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시청자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클럽 ‘라이징문’에서 조직폭력배를 무찌르는 쏭삭의 모습에 ‘열혈사제’ 순간 최고 시청률이 23.6%(닐슨코리아 제공, 전국 기준)까지 오를 정도로 시청자에게 통쾌함 반전을 선사했다. 이후 김해일 신부(김남길 분)의 든든한 조력자로 믿음직한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순수함과 무술 고수라는 반전 매력, 그리고 오요한(고규필 분)과 장룡까지 아우르며 남다른 케미를 선보인 쏭삭 역의 배우 안창환. 안창환을 지난 8일 서울 양천구 목동 CBS 사옥에서 만나 ‘쏭삭’과 함께 한 6개월의 시간을 되짚어 봤다.
▶ 6개월여를 함께 한 ‘쏭삭’을 떠나보내는 기분은 어떤가.
일단 되게 시원섭섭하다. 어떤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내는 것 같은 느낌? 그리워질 것도 같고, 다음 작품을 위해서는 빨리 헤어져야 할 것 같은 마음도 있다. 일단 6개월 동안 감독님부터 시작해서 스태프들, 배우들과 함께 잘 마무리 지은 것 같아서 정말 행복하다. 시청자분들께서 생각보다 큰 사랑을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감사한 마음이 크다. 앞으로 제가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지금의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노력하려고 한다.
▶ ‘열혈사제’에서 ‘쏭삭’ 역을 맡아 큰 인기를 얻었다. 사비로 태닝한 보람을 느끼나.(참고: 안창환은 태국 출신이라는 배역을 위해 사비로 꾸준히 태닝을 했다고 한다)
일단 태닝을 처음 할 때는 굉장히 의욕적으로 했다. 외국 사람처럼 보여야 하니까. 중간에 가다보니 아무래도 좀 지치더라. 그런데 뒤돌아보니 이미 작품은 끝나 있었다.(웃음) 시청자분들께서 외국 사람처럼 봐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시청자들, 주변 사람들이 좋아해주시니까 감사한 마음이 크다. 인기라는 것에 대해 덤덤한 성격이라 그런지 최대한 덤덤하게 바라보는 거 같다. 사실 인기라는 게 물 흐르듯 언젠가는 사라질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지 크게 반응을 못하는 거 같기도 하다.
▶ ‘쏭삭’이라는 인물을 준비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을 거 같다.
그렇다. 일단 외적인 부분이 컸다. 쏭삭은 외국 사람이다 보니, 한국 배우가 외국인을 연기해야 한다는 게 큰 걱정이었다. 시청자들이 바라봤을 때 진짜 외국인처럼 봐야 하는데, 그게 어설프면 드라마의 흐름에 방해가 될 수 있어서 걱정했다. 태국인 역할을 준비하면서도 태국에 한 번도 안 가봐서 걱정이 컸는데, 태국인을 만나보고 인터뷰를 하면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인터뷰이의 모습을 많이 차용했다. 그분의 말투, 표정, 치아가 다 보이게 웃는 순수한 모습들 말이다. 대화 속에서 따뜻함을 많이 느꼈다. 정말 ‘쏭삭’이라는 캐릭터를 만다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꼭 나중에 찾아가서 고맙다고, ‘코쿤캅’이라고 말하고 싶다.
▶ 극 중 강렬한 액션을 선보였다. 얼마나 준비한 건가.
오디션 보고 나서 꾸준히 준비했다. 사실 어떤 액션을 선보일 거다, 반전이 나올 거다 등 아무런 예고가 없었다. 그냥 발차기 연습을 해놓으라고 이야기를 들어서 어떤 식의 발차기일지도 모르고 일단 연습했다. 일단 설정이 태국인이니까 학원에 다니면서 무에타이를 배우고, 액션 스쿨에 가서 무술 감독님과 많이 이야기하면서 도움을 받았다. 어떤 액션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물었는데, 기본적인 것만 배워놓으라고 하셔서 두 달 정도 바짝 배웠다. 실제로 액션 연기는 처음이라 긴장을 많이 했는데, 촬영하면서 감독님, 무술 감독님, 배우들이 응원을 많이 해줘서 즐겁게 으쌰으쌰 하면서 찍었다.
▶ 짧은 준비 시간임에도 멋진 액션 연기를 선보였다.
사실 전문가들이 봤을 때는 내 액션 연기가 정말 엉망일 거다. 주변 배우들의 반응이 쏭삭을 살려준 것 같다. 음악도 그렇고. 나는 정말 동작 하나만 했을 뿐인데 배우들이 멋지게 살려주니까 시청자들도 그렇게 봐주신 거 같다. 정말 무척 감사하다. 새록이(서승아 형사 역)와 같이 액션을 촬영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정말 구석에서 계속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진짜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구석에 가서 연습했다.(웃음)
▶ 반대편의 선 역할이었지만 장룡(음문석 분)과는 ‘콤비’ 같았다. 둘의 호흡은 어땠나.
