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질병관리센터(CDC)가 애틀랜타에서 열린 전염병정보서비스 컨퍼런스(EIS Conference)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9월 5일부터 11월30일까지 약 3개월 동안 오스틴 지역에서 발생한 전동킥보드 관련 부상자는 271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 美 오스틴시, 6개월 간 전동킥보드 부상자만 271명에 달해
CDC가 텍사스 주 오스틴시 공중보건 및 교통 당국과 공동으로 조사한 이번 조사기간 동안 전동킥보드 총 이용시간은 18만2333시간, 주행거리 89만1121마일(약 14만3426㎞), 이용횟수 93만6110건으로 전동킥보드 이용 10만건 당 2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사고시 부상자의 거의 절반이 머리에 부상을 입었고, 15%는 외상성 뇌손상을 경험했다. 헬멧을 착용하면 심각한 머리 부상을 피할 수 있지만 부상자 190명 중 단 1명만 헬멧을 착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자전거 탑승시 헬멧 착용이 부상으로부터 머리와 뇌의 손상 위험을 줄인다는 연구결과들은 이미 많이 있다. 헬멧 착용만이 전동킥보드 사고시 머리와 뇌 부상 위험을 줄일 수 있다"며 예방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도크리스(dockless·주차시설이 따로 없는) 전동킥보드와 자전거는 버드(Bird), 라임(Lime)으로 대표되는 미국 공유형 퍼스널 모빌리티 스타트업과 벤처 투자가들의 막대한 투자로 젊은층이 몰려 있는 대도심과 대학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 미국내 전동킥보드는 빠르고 저렴한 이동수단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국립교통공무원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City Transportation Officials)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미국내 수십 여개 주요 도시에서 전동킥보드를 이용한 여행은 3850만 회에 달했다.
정해진 장소 없이 자신의 목적지 주변에 주차하는 전동킥보드, 자전거 등 도크리스 교통수단이 무분별하게 확산되면서 안전 문제가 빈번해지고 있지만 관련법규 미비때문에 이용자와 주민, 업체간 갈등도 증폭되고 있다. 특히 도심 곳곳에 방치되거나 사고로 인한 부상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CDC와 오스틴 보건당국은 환경 요인과 임상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전동킥보드를 타거나 타다가 다친 사람들을 대면조사 했다.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부상을 입은 전동킥보드 이용자의 거의 절반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으며, 골절(84%), 신경·힘줄·인대 부상(45%), 심각한 출혈(5%), 장기 손상(1%)으로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조사 기간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전국적으로 사망자 발생 사례도 수 건이 보고된 바 있다.
◇ 운전 미숙, 헬멧 등 안전장구 미비 심각한 부상으로 이어져
부상자들은 주로 도로에서 절반 이상(55%)이 사고를 당했으며, 보행자가 다니는 인도에서는 33%, 자동차 등 원동기 장치로 인한 부상은 16%를 차지했지만, 실제 자동차와 충돌한 경우는 10%에 불과했다. 부상자의 10%는 도로변에 부딛혔고, 7%는 전봇대나 맨홀 뚜껑과 같은 도로 시설과 충돌했다.
응답자의 3분의 1은 부상당하기 12시간 전에 음주를 했다고 말했고, 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37%)이라며 부상 원인을 전동킥보드 탓으로 돌리거나 브레이크나 바퀴 오작동을 의심(19%)하기도 했다.
전동킥보드 사고는 통상 시야의 제약을 받는 야간에 주로 발생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보고서는 저녁 6시부터 이튿날 오전 6시까지 발생한 사고율은 39%에 그쳤으며, 출퇴근 시간 등 오전과 저녁 러시아워 시간(20%), 일과시간(22%) 등 주간에도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전동킥보드 운행 미숙이 사고로 이어진다는 통계도 있다. 응답자의 3분의 1이 전동킥보드를 처음 타다가 부상을 당했다고 답했다. 대부분의 공유형 전동킥보드 운영사들은 사용 전 안전운행 교육을 위한 정보(tutorial)를 제공하고 있지만 서서 타는 전동킥보드의 속도가 20마일(약 32㎞) 안팎에 달해 미숙한 운전이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70%는 전동킥보드 탑승 교육을 받았다고 답했고, 전동킥보드 회사의 모바일 앱을 통해 교육을 받았다고 답한 응답자도 60%에 달했지만 사고를 막지는 못했다.
IT매체 더버지는 이번 연구가 연방 당국과 주 당국이 공동으로 조사한 최초의 전동킥보드 관련 사고 연구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스테파니 헤이든 오스틴 공중보건국장은 "이번 연구 결과는 전동킥보드를 타는데 수반되는 위험성을 보여주며, 개인이 어떤 안전 조치를 해야 부상을 방지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고려하는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도로교통법상 전동킥보드는 배기량 50cc 미만, 시속 25㎞ 미만으로 원동기 면허 또는 자동차 운전면허를 보유해야 하는 등 비교적 요건이 까다롭지만 사고 발생은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직접 구입이나 공유 서비스 이용 등 운행에 별다른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사고는 2016년 84건, 2017년 197건, 지난해 233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전동킥보드 관련 교통사고는 2017년부터 공식 집계 됐다.
도로교통안전공단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전동킥보드 등이 가해자인 교통사고는 225건으로 2017년 117건보다 92%나 증가했다. 사망자는 2017년과 2018년 각각 4명씩이었고, 작년에는 보행자 사망자 1명이 처음 포함됐다.
사고 유형별로는 보행자와 부딪힌 사고가 2017년 33건에서 작년 61건으로 늘었다. 자동차와 충돌 사고도 58건에서 141건으로 급증했다.
현행법상 전동킥보드는 시속 25㎞ 미만의 오토바이와 같은 원동기로 보기 때문에 인도가 아닌 차도만 이용해야 한다. 최근 자전거도로 이용이 허용됐지만 일부 50~100㎞에 달하는 기종도 있어 충돌시 사고 위험이 매우 높다. 정부는 향후 전기자전거 기준에 맞춰 원동기나 자동차운전 면허를 면제할 방침이기도 하다.
북미·유럽 등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공유형 전동킥보드는 카풀 등 차량 공유 서비스가 택시업계의 반발로 된서리를 맞으면서 전동킥보드 공유 플랫폼에 진출하는 국내 업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사고 발생시 피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보장 보험이 까다롭고 특히 헬멧과 같은 안전장구도 이용자의 불편을 이유로 의무화 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이용자들이 전용 주차구역이 없는 전동킥보드를 도심 아무데나 방치하는 바람에 흉물이 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한 전동킥보드 공유업체 관계자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이어서 시장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고객 안전 문제나 제품 관리 문제는 어떤 사업 분야나 숙제다. 업계도 노력해야 하지만 규제보다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현재 적절한 안전기준이 없어 제각각인 전동킥보드의 도로주행 요건을 마련하고 탄소 절감에 유리한 퍼스널 모빌리티 확대를 위한 제도를 마련할 계획이지만 이용자의 안전 의식과 교육, 사업자와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