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명 "한일관계 악화…한반도 안보 위협받는다"

[작가 김진명이 말하는 지금 대한민국 ③]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급속 냉각
"실리적 외교·안보 한미일 삼각동맹 빨간불"
"일본인에 판결 정신 이해시키는 과정 절실"
"북핵 문제 해결 뒤 정세 오히려 더 큰 위험"
"안보 위기 돌파 첫걸음 결국 한일관계 회복"

그간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의미심장한 조언을 건네 온 작가 김진명이 지금 대한민국을 심층진단했다. 그는 "국가는 늘 위기를 겪지만, 그 위기는 언제나 극복되기 마련"이라는 당위를 강조했다. 최근 김진명과 나눈 인터뷰를 3회에 걸쳐 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한국당이 외친 '독재타도'…세상 참 우습다"
② "국민이 국가와 싸울 때 '심판' 왜 흔드는가"
③ "한일관계 악화…한반도 안보 위협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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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악화일로를 걷는 한일 관계를 두고 작가 김진명은 "실리를 추구해야 하는 외교·안보에 득 될 것이 없다"며 "우리가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고 이 문제를 타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일 관계는 모두에게 참 어려운 과제다. 특히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한일 관계가 급속히 악화됐다. 과거 일본인들 가운데 '한국에 호감을 느낀다'는 비율이 높을 때는 70%까지 올라갔는데, 지금 일본인들 여론조사를 보면 80% 이상이 '한국인들 너무 싫다'고 한다.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김진명은 한일 관계가 개선돼야 하는 근거로 먼저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전략 동향을 지목했다.

"현재 미국 내에서는 해외 파병을 줄이라는, 아예 철수시키라는 경향이 굉장히 강하다. 파병 갔던 젊은이들의 삶이 그렇지 않은 젊은이들에 비해 수명도 훨씬 짧고, 많은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삶의 질도 굉장히 나쁘다는 정서가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 주변에 있는 존 미어샤이머(시카고대 교수), 헨리 키신저(전 국무장관) 같은 사람들은 계속 '한국에서 군대를 빼라'고 한다."

그는 "사실 트럼프는 주한미군 철수를 드러내고 있지 않지만 상당히 많은 관련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러다 보면 그쪽으로 생각이 옮겨갈 수도 있다"며 "이때 주한미군을 빼기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일본"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이 꽉 뭉쳐 있으면 미국은 한반도에서 군대를 빼는 결정을 할 수 없다. 한국과 일본 사이가 굉장히 나쁘면 미국 입장에서는 군대를 철수해 일본까지만 지킨다는 결정을 할 수 있다. 미국으로서는 굉장히 편한 선택이다. 결국 우리가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한미일 삼각동맹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김진명은 "실리적 안보 차원에서 한국이 지금까지 최고의 번영과 안전을 구가한 데는 한미일 삼각동맹 축이 굉장히 중요했다"며 "그것이 이제는 불필요한가를 따져보면, 오히려 지금 더 필요한 때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제까지 우리의 모든 군사력이나 안보 상대는 북한이었다. 실제로 근 몇십 년간 한반도는 가장 안전했다. 전쟁은 아주 짧은 시간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행위다. 북한은 그러한 전쟁을 수행할 돈이 부족했다. 소규모 도발을 제외하고는 전쟁 생각을 못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당장 전쟁을 한다고 봤을 때도 한국은 물론 미국과 일본을 같이 상대해야 했기에 어려웠다. 중국과 러시아가 뒤를 받쳐주지 않고 돈도 없는 북한의 현실에서 한반도 안보는 염려 없이 강했던 것이다."

◇ "북핵만 없어지면 안전·평화 보장되리란 생각 천진난만"

작가 김진명(자료사진/노컷뉴스)
김진명은 "무엇보다 북핵 문제 해결 이후 오히려 한반도 안보가 더 나빠질 수 있는 측면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북한은 핵 문제가 처리되면 개혁개방으로 나갈 것이다. 결국 북한에 자본이 들어가야 하는데, 미국은 두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다. 트럼프는 북한에게 '핵만 포기하면 엄청난 번영을 이루도록 해주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같은 입으로 '핵은 우리가 해결하고 돈 문제는 한국 중국 일본이 해결하라'고도 말한다."

