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금감원장의 '소신', 10년 지난 키코사태 해결할까

금감원 5월말 분조위 예정…"키코상품 판매 '적합성 원칙' 지켰나 볼 것"
분조위 결정 따라 KEB하나 ·신한 등 6개 은행 최대 수조원까지 물 수 있어
키코사태 향방, 윤 원장 향후 행보에 힘 실릴 지 여부도 결정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생략) 그럼에도 단도직입적으로 키코사태에 대한 혁신위의 입장을 묻는다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주체가 은행이기 때문이다.

약국이 환자에게 검증되지 않은 시약을 권한 것과 같다고 본다. 약사도 그 시약이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모르면서 손님이 어떻게 되든말든 판매한 것이다."

2017년 12월 금융행정혁신위원휘 위원장이었던 윤석헌 현재 금융감독원장의 키코(KIKO)사태에 대한 답변이다. 이같은 소신은 금감원의 수장이 되어서도 지켜졌다. 다만 윤 원장은 키코가 '사기 상품'이라는 주장에는 선을 긋고, 은행의 '불완전판매'에 초점을 맞춰 피해 기업의 보상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 금감원, 키코상품 판매 '적합성 원칙' 지켰나 볼 것…5월말 분조위 예정

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중소기업 4개 회사의 민원을 접수해 6개월 간 기업체와 은행 조사를 마치고 금감원 산하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 일정을 잡고 있다. 이르면 5월 말 늦으면 6월 내에는 분조위에 키코 안건을 상정해 심의할 예정이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움직이면 기업이 미리 정해둔 환율로 외화를 팔 수 있게 한 파생상품이다. 금융위기 이전 저환율이 지속되던 시기에 은행들은 "앞으로도 환율이 계속 내려갈 것"이라며 수출 기업들에 키코 상품 가입을 권유했다.

하지만 키코는 환율이 약정해 놓은 하한선 이하로 떨어지면 계약이 무효가 되지만, 상한선 이상으로 오르면 기업이 약정 금액의 2배로 은행에 팔아야 하는 구조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환율이 폭등하자, 중소 수출기업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금감원 은행감독국이 10년 전 썼던 보고서에 따르면 "키코의 특징은 구간 내에서는 헤지(방어)와 수익 창출이 가능하지만 구간 밖에서는 헤지가 전혀 없는 상태와 동일하다"면서 "환율의 변동성이 없거나 미미한 기조에서는 수출기업에 유리한 상품이나 그 반대의 경우 치명적인 상품"이다.

그러나 당시 금감원에서도 "키코 옵션은 파생상품 교과서에도 나오는 전형적인 상품으로, 거래를 유도하기 위한 신상품은 아니"라면서 사기상품은 아니라고 봤다. 대법원도 키코에 대해 2013년 9월 해당 소송 건을 다루며 "불공정 거래 행위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분쟁조정국도 이같은 금감원 내부의 기류와 대법원 판결 등을 종합해 키코 계약의 불공정성이 아닌 '불완전 판매'쪽에 초점을 맞췄다. 분쟁 조정 대상도 당시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회사로만 국한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은행이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는 기업 사정에 비춰 적절한 상품을 판매 해야하는 금융상품의 '적합성 원칙'이 있고, 상품의 손실 위험을 고객에게 상세히 알려야 하는 '설명 의무'도 있다"면서 "이를 은행들이 지켰는지가 중요 쟁점"이라고 설명했다.

◇ 분조위 결정에 따라 KEB하나 ·신한 등 6개 은행 최대 수조원까지 물 수 있어

금감원은 분조위가 안건 심의 후 적정 배상 규모를 포함한 중재안을 마련하면, 기업과 은행이 합의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대법원이 키코사태를 불완전 판매로 보고 일부 피해기업에 대해 은행이 10~50% 보상하라고 판결한 범위에서 권고할 가능성이 높다.

은행들이 분조위의 조정안을 수용할 지는 미지수다. 조정안이 권고이기 때문에 수용을 강제할 수도 없다.

이번 분조위에서 금융 분쟁 조정 신청을 받는 중소기업 업체는 4곳이다. 이들과 계약을 맺은 은행은 KEB 하나, 신한은행, 씨티, 우리, SC제일, 산업은행 등 6곳으로, 주요 시중은행 다수가 포함됐다. 손해액은 4개사를 합쳐 1500억원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번 분조위 결정에 따라 법원 판결을 받지 않은 또 다른 피해기업들이 분쟁 조정을 신청하게 될 경우 은행들이 부담해야할 액수는 수조원대로 불어난다.

한 은행 관계자는 "법원이 상품 자체에 문제가 없다면서 은행 측의 과실에 따라 피해액의 최대 35% 정도를 보상해주라고 했는데 금감원이 더 많이 보상하라고 하면 따르기 어렵다"면서 "수용하면 배임 등의 이슈가 있어 신중할 수밖에 없다. 최종 권고안을 보고 입장을 정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윤 원장이 금융혁신위원장일 때부터 키코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고 금감원장 취임 후 키코 재조사를 선언한 뒤 지금까지 끌어온 것이기 때문에 키코사태의 향방이 윤 원장의 향후 거취를 좌우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관료 출신의 원장들과는 다르게 소신을 밀고 간 1년이었지만, 이에 대한 결실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면서 "노력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와야 앞으로 윤 원장의 행보에 힘이 실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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