평상시에도 사이가 정말 좋았다. 일단 문석이 형 자체가 열정이 넘치고 아이디어도 많은 사람이다. 우리 둘이 쿵짝이 잘 맞았다. 형도 내가 하는 걸 잘 받아주고 때리는 장면에서는 잘 때려줬다. 잘 맞으려고 노력을 안 했는데도 되게 잘 맞게 되더라.(웃음) 때리기 전에도 어떻게 할 거냐며 내가 편한 대로 하라고 물어봤다. 어떻게 해보자는 아이디어로 내주고, 이렇게 하면 리얼한 반응이 나오고 재밌을 거 같다는 이야기에 내가 많이 속아 넘어가기도 했다.(웃음) 문석이 형이 열정이 넘치다 보니 리허설도 진짜 슛(shoot)이 들어간 것처럼 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많이 반성하게 됐다. 그런데 때리는 게 쉽지 않더라. 장룡을 때리면서 나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때려서 너무 미안했다. 그런데 내심 당해온 게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통쾌함을 느꼈다.(웃음)
▶ 애드리브를 한 적도 있나.
요한(고규필 분)에게 ‘돼지 새끼야’라고 한 것, 요한에게 미안해서 만두를 갖다줄 때 단무지로 하트를 만든 것, 태국 범죄자로 변장했을 때 인이어로 들리는 소리를 듣고 내가 ‘오케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 실수를 어떻게 무마할 수 있을까 했을 때 내가 ‘어깨?’라고 했더니 감독님이 좋다고, 해보라고 하셨다. 이게 대본에 충실하되 대본의 거의 3분의 1 정도는 애드리브였다. 감독님께서 항상 ‘대본대로 리허설하고 생기를 불어넣어 보자, 아이디어가 뭐가 있을까’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아이디어의 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리허설 때도 배우들끼리 이건 어떨까, 저건 어떨까 하면서 많은 아이디어를 냈다. 그런 부분이 이번 작품을 하면서 좋았던 부분 중 하나다. 정말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고, 배우들끼리 더 좋은 아이디어가 뭐가 있을까 하며 선의의 경쟁을 했다. 나도 내가 낸 아이디어가 장면으로 나오다 보니 그걸 보면서 나도 스스로 뿌듯하고, 뿌듯해서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게 됐다. 이런 분위기가 하나로 합쳐져서 ‘열혈사제’라는 작품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쏭삭이라는 인물이 대본에 많이 등장하지 않았는데 감독님 덕분에 추가 장면이 많았다. 큰 역할, 작은 역할이 따로 없지만 감독님이 좋고 재밌게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주셔서 정말 영광이었다.
▶ 나중에 장룡에게 태국어로 ‘간장공장’ 같은 걸 시키는데 무슨 뜻인가.
태국에는 ‘간장공장’ 그런 말은 없고 어려운 문장들을 그런 식으로 한다고 하더라. 그런 리스트를 쫙 뽑았다. 다 들어보고 시청자가 봤을 때 어떤 게 제일 재밌을 까 생각하면서 하나를 콕 찍어냈다. 그게 한국말로 하면 ‘외할머니가 람야이(용안・Longan: 태국 북부지방에 나는 여름철 과일)를 드시고 침을 흘리셨다’라는 뜻이다. 한국 시청자가 봤을 때는 ‘다다다다’로 들렸을 거다. 이것 말고도 중간중간 쏭삭이 하는 태국어도 진짜 태국어다. 사실 전공자나 현지인들이 봤을 때는 정말, 정말 부족함의 극치다. 작품 들어가기 전에 유튜브나 책도 보면서 기본적인 부분을 공부했는데 쉽지 않더라. 독학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태국을 오랫동안 오가며 생활하는 지인에게 부탁해서 이런 상황일 때 나올 수 있는 태국어가 뭐가 있을까 물어보고 녹음해서 보내주시면 계속 연습했다.
▶ 극 중 쏭삭이 매일같이 입은 ‘이화여대 ROTC’ 옷은 의미가 있는 건가.
제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혼자 추측은 해봤다. 여자 옷이고 옷도 딱 달라붙고, 내 옷 같지 않다. 쏭삭은 타지에 와서 돈을 열심히 벌어서 부모님께 보내야 하는 입장이다. 먹을 것도 아끼고 살 것도 아끼면서 살아야 사람이다. 나는 아마 중국집에 오는 여자 손님한테서 받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과 가족을 위해 모든 아껴야 했기에 중고 옷을 입으며 생활했다고 봤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