그는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북핵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우리 기업들이 '얼씨구나' 하면서 북으로 올라간다고 생각하기는 굉장히 어렵다는 점"이라며 "구경꾼 입장에서는 기업들이 올라가 줬으면 좋겠지만, 막상 경영자 입장에서는 핵 문제가 없어지더라도 어느날 갑자기 북한이 공장 문을 닫아버리면 끝장나기 때문에 규모 있는 기업들이 쉽게 올라가리라 보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다만 중국이 어마어마한 돈을 북한에 투입할 것은 확실히 눈에 보인다. 중국은 남한과 북한이 아주 가까워지거나 통일 되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한다. 한국의 경제력·군사력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경계하기 때문이다. '순치' 관계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은 스스로를 이빨로, 북한을 입술로 보고 있다. 북한이 한국의 민주주의로부터 중국을 보호해 준다는 의미다. 그래서 중국은 북한을 절대로 놓지 않을 것이다."

결국 "북한이 개혁개방 노선을 따르면 중국은 어마어마한 자본을 투입해 북한에 대한 주도권을 지키려 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김진명은 "한반도 안보가 가장 위험한 시기는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뒤를 받칠 때인데, 현 정세를 보면 점점 그러한 그림이 그려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무조건 북핵만 없어지면 남북이 가까워지고 안전이 보장되고 평화로워진다는 생각은 너무 천진난만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오히려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핵 문제를 아주 잘 처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한미일 동맹 축이 깨지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는,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국가 형태가 됐을 때는 그 축에서 벗어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처럼 한일 관계가 악화돼서는 주한미군 철수 현실화 등으로 한미일 축이 흔들릴 위험성을 인식해야 한다."

김진명은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일본이 독도를 점령할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 때문에 일본이 독도 문제에 대해 도발하지 못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점에서도 한일 관계를 신중하게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 "졸지에 약속 어긴 나쁜 한국인들로…'파국의 길' 막아야"

대법원이 1940년대 일제에 강제징용 피해를 당한 4명에 대해 일본 기업이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린 지난해 10월 30일 피해자 이춘식(94)씨가 서울 대법원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한국에 대한 일본 국민들 정서가 나빠진 데는, 그들이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진명의 진단이다.

"일본인들은 배상 문제를 아주 단순하게 생각한다. '지난 1965년 한일협정 당시 모든 한국 국민들 배상 청구를 한국 정부가 책임지기로 하고 큰 돈을 줬는데, 그 약속을 어기고 이제 와서 다시 청구시킨다'는 것이다. 졸지에 한국인들은 약속을 어긴 나쁜 사람들이 된 셈이다. 이 와중에 일부 일본인들 사이에서 '좋다, 한국인들이 개별적으로 배상을 청구하면 과거 우리가 한국 정부에 줬던 돈을 되돌려 달라는 재판을 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진명은 "일본 내에서 그러한 재판이 벌어질 경우 일본 법관들이 '한국 정부는 돈을 돌려줄 의무가 있다'고 판결할 것 아닌가. 그럴 경우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며 "우리 대법원 판결이 왜 그렇게 나왔는지, 그 정신을 일본 국민들에게 이해시키는 과정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그것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 대법원 판결 정신의 핵심은 '국가가 개인의 모든 권리를 뭉뚱그린 채 증발시켜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 과거에는 그 시대 법이 있는 것이고, 현대 인권과 개인 의식의 자유가 향상된 시대에는 그에 걸맞은 법이 있는 것이다. 이번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일본인들이 이해 못하더라도 법의 정의를 따져보면 맞는 것이다. 이를 제대로 이해시키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한 이유다."

그는 "현재 일본 내에서도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이러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 정신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라며 "우리 역시 '나쁜 일본놈들'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그들을 설득하려 애쓰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러한 민간의 활력과 동력을 정부에서 살려줘야 하는데, 대법원 판결 정신을 알리기 위한 홍보 활동 등을 정부가 전혀 못하고 있다. 큰 문제다. 개인에게 적용되는 덕목이 국가에도 적용되느냐를 보면 그렇지 않다. 외교와 안보는 실리 추구에 방점을 두는 이유 역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김진명은 "전범기업으로 꼽히는 일본 기업들도 배상 문제에 대해 '나 몰라라' 하는 분위기는 아니"라며 "이렇듯 더 나은 방향으로 해결해 보자는 일본 내 움직임도 있으니 외교부가 지금처럼 뒷짐만 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전면에 나서서 효과적인 통로를 찾아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를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점, 한일 관계가 극도로 나빠지고 있다는 점, 중국이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 과거 6·25 때처럼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뒤를 받치기 시작했다는 점 등 정세를 종합해 보면 한반도 안보는 상당한 위기에 직면했다. 그 해결책 마련을 위한 첫걸음은 결국 한일 관계 회복이다. 대승적 차원에서 보다 열린 눈으로 한일 관계를 바라보려는 노력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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