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딸인 조 전 부사장은 혐의사실을 모두 인정한 반면 어머니 이 전 이사장은 '부탁한 죄'가 전부라고 선을 그었다.
3일 두 사람의 위계공무집행방해와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한 검찰 공소장을 보면 이들이 불법으로 입국시킨 필리핀인은 총 9명이다. 이 중 8명을 가사도우미로 고용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3명은 서울 평창동의 본가(이명희)와 이촌동에 있던 조 전 부사장 집을 오가며 일했다.
이들이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불법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2004년부터다. 2일 공판에 나온 이 전 이사장 측 변호인은 "시어머니가 먼저 고용했는데, '필리핀 여성 쓰는 게 좋더라, 너도 한번 써봐라'는 말에 그 후 여러 사정을 거쳐 고용했다"며 "그 도우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입국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전 이사장과 달리 조 전 부사장이 혐의를 순순히 시인한 것은 대한항공에 실제로 재직했던 임원으로서 외국인 불법 입국과 채용 과정을 몰랐다고 부정하기 어려운 탓으로 풀이된다.
조 전 부사장이 본격적으로 필리핀인을 입국시키기 시작한 것은 2014년 6월 들어서다. 조 전 부사장이 아버지(조양호)의 비서실 직원에게 가사도우미를 선발해 달라 요청하면 비서실이 이를 인사전략실에 전달하고, 인사전략실 간부들은 필리핀 마닐라 지점장과 연락해 현지의 인력송출업체에서 후보자들을 받았다.
면접도 인사전략실 소속 임직원이나 마닐라 지점장이 직접 봤다. 결과지는 인사전략실에서 작성해서 비서실을 통해 조 전 부사장에게 보고됐다. 조 전 부사장이 '선택'한 인물은 다시 순차적으로 필리핀까지 전달되고 까다로운 신체검사(장티푸스·간염·결핵 등)를 거치고 나서야 한진일가에서 일할 수 있었다.
조 전 부사장이 이러한 식으로 불법 입국시켜 고용한 가사도우미는 5명이다. 그는 혐의를 모두 인정하면서, '워킹맘'으로서 다급하고 어려운 사정 때문이었다며 양형에서 선처를 부탁했다. 조 전 부사장은 2015년 5월 서울고법에서 업무방해 등으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2017년 12월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돼 현재 집행유예 기간 중이기도 하다.
검찰은 이 전 이사장이 조 전 부사장과 공모해 앞선 5명을 입국시킨 것은 물론이고 3명을 대한항공 비서실에 따로 요청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전 이사장 측은 "비서실 직원에게 부탁한 것은 사실이나 국내에 부정한 방법으로 입국했다는 사실은 언론 보도를 통해 알게됐다"며 "(위법한 입국은) 지시한 적 없고 알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세간에서는 재벌가 사모님이니 모든 것을 총괄 지시했을 것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재벌가 사모님이어서 그냥 부탁만 하면 밑에서 알아서 다 초청 해주고 그렇게 진행됐다"고 덧붙였다.
서초동의 한 형사전문 변호사는 "최근 비슷한 흐름으로 재판을 받는 고위 공직자들도 자신은 '위법성 있는 행위'까지 구체적으로 지시하거나 보고받지 않았다는 취지로 항변하고 있는데, 재판부가 비교적 엄격하게 판단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특히 이 전 이사장의 경우 사적인 업무를 회사에 처리토록 지시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회사가 공적 서류에 기재한 것과는 다른 목적으로 외국인을 입국을 시키는' 위법한 행위를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주장이 인정될 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던 조 전 부사장이 자신의 집에서 먼저 일하던 가사도우미들을 본가(평창동)에서 약 1년6개월간 일하게 하는 과정에서도, 이 전 이사장이 관련 내용을 인지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다만 현행법상 내국인에 준하는 외국인(재외동포 등)만 할 수 있는 가사도우미 업무를 일반연수생 체류자격으로 들어온 필리핀인에게 시킨 것에 대해서는 "몰랐을 수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조 전 부사장도 관련 혐의를 인정하면서 "법규를 잘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시민단체 소속 한 변호사는 "'법을 몰라서 그랬다'는 변명은 법과 거리가 먼 일반인에게는 해당할지 몰라도 수십 명의 자문 변호사를 둔 재벌 일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듯 해 씁쓸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