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취 규모는 정부 전체 보조금의 1/5에 해당하는 2억 6천여만원. 특성화사업단 사무국장 홍 모씨와 사업단으로부터 각종 공사를 따낸 업자 최 모씨가 이번 사건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다.
업자 최 씨는 시장 경관 조명사업과 디자인 사업 등 3개 사업에서 공사비 등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억대의 보조금을 편취했고 홍 씨는 뒷돈을 받고 이를 눈감아준 혐의 등이다.
원래 최 씨는 다른 시장의 특성화 사업단장이었고 홍 씨는 최 씨의 부하직원이었다. 그러다 세화오일시장에서는 사업단 직원과 공사업자로 관계를 이어가며 상호 편의를 봐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은 전통시장 활성화 지원사업을 맡고 있는 중소벤처기업부와 산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하 소진공)이 경찰에 앞서 민원을 받아 확인에 들어간 사안이다.
그러나 확인 뒤 내린 조치는 솜방망이었다. 지난해 1월 세화오일시장 사업단이 고객쉼터를 애초 계획보다 작게 설치하고도 공사비는 그대로 받아간 사실만 확인해 정부 보조금 가운데 1,200여만원을 환수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경찰 수사 결과 정부 보조금 편취액은 2억 6천만원으로 늘었고 이 과정에서 담당 기관인 소진공의 점검부실도 드러났다.
제주경찰청 관계자는 "최씨 등이 전문적인 사기꾼들은 아닌만큼 이들이 제출한 일부 서류는 조작됐다는 사실을 한눈에 봐도 알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장실사만 했어도 이같은 점을 잡아냈을텐데 서류심사만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헛점이 있었다"며 "제주 현지에 근무하는 소진공 직원조차 한차례도 현장을 실사한 적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소진공 관계자는 "서류상 흠결은 없었다"며 "그들이 완벽하게 위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류만 갖고 심사하지는 않는다"며 "보조금 지급할 때마다 현장 점검도 하고 불시 점검도 한다"고 반박했다.
전통시장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올해 예산은 5,370억원. 전통시장 지원규모로는 역대 최대이다. 지난 2017년에는 3,452억원, 지난해에는 3,754억원으로, 최근 3개년을 합치면 1조 2천억원을 넘어선다.
전통시장에 대한 지원이 시작된 지난 2002년부터 지금까지 정부와 각 지자체 예산을 합치면 대략 7조원으로 추정되는 엄청난 규모이다.
하지만 지원규모에 비해 효과는 상대적으로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01년 약 40조원에 이르던 전통시장 매출액은 정부 지원에도 불구하고 2013년 19조 9천억원으로 반토막났다. 2014년부터는 회복세로 돌아서 2017년 22조 6천억원으로 올라섰지만 예전의 40조원 규모를 회복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정부의 전통시장 지원예산이 주로 시설개선 부분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고객들의 재방문을 유도할 수 있는 다양하고 저렴하며 특징적인 상품개발이나 서비스보다는 주차장이나 지붕, 고객쉼터와 같은 편의시설 확충에만 집중하다 보니 상인들의 자구노력이나 구체적 준비 없이 '일단 신청하고 보자'식의 사업이 이어지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 와중에 업자들의 '공사비 빼먹기'도 혈세 낭비를 부추기고 있다.
예를 들면 주차장을 조성한다면서 정부 보조금을 미리 받아 놓았지만 실제로 주차장 부지를 마련하지 못해 보조금을 집행하지 못하는가 하면 보조금을 받아 지은 고객쉼터를 상인회 사무실로 사용하는 식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2014년 전통시장 지원 방식을 하드웨어 지원 중심에서 서비스 향상, 지역문화 융합 등의 소프트웨어 위주로 바꿨다.
하지만 이같은 방침변경에 정부의 지원은 여전히 하드웨어에 집중되고 있다. 올해 전통시장 지원분 5,370억원 가운데 26.5%인 1,424억원이 여전히 주차환경 개선사업에 지원되고 23%인 1,237억원이 노후시설 및 편의시설 확충에 지원된다.
소프트웨어 항목이라고 할 수 있는 '특성화시장' 지원과 '상권활성화' 지원 항목에도 주변환경개선이나 테마공간 조성 등 하드웨어적 요소가 강한 부분이 섞여 있다.
감사원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전통시장 지원사업 감사 결과도 정부의 예산 지원이 여전히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주차환경 개선사업으로 2015~2017년 전통시장 35곳이 지원대상으로 선정됐으나 5군데는 부지 등을 마련하지 못해 사업을 포기했고, 26곳이 사업이 부지마련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당초 계획보다 연장된 것으로 조사됐다. 주차장 사업이 늘어지다 보니 정부 보조금 집행률도 2017년 기준 51.6%에 불과했고, 이 수치마저도 감사원 감사 결과 실제로는 23.2%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정부 지원을 받아 고객지원센터를 세운 전통시장 가운데 8곳을 점검한 결과 이용고객이 적다는 이유로 고객쉼터를 운영하지 않고 대신 그 공간을 전자대리점에 임대하는 등 4곳이 당초 계획과는 다르게 운영하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전통시장 사업단장을 지낸 A씨는 "전통시장 상인들이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많은 사업을 가져오려 한다"며 "사업을 가져오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통시장 지원사업 규모가 크다 보니 상인들이 욕심을 낸다"며 "인근 시장에서 지원사업을 따오면 우리도 해야 한다는 식"이라고 전했다.
이어 "하지만 정부 지원이 끝나거나 사업단이 철수하면 관리가 안돼 (시설들이) 유명무실하게 된다"며 "상인들 스스로가 자구노력을 해서 정부 지원을 받아 지은 시설들을 유지관리해야 하는데 잘 안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시장 사업단이 소진공에 증빙서류를 제출하면 이를 살펴서 계획과 일치하면 정부 보조금이 지급되는 구조"라며 "하지만 (제주처럼 증빙서류를 위조하면) 일일이 쫒아다니며 확인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