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화재에 기술탈취 소송까지"…혼돈의 韓 배터리

ESS 연쇄화재… '원인 규명' 못하는 정부
가동, 수주 중단에 1분기 업계 실적 '초토화'
이와중에 LG와 SK는 '기술 탈취' 소송전
주력사업이자 미래 먹거리 '배터리'… 총력전

지난달 21일 울산시 남구 대성산업가스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화재가 발생해 건물 밖으로 화염이 치솟는 가운데 소방대원들이 진화 작업을 벌이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무대를 호령하던 한국 배터리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부터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연쇄 화재가 발생하며 가동이 중단됐지만 정부는 아직도 화재원인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사이 업계의 실적은 반 토막 났다.

ESS 불똥이 배터리 업계 전반으로 튄 상황에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기술 유출'을 두고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LG화학이 자신들의 배터리 기술을 SK이노베이션이 탈취했다며 소송을 걸었고 SK이노베이션도 "터무니없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 'ESS 불똥'… 정부 '우왕좌왕'에 기업 '아우성'

ESS(Energy Storage System)는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내보내는 장치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이 빛이나 바람이 없어 전기를 생산할 수 없는 시간에도 ESS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 '신재생에너지 정책'의 핵심 설비로 꼽힌다.

이러한 ESS에 지난해 5월부터 연쇄 화재가 발생했다. 경북 경산에서 시작된 ESS 화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지난해 5월 경산 ESS화재를 시작으로 올해 1월까지 총 20건의 ESS 화재가 발생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1월 전국 1,300여 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안전점검에 나섰다. 우선 사람들이 몰리는 다중이용시설에 설치된 ESS에 대해선 가동중단을 요구했다.


이어 지난 1월에는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해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를 꾸렸고 민간사업장에 대해서도 ESS 가동 중단을 권고했다.

하지만 정부와 조사단은 아직도 ESS 화재 원인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애초 3월까지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지만 미뤄졌고 또다시 6월로 연기된 상황이다.

결국 불똥이 튄 곳은 배터리 업계다. 전국 ESS 시설 1490개 중 35%인 522개가 가동을 멈춘 상태다. ESS 가동 중단에 올해 ESS 신규설치도 0건인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 무대에서 ESS 기술력을 인정받아온 삼성SDI와 LG화학의 1분기 영업이익은 반토막이 났다.

삼성SDI의 2019년 1분기 영업이익은 1,188억 원으로 조사됐다. 직전 분기인 2018년 4분기와 비교해 영업이익이 52.2%나 감소했다. 삼성SDI는 영업이익이 크게 줄어든 것에 대해 "국내 ESS 수요가 급감한 탓이 컸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ESS 생산업체인 LG화학의 2019년 1분기 영업이익은 2,754억 원으로 집계됐다. ESS 화재의 영향으로 전지 부문에서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 영업이익 6,508억 원과 비교하면 영업이익도 57.7%나 감소했다.

결국 올해 상반기까지도 국내 ESS 신규발주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배터리 업계의 위기는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 LG-SK 소송전… "기술유출" VS "터무니 없는 허구"

ESS 불똥이 배터리 업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는 가운데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LG화학은 앞서 지난달 29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와 미국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Trade Secrets) 침해'로 제소했다.

SK이노베이션이 최근 2년간 LG화학 소속 핵심인력 76명을 채용했고 이를 바탕으로 배터리 핵심 기술을 탈취했다는 것이 LG화학의 주장이다.

LG화학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이 전지 사업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힌 2017년을 기점으로 2차전지 핵심기술이 다량 유출된 구체적 자료가 발견됐다"며 "SK이노베이션의 입사지원 서류에는 '2차전지 양산 기술', '핵심 공정기술' 등과 관련된 LG화학의 주요 영업비밀과 수행 프로젝트, 동료 이름 등이 매우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도 같은 날 곧장 반박에 나섰다. SK이노베이션은 "기업의 정당한 영업 활동에 문제를 제기해 유감스럽다"며 "또 국내 문제를 미국에서 제기해 국익 훼손이 우려된다"고 맞섰다.

최근에는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는 모양새다. 서로를 향해 '국익훼손', '비신사적'이란 비난이 오가고 있다.

LG화학은 이달 2일에도 SK이노베이션을 향해 "(SK는) 국익훼손이 우려된다고 했지만 핵심기술과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이 진정으로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SK이노베이션은 발끈했다. SK는 LG화학의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고 또 우수한 SK기업 문화에 LG화학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SK이노베이션은 3일 "비신사적이고 근거도 없이 SK이노베이션을 깎아내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으면 법적 조치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 엄중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개발기술 및 생산방식이 다르고 이미 핵심 기술력 자체가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와 있어 경쟁사의 기술이나 영업비밀이 필요 없다"고 밝혔다. 즉 '우리에겐 LG화학의 기술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더 나아가 LG화학의 처우 문제를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SK이노베이션은 "모든 경력직원의 이직 사유는 SK의 우수한 기업문화와 회사와 본인의 미래 성장 가능성"이라고 반박했다.

배터리 사업이 두 회사의 주력 사업이자 미래 먹거리인 만큼 소송전도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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