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권센터 주최로 지난 2일 진행된 '미디어 속 혐오와 차별 이대로 괜찮을까?' 두 번째 강의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심영섭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이 '미디어 속 혐오-예방과 규제라는 두 개의 날개'를 주제로 이야기했다.
글 싣는 순서 |
① 언론은 왜 혐오와 갈등 기사를 쓰는가 ② 미디어 속 혐오-예방과 규제라는 두 개의 날개 ③ 온라인 모바일 게임 안에서의 언어-혐오표현 |
심 위원은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혐오와 차별이 '가부장 중심 사회'에 그 뿌리가 있다고 진단했다. 가부장 중심 사회에서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중심으로 씨족, 씨족과 연결되는 지연, 지연이 확대된 혈연까지 왜곡된 사회구조의 테두리가 확장된다고 설명했다.
심 위원은 "이 범위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은 선한 사람, 그 외 사람은 밖에 있는 사람인데, 우리는 밖에 있는 사람에 대해 관대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바깥사람'에 대해서는 우리와 다르다는 '선입견'을 지니고 있다. 이는 혐오와 차별의 시작점이다.
편견과 여기서 시작한 차별을 보인 사례 중 하나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지명한 여성 헌법재판관인 이미선 헌법재판관에 대한 논란이다. 물론 이미선 당시 후보자의 남편인 오충진 변호사의 주식 문제가 논란을 빚긴 했다. 그러나 '여성' '지방대' '노동사건 전문성' 등 이 사회가 봤을 때 비주류적인 요소가 이 후보자의 헌법재판관 자격의 사실상 근본적인 걸림돌이 됐다.
"사실 이미선 당시 후보자에 대해 가장 크게 반대했던 첫 번째 이야기는 '지방대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여자인데 지방대 출신이라는 것이죠. 반대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이미선 후보자는 주류가 아닌 대학의 법대를 나온 여자 판사예요. 그런 사람이 헌법재판관을 한다고? 이런 반응이 나온 겁니다. 가부장 중심 사회에서 가장 위에 위치한 사람이 누군가를 선하다고 하면 선한 것이고 악하다고 하면 악한 것이 됩니다. 자신들의 범위 내에 있는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상당히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죠. 이건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습니다."
가부장 중심주의가 만들어 낸 또 다른 혐오와 차별은 세월호 유가족 유민 아빠의 단식 투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엿볼 수 있다. 유민 아빠의 단식 투쟁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호남 출신' '고졸' '이혼' '최저 생활 노동자' 등 우리 사회가 가진 대표적 선입견을 나타내는 단어가 들어 있다.
심 위원은 "상당수가 '저 양반 튀려고 저러는 거 아냐?'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유민 아빠가 요구한 것은 딸아이의 억울한 죽음을 신원해달라는 것밖에 없었다"라며 "수많은 선입견이 있는 사람은 유민 아빠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생각 있는 것이라 의심한다. 역시나 여기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다. 가부장적인 게 강할수록 선입견도 강한 걸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룹 트와이스의 일본인 멤버 사나의 일본 연호 언급을 두고 벌어진 찬반논란, 예멘 난민을 둘러싼 혐오와 비난의 발언과 이를 고스란히 반영한 언론 보도 등도 결국 '가부장 중심주의'에서 출발한 것들이다. 나와 다름에 대한, 나의 테두리 바깥에 위치한 타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인 것이다.
심 위원은 "다르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우리 가부장에 들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미워하고 증오하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가부장 중심주의뿐 아니라 약탈적 자본주의와 반공 이데올로기의 혐오와 차별을 만들어낸 원인이라고 심 위원은 설명했다.
부패한 사회지도층을 대체할 정치세력이 형성되지 못한 상황에서 19세기 개항을 통해 '성공지상주의'를 추구하는 이른바 '약탈적 자본주의'가 도입됐다. '가난의 원인은 게으름이고, 게으름은 곧 죄악'인 세상이 됐다. 피라미드 정점에 있는 '1등'만 기억하는 성공사회에서 약탈은 불가피한 선택이고, 99%의 사회구성원은 '게으름'에 대한 대가로 차별 받는 것을 당연시하고 제도화한 사회가 구축됐다. 학력과 재력이 다른 가치보다 우선되면서 '관용'과 '공존'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심 위원은 "그러다보니 우리에게는 나눠준다는 개념이 별로 없다.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개념도 없다. 기업이 사회적 책무를 다한다는 건 가부장과 똑같다. 내가 내 돈을 준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기업의 돈은 수많은 노동자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돈이고 자본가는 그걸 경영하는 것뿐"이라며 "우리나라는 기업도 개인 것, 가족도 개인 것이라며 다 '소유물'로 본다. 내 소유물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처럼 관용과 공존이 힘든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혐오'란 계속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뿌리 깊은 혐오와 차별을 만들어 낸 또 다른 원인 중 하나는 '반공'이라는 신앙이다. 해방 후 집권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중심의 이승만 정권이 채택한 국가 이데올로기가 바로 '반공'이다.
반공은 한국전쟁을 겪으며 북한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이 국민을 단결시키는 중요한 동력으로 작동했다. 반공 이데올로기를 수용하지 않거나 의심하면 민족반역자가 되거나 반국가사범이 되는 사회가 형성됐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가 '반공 이데올로기'와 '반(反) 반공 이데올로기' 사이의 반목이 깊어졌다. 진영논리 속에서 혐오와 차별도 공고해지고, 이에 동조하지 않으면 의심하고 고립하는 분위기가 강건해졌다.
심 위원은 "말이 반공이지 '이데올로기'다. 실제로는 가부장에서 시작된 구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고, 그걸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정치화시키는 것"이라며 "이것이 차별로 가서 혐오까지 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 위원은 "'미투 운동'(성폭행이나 성희롱이 발생하는 것을 청산하기 위한 운동)이 진정한 결실을 맺고 여성 문제가 해결되려면 이처럼 근본적으로 잘못된 사회 구조가 깨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부장 중심주의와 약탈적 자본주의, 그리고 반공 이데올로기가 만들어 낸 혐오와 차별은 이를 이용한 언론에 의해 만연해지고 강력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언론이 혐오와 차별을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는 것이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지미의 세계(Jimmy's World)라는 기사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980년 9월 28일 1면에 '지미의 세계'라는 기사를 게재한다. "지미는 5살 때부터 헤로인을 맞아 왔고, 지미의 어머니와 외할머니도 헤로인 중독자이며 지미는 헤로인 판매상이 장래의 꿈이다"로 시작하는 기사가 나간 이후 당시 미국 사회는 큰 충격에 빠지고, 워싱턴 당국은 지미를 찾기 위해 경찰까지 동원한다.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지미의 세계'를 취재한 자넷 쿠크는 1981년 4월 13일 '퓰리처상'을 받게 된다.
문제는 이후다. 자넷 쿠크의 학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고, 워싱턴시의 반론과 조사결과에 대한 검증을 위해 워싱턴포스트는 지미에 대한 자체조사에 들어간다. 조사 후 워싱턴포스트는 '지미의 세계'가 조작된 것으로 판단해 퓰리처상을 반납하고 자넷 쿠크를 해고한다.
심 위원은 "젊은 흑인 여성 기자가 쓴 흑인 소년의 삶은, 1980년대 여성과 흑인이 성공하기 쉽지 않은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인종차별을 악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지미의 세계'는 특종부터 잡고 보자는 기자의 출세주의와 판매부수를 올리고 보자는 신문사의 상업주의, 그리고 당시의 인종차별에 대한 사회적 이슈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며 잘못된 보도의 사례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이밖에도 지난 2007년도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범인이 재미 한국인 조승희로 알려지자 한국 언론은 '한국인의 국제적 망신'이라며 하이에나식 보도를 이어갔다. 반면 미국은 해당 사건을 '미국의 문제'로 보고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과 인간소외 등 자국 내 원인을 분석했다. 심 위원은 이를 '민족이라는 굴레'가 원인이 된 혐오 보도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가부장 중심주의에서 시작돼 사회와 시대를 거치며 견고해진 혐오와 차별은 지금도 언론과 각종 미디어를 통해 퍼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혐오와 차별의 뿌리는 단단해진다.
다양한 방식으로 퍼져나가는 혐오와 차별 중 방송과 통신이라는 수단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라는 민간독립기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언론 및 표현의 자유와 규제 사이에서 모호한 법을 바탕으로 심의할 수 있는 대상과 범위, 제재수위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방심위는 물론이고 여타의 정부 규제는 대부분이 사후규제라는 점에서도 한계를 드러낸다.
심 위원은 "자율적으로 안 되는 부분을 제재하기 위해서는 법령이 필요하다. 현재 법에 근거가 없는 게 많아 심의하면서도 망언이나 혐오와 차별적 콘텐츠를 제재하기 쉽지가 않다"라며 "차별금지법(개인 인권 보호를 위해 합리적이지 않은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의 제정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또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결국 우리 사회의 혐오와 차별을 뿌리 뽑기 위해 필요한 건 그 시작점에 있는 '가부장 중심주의'를 타파하는 것이다. 그러나 '변혁'이 가능하지 않는 한 오랜 시간 누적되며 굳어진 문화를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규제라는 수단과 함께 병행되어야 할 것이 예방적 차원의 '교육'이다.
심 위원은 "혐오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그러려면 결국 제대로 된 미디어 활용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교육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라며 "끊임없이 가르치고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심 위원은 "우리 사회가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제어해 나갈지, 그 부분이 숙제일 거 같다. 5·18 망언을 한 지만원 씨를 법적으로 제재한다고 혐오와 차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 이후 '제2의 지만원'이 나올 뿐"이라며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편견과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바꾸는 게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심 위원은 "무엇보다 혐오를 줄여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결국 나와 다른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라며 "사회 구조는 누가 바꿔주는 게 아닌 거 같다. 바꾸기 위해서 실천이 되는